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지키는 수성할머니 모신 ‘수성당’
거센 바닷바람 막아주는 ‘후박나무 군락’
‘해안누리길’ 완만해 누구나 즐길 수 있어
[천지일보=이솜 기자] ‘격포항, 채석강, 영상테마파크, 변산해수욕장…’ 전북 부안군 변산면의 국립공원 변산반도를 찾는 대부분 관광객들의 코스다. 그러나 당신이 관광이 아닌 여행을 왔다면, 혹은 원 없이 바다를 보고 싶다면 ‘마실길’ 걷기를 추천한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할지라도, 높고 낮은 해안가를 따라 걷다 보면 변산반도의 여러 가지 표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변산반도의 많은 명소 중에서도 ‘수성당’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다. 오히려 문화 방면 전문가나 무속신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명할 수 있다.
전북 유형문화재 제58호로 지정된 수성당은 이 지방의 해안마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마을의 공동 신앙소로, 건평 4평의 단칸 기와집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 수성당에서 칠산(七山)바다를 수호하는 수성할머니라는 해신(海神)을 받들어 모셨는데, 이 여신은 키가 매우 커서 굽나무깨신을 신고 서해바다를 걸어 다니며 깊은 곳은 메우고 위험한 곳은 표시를 함으로써 어부들을 보호하고 풍랑을 다스려 고기가 잘 잡히게 해준다고 한다.
또 수성할머니는 딸 여덟을 낳아 각도에 딸을 한 명씩 시집 보내고 막내딸만 데리고 살면서 서해의 수심을 재 어부들의 생명을 보호해 준다고 한다.
지난달 30일 찾은 이곳에는 무속신앙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고요한 이곳엔 바람과 파도, 기도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이곳 관리인에 따르면 제사는 하루에 한 번 있으며 관리인에게 요청해 신당 속에 들어가 기도를 올릴 수 있다. 신당 문을 열고 들어가니 수성할머니와 8명의 딸을 볼 수 있었다. 수성당에서 내려다보이는 해안은 격포해수욕장이다. 날씨가 좋으면 위도까지 볼 수 있다.
돌 하나 놓으며 소원을 빌었다면 마실길로 나설 차례다. 수성당 주변 군유지 3만 2000㎡에 조성된 메밀 꽃밭이 당신을 맞아줄 것이다. 꽃밭의 꽃은 계절에 따라 바뀐다. 곳곳에 유채꽃과 코스모스도 어우러져 있어 장관을 이룬다.
이 꽃밭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후박나무 군락’을 볼 수 있다. 천연기념물 제123호인 후박나무 13그루가 이곳에 있다. 녹나무과에 속하는 후박나무는 제주도를 비롯한 남부의 섬들과 해안에도 널리 자라며 울릉도와 서해안의 외연도에도 숲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해안지방으로서는 이 지역이 후박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이 된다. 이곳에 있는 후박나무들은 거센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후박나무에 흥미가 없다면 바로 마실길로 걸어보자. 마실은 ‘마을’을 뜻하는 사투리로 ‘마실길’은 옆집에 놀러갈 때 걷던 고샅길을 말한다. 지난 2009년 조성된 마실길은 2011년 ‘해안누리길’로 뽑힌 데 이어 2012년에는 ‘전국 5대 명품길’에 선정되기도 했다.
마실길의 해안코스는 모두 8개 코스로 나뉜다. 1코스(조개미 패총길, 새만금전시관~송포 5㎞), 2코스(노루목 상사화길, 송포~성천 6㎞), 3코스(적벽강 노을길, 성천~격포항 7㎞), 4코스(해넘이 솔섬길, 격포항~솔섬 5㎞), 5코스(모항갯벌 체험길, 솔섬~모항갯벌체험장 9㎞), 6코스(쌍계재 아홉구비길, 모항갯벌체험장~왕포 11㎞), 7코스(곰소 소금밭길, 왕포~곰소염전 12㎞), 8코스(청자골 자연생태길 곰소염전~부안자연생태공원 11㎞)이다.
이곳은 1코스로 해안누리길로 지정됐다. 해안누리길은 새만금방조제에서 격포항까지로, 코스가 완만해 해안 절경을 감상하기에도 누구나 무리 없이 즐기기 좋은 길이다.
특히 바다의 여러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 길에 따라 나만의 작은 해수욕장 같으면서도 좀 더 걷다 보면 웅장하게 바위를 쳐대는 파도에 깜짝 놀라고 만다. 예상치 못한 경관에 가슴이 벅차오를 때는 가만히 앉아 이 풍경을 눈에 담아 보자. 곳곳에 벤치가 있는 이유다.
끝없이 펼쳐지는 수만 가지 바다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현실감이 떨어져 꼭 바다에 ‘취한 것’ 같다. 너무 많은 것이 눈앞에 펼쳐져 감탄을 뱉어내고 싶지만 마땅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당신 역시 바다에 취한 것이다.
으레 오래된 명소는 얽혀있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특히 부안에는 신비한 전설이 많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걷는 길에서 알게 된 구전 속 조상들의 간절함은 여행의 깊이를 더한다.
바다와 바람, 새가 우는 소리에 흠뻑 젖으며 걸어보자. 일상에 지친 날에는 마실길에서 나와 같이 울던 그 파도소리가 그립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