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환 통일교육문화원 평화교육연구소장

 

“乾(건)은 하늘이며 아버지라 일컫고, 곤(坤)은 땅으로 어머니라 일컫는다. 나의 작은 몸은 이 가운데서 混然(혼연)히 살고 있다.”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 서명편의 한 구절이다. 모든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에 살면서 천지를 경외하고, 자식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남에 마땅히 효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고향은 ‘건곤(乾坤)’이고 나라는 존재의 고향은 아버지 어머니이다. 또 아버지 어머니가 살았던 땅에서 내가 태어났으니 그곳 역시 고향이다. 부모는 그곳 하늘의 기운과 땅의 양분을 드시며 나를 낳았기에 내 몸은 고향 땅과 하늘 그리고 대지의 일부인 셈이다. 때문에 인간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도연명은 ‘귀원전거’란 시에서 ‘羈鳥戀舊林(기조연구림), 池魚思故淵(지어사고연)’이라 노래했다. 정처 없이 떠도는 새들도 그 옛날의 자기가 놀던 숲을 그리워하고, 물고기조차 예전의 그 연못을 생각하듯이 그만큼 고향이 그립고 소중하다는 뜻일 터다. 인간에게 고향이란 그야말로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어머니의 품속 같고 아버지의 그늘 같은 곳이다. 그곳을 떠난다는 것은, 혹은 그곳을 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슬픈 일이다. 나 역시 고향을 떠나온지라 나이가 들수록 향수에 젖는 일이 잦다.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그 어릴적 돌담길 눈에 선하고, 저녁녘 굴뚝연기 피어나는 모습에 된장냄새까지 코끝을 스친다. 동네 앞 바다 가운데 바윗돌에서 고기 잡던 모습, 들판으로 산으로 쏘아 다니며 함께 놀던 친구 녀석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이제 흰머리가 성큼해지고 가을이 깊어가니 마음마저 만추가 된다.

시인과 음악가도 어머니를 그리워하듯 고향을 그리워했다. 정지용의 ‘향수’라는 시가 그렇고, 김동진의 ‘내 고향 남쪽바다’라는 가곡이 그렇다. 두 사람 모두 넓은 들판 실개울, 푸른 파도 잔잔한 바다를 꿈엔들 잊힐리야라고 읊었다. 이렇게 고향은 영혼의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선율과 아름다운 시구로 표현되듯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이다.

마침 생각나는 것은 이산가족과 탈북자 그리고 사할린, 연해주, 만주, 중앙아시아 등지에 흩어져 있는 우리 민족이다. 얼마 전 탈북자들과 토론회를 가졌다. 그중에는 재일동포 3세와 재중동포 3세도 있었다. ‘통일이 되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고, 어디에서 살 것인가?’를 누군가 물었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통일이 되면 예전 자기가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한국이 북한보다 훨씬 잘 살고 자유로운 나라이지만 자신이 태어난 고향은 어쩔 수가 없다. 일제강점기 부모들이 만주나 일본으로 떠난 동포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할아버지 고향이 문경이라 그곳이 정확히 어딘지 찾고 싶다’는 바람이다. 재일동포 3세는 지금도 북한에 일가친지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이렇듯 인간은 체제와 이념을 떠나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이다.

남한의 이산가족도 마찬가지다. 특히 설이나 추석이 되면 고향의 부모 형제 그리고 일가친지를 그리는 사람이 많다. 가수 강산애의 ‘라구요’라는 노래가 있다. 강산애의 아버지 고향이 아마도 북한이었던 같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고향을 그리는 모습을 노래에 담았다.

“고향 생각나실 때면 소주가 필요하다 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는 내 아버지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 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고향에 가봤으면 좋겠구나’라구요!”

참으로 가슴 절절한 노래다. 죽기 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고향에 가보고 싶다는 애절함이 이 가을날 폐부를 찌른다. 이산가족은 물론 탈북자들도 고향을 그리는 마음 그 누구보다 간절하다. 우리가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이 겪어야 하는 고통 중에 이별의 고통과 고향에 대한 회한을 풀어야 하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고향이란 이념과 사상마저 초월한다. 어떤 이데올로기도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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