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자고 일어나면 놀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연일 새로운 뉴스를 쏟아내기 때문이다. 한 종편TV의 대통령의 연설문 수정파일 보도에서 시작된 것이 보름여 만에 대통령 탄핵움직임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개 평범한 여인네가 대통령의 권력을 등에 업고 ‘권력의 사유화’를 주도한 이번 사태는 국기를 문란시키며 대한민국 건국 역사상 최고 오점을 남긴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 

경제적, 민주적으로 성공한 나라라고 자부심을 가졌던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며 비분강개하고 대통령의 퇴진여부와 함께 관련자들의 사법처리결과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특히 체육인들이 심한 자괴감을 느끼는 이유는 문화·스포츠를 사업화하려 했던 최순실씨 일가의 농간 앞에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문화·스포츠 행사는 나름대로 명분을 갖는다. 박근혜 정부가 ‘문화융성’과 ‘스포츠로 행복한 대한민국’을 국정목표로 세운 것은 문화·스포츠를 국민복지서비스로 해야 한다는 발상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대통령의 권위주의적인 태도와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최순실 일가 및 주변인들의 개인적 욕망이 좋은 목적의 사업을 순수하지 못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지난 몇 년 동안 시행된 각종 문화·스포츠 사업은 온갖 악취를 풍겨내며 비리의 온상으로 낙인찍혔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은 대통령의 지시로 청와대 경제수석이 재벌기업들로부터 강제모금을 받아 크게 문제가 돼 검찰조사결과 대통령이 피의자에 올랐고 관련자들이 구속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최근 김연아가 2년 전 늘품체조 시연회에 참석하지 않아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견이 대두하면서 늘품체조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시연회에 참석한 리듬체조선수 손연재와 체조선수 양학선은 정부의 권유에 의해 시연회에 참석했지만 김연아는 참석하지 않아 각종 불이익을 당했다는 얘기이다.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늘품체조가 도대체 뭐길래 선수들 간에 호불호를 가르는 잣대가 됐을까. 늘품체조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건강체조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2년 전 갑자기 선보였다. 늘품체조 창작자로 알려진 헬스트레이너 정아름의 시범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 등이 늘품체조를 추는 모습은 부자연스러웠다. 체조의 기본 성격이나 형태를 도외시하고 기괴한 리듬을 타며 몸을 이리저리 흔드는 늘품체조는 급조한 이벤트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그 이전, 1년 전부터 기존 체조를 대체할 체조로 ‘코리아 체조’가 개발됐으나 재미없고 딱딱하다는 이유로 급하게 늘품체조를 만들었다. 코리아 체조는 정부 산하기관인 한국스포츠개발원이 전문가들을 동원해 여러 테스트까지 거쳐 국가예산 2억원을 들여 완성된 단계였다. 하지만 늘품체조는 최순실 게이트 장본인의 한 명인 차은택 창조경제단장이 주도해 민간인 몇 명이 아이돌그룹의 춤동작을 일부 모방해 별도의 국가예산 3억 5천만원을 들여 초스피드로 개발, 대통령 앞에서 선을 보이게 됐던 것이다. 마치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시절의 새마을운동과 새마음운동사업과 같이 전광석화같이 급조해 체조의 개념을 무시하고 밀어붙인 듯한 인상이었다. 

필자를 포함한 체육 관계자들 가운데 국적도 불분명하고, 운동 건강 측면에서 생소한 늘품체조를 보면서 깊은 자괴감을 느끼며 한숨을 쉰 이들이 많았다. 춤도 아니고, 그렇다고 체조도 아닌 늘품체조가 운동의 가치, 나아가 스포츠의 가치를 손상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국민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국민체조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현실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된 체조는 19세기말 스웨덴 체조의 영향을 받아 건강을 목표로 해 기초적인 체육활동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졌다. 체조는 보급과정에서 국가의 교육시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는데, 1960년대 이후 국민보건체조, 국군도수체조 등이 시행됐었다. 체조는 억지로 국민들을 춤추게 하는 늘품체조 형식보다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건강한 사회를 이끌며 사회의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운동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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