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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하늘이 내린 세종대왕, 백성을 하늘같이 섬기다
박준성 기자  |  pjs@newscj.com
2016.12.17 09:5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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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역사 가운데 가장 훌륭한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 동상. ⓒ천지일보(뉴스천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대왕 영릉(英陵)

조선왕릉 최초의 합장릉
세종대왕 위대한 정신 기려
학생·가족 등 발길 이어져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대한민국 한글(훈민정음), 세계인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 한글하면 떠오르는 분이 바로 세종대왕(1397∼1450년)이다. 수많은 위인전 인물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이는 위인은 세종대왕이다. 서울 광화문광장 중앙에 위풍당당 근엄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세종대왕 동상과 지하 전시 공간은 세종대왕과 한글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도심에서도 세종대왕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있지만, 기회가 되면 세종대왕이 영면한 능(陵)을 찾는 것도 좋을 듯 싶다.

500년 조선의 역사 가운데 가장 훌륭한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릉인 영릉(英陵). 서울에서 영릉으로 가는 길은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신분당선을 타고 판교역까지 이동한 후 경강선 세종대왕릉역에서 하차, 904번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수월하다. 관광버스를 대절해 오는 단체관광객들도 많다. 봄·여름·가을에는 학교·단체 단위로 더 많은 이들이 찾는다고 한다.

   
▲ 탐방객들이 세종대왕과 소헌왕후가 합장된 영릉을 바라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위대한 업적 남긴 성군 ‘세종’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의 상식을 우선 살펴보자. 조선 왕조의 무덤은 총 119기인데 그중 임금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왕릉은 42기이다. 42기의 왕릉 중 40기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519년 전통 왕가의 역사와 품격이 고스란히 잘 보존돼 있다. 옛 고려의 도읍지인 개성에 있는 2기는 북쪽에 있어 함께 등록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같은 조선 왕조의 능이다.

세종대왕릉에 들어서기 위해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해야 하는데, 만 24~65세 성인은 개인 500원, 10인 이상 단체 400원이고, 만 24세 이하와 만 65세 이상은 무료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오더라도 부담이 적다.

영릉은 다른 왕릉에 비해 볼거리가 많다. 정문에 들어서면 유물전시관 세종전(이전 위해 잠시 관람 중단) 앞 야외유물전시장에는 혼천의, 자격루, 측우기, 해시계, 혼상, 간의 등 15점의 각종 복원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세종시대의 과학기구들을 한눈에 볼 수 있어 탐방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포토존이다. 전시물 바로 옆 건너편에는 세종대왕상이 근엄하게 서 있다.

   
▲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던 천문관측기 ‘혼천의’. 만원짜리 지폐에도 그려져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영원한 사랑… 세종·소헌왕후 합장릉

세종대왕유적관리소는 탐방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영릉에 관해 자세히 설명한 팸플릿을 비치해 두고 있다.

왕릉 입구에는 제례를 지내기 위해 준비하는 재실이 있다. 왕릉으로 들어서는 훈민문과 연못을 지나면 금천교와 홍살문이 나온다. 금천교는 왕의 혼령이 머무는 신성한 공간과 속세의 경계를 구분해 주는 상징적인 곳이다.

홍살문은 신성한 장소임을 알리는 문이다. 홍살문 앞부터는 참도가 이어진다. 참도는 홍살문에서 정자각(제향을 올리는 성스러운 곳)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참도는 죽은 영혼(왕)이 다니는 길인 신도와 살아 있는 왕이 이용하는 어도로 나뉜다. 정자각 양편에는 제례음식을 준비하는 수라간과 능침(능 주인이 잠들어 있는 곳)을 지키는 관리·노비가 지내는 수복방이 있다.

정자각 뒤편은 큰 둔덕 위에 능침이 자리하고 있다. 둔덕 좌우 길을 따라 올라서니 세종대왕과 소헌왕후가 영면한 능침이 한눈에 나타났다. 무인석과 문인석, 석마, 석양, 석호 등의 석상이 능침을 호위하고 있다. 불을 밝혀 사악한 기운을 막아내는 장명등과 널찍한 혼유석(넋이 나와 놀도록 놓은 돌)이 있다.

영릉의 경우 혼유석이 두 개인데, 이는 세종과 소헌왕후가 함께한 ‘합장릉’이기 때문이다. 능침은 난간석과 병풍석 그리고 곡장(봉분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담장)이 둘러싸 있다. 기존의 왕릉에는 난간석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해 방위를 표시했는데, 영릉은 이를 간소화해 십이지를 문자로 표현했다.

   
▲ 백성들이 시간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든 해시계 ‘앙부일구’  ⓒ천지일보(뉴스천지)

◆조선 3대 명당으로 꼽히는 영릉

영릉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과 비 소헌왕후의 합장릉이다. 조선왕릉 중 최초로 한 봉우리에 다른 방을 갖춘 합장릉이다. 영릉은 풍수적으로 조선 3대 명당으로 꼽힌다. 원래 헌릉(지금의 서울 내곡동) 서쪽에 조성된 것을 예종 1년(1469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입지는 풍수사상에 따라 주산인 칭성산을 뒤로 하고 산의 중허리에 봉분을 위치했으며, 좌우측에는 청룡, 백호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멀리 안산인 북성산을 바라보고 있어, 명당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한 가지 더 세종대왕릉 동편에는 조선 17대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 ‘영릉(寧陵)’이 자리한다. 그래서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을 합쳐 영녕릉(英寧陵)이라고 한다. 세종대왕릉 정자각 인근에 난 숲길을 따라 700m 정도를 산책하면 효종대왕릉에 들어선다. 산림보호를 위해 산책로는 5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만 개방하고 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왕릉을 내려오면 영릉 입구인 재실에는 100여년 사이 영릉 보존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조선왕릉을 지켜온 석물을 만나다’란 주제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탐방하는 이들이 조선왕릉의 문화적 가치와 지식을 더할 수 있는 기회다.

세종대왕의 가장 큰 업적은 당연 ‘훈민정음(한글)’ 창제다. 이는 백성과의 소통을 바라던 세종의 고민이 낳은 산물이다. 한글의 우수성 덕택에 현재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0.1% 수준으로 전 세계 가운데에서도 가장 낮다. 영국의 문화학자 존 맨은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는 극찬으로 세종대왕에게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백성과의 소통으로 태평성대를 연 세종대왕의 정신이 오늘날에도 넘쳐나길 기대해 본다.

   
▲ 영릉 입구인 재실에는 100여년 사이 영릉 보존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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