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환 통일교육문화원 평화교육연구소장

 

내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바로 나다. 한데 문제는 정말 자기 자신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이다. 기실 내가 주인이라기보다 어떠한 조건에 의해서 결정된 가짜의 ‘나’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내가 나의 생각을 말하고 행동하기보다는 타인과 타자에 의해 체득돼 버린 남의 말과 행동에 함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내가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 또한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정의란 일면 그 시대와 그 사회 사람들의 정서나 감정일 수 있다. 정의의 기준은 그 본질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또는 대중의 정서에 좌우된다. 오늘날 이 나라의 대중은 ‘자기의식’이 있을까? 헤겔이 말한 자기의식이란 구조화된 지금의 나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통일문제에도 ‘자기의식’을 가질 때가 됐다. TV와 신문에서 말하는 것, 이른바 전문가가 하는 말과 글, 정치권이나 통일관련 기관 등에서 말하는 것에만 의존해서는 곤란하다. 그것이 진리도 아니다. 우선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통일에 대한 의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말이 타인의 언어가 아니어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방법으로 사물을 판단하고 행동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통일 문제에 대해서, 북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올바른 것이었는지 뒤돌아봐야 한다. 선과 악 그리고 내 편과 네 편이라는 온통 이분법이 지배한 것이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를 통틀어 니체는 대중이란 짐승의 무리(Herde)라고 비판했다. 대중이란 오직 한 쪽으로만 달려가는 양떼와 같다는 뜻이다. 순수한 자기의 생각, 냉철한 비판의식이 결여됐다는 것이다.

“짐승의 무리가 지닌 단 하나의 행동 준칙은 타인과 동일하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야말로 이들의 도덕에서 가장 빛나는 이상이다. 짐승의 무리는 누군가 특별하거나 탁월한 것을 싫어한다. 짐승의 무리가 지닌 이상은 모두 동일하게라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가치가 팽배한 사회에서는 비판하고 저항하는 사람에게 오로지 배척이 따를 뿐이다. 생각과 행동이 모두 동일해야 하는 어쩌면 근본주의 종교 교리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어떤 행위가 도덕적인지, 선한지 그렇지 않은지, 다수에게 유익한지 그렇지 않은지보다는 오로지 다른 사람들과 또는 이웃과 동일한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을 ‘도착적 도덕’이라 한다.

이웃과 타인의 삶과 동일하게 사는 것, 내 생각이라기보다 타인의 언어로 된 사유를 가진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노예와 비슷하다. 내 생각 나만의 삶, 내가 스스로 주인이 된 인생을 살아야 한다. 유태인의 교육 방법 중에 “마따 호세프”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너의 생각이 뭐냐는 뜻이다. 교사의 말을 일방적으로 듣고 남의 글을 베끼며 또 암기하는 우리의 교육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가 생각하는 통일문제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웃 또는 타인과 비슷하게 생각해야 정상이라고 간주한다. 만약 다르게 생각한다면 적이 된다. 더 나아가 선과 대비되는 악으로까지 규정된다. 과거에는 머리 길이도 치마길이도 북한과 미국에 대한 생각도 모두가 동일해야 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만약 달라지지 않았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이웃과 타인의 생각이 아닌 자기의 생각이어야 한다. 대중사회에서 도덕의 기준이 타인과의 동일성이 아니라 독자성이어야 하고 그것이 존중돼야 한다. 대중 속에서의 혹은 무리로서의 정체성에 충실하기보다 자기의 정체성을 확실히 가져야 한다. 개체와 전체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해서 노예적 개체가 아닌 주인된 개체가 많아야 건강한 전체를 이룰 수 있다. 우리가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북한에 대한 생각 그리고 통일에 대한 생각이 이웃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어야 한다. 남의 생각과 언어가 아닌 나의 생각과 말이 필요하다. 그것이 가짜가 아닌 진짜로서의 ‘나’인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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