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환 통일교육문화원 평화교육연구소장

 

인간에 대한 이해가 통일인문학의 모토다. 왜 분단극복과 통일을 이루는 데 인간에 대한 이해가 우선인가? 먼저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회 공동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

통일문제를 둘러싸고 빚어지는 대립과 갈등의 주요 원인은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게다가 자기성찰의 부재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점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정치제도나 이념 그리고 정책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통일문제는 인간의 문제로 귀결되고 또 인간이 해결의 실마리인 셈이다.

‘인문’이라는 단어의 출전은 주역이다. 주역 비계의 단사에 관호천문, 이찰시변, 관호인문, 이화성천하(觀乎天文, 以察時變, 關乎人文, 以化成天下)라 적고 있다. 이에 정자가 주를 붙이기를 인문은 인리(人理)의 질서인데 이를 잘 살펴 천하를 교화하고 예속을 이루는 것이라 하였다. 인문은 곧 인리이며 인리는 인간의 도리이다. 이로써 사회를 원만히 한다는 뜻이다. 서양에서 이르는 인문이란 말도 동양의 인문과 괘를 같이 한다.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인간다움’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도리’와 ‘인간다움’은 상통하고 어우러진다.

통일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동서고금의 고전을 통하여 인문학적 감성을 일깨우는 일에 주목한다. 이를테면 유마경에서 문수보살이 유마거사를 문병하는 대목을 살펴보자. 문수보살이 유사거사의 병세를 묻자, 보살이 아픈 것은 중생이 아파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자기 자신 밖에 모르고 남이 어떤지 안중에 없다. 묵자가 천하무인(天下無人)이라고 했듯이 따지고 보면 세상에 남이란 없다. 또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괴성을 지르는 것이 “나는 많이 힘들고 아파요!”라는 소리로 들을 수 있으면 좋다. 장발장처럼 배가 고파서 빵을 훔쳤으면 왜 그렇게 했을까 하고 그의 행동을 곱씹어 보는 것, 또 나는 얼마나 참되게 사는지를 왕왕 가슴에 새기는 것, 즉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이러한 것들이 인문학적 감성이고 오늘날을 사는 우리가 키워야 할 가치이다. 결국 통일의 역량이란 무기에서 나오기보다 인간의 감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인간의 사유 변화는 통일을 채근하는 일임에 틀림이 없다.

필자는 통일과 관련하여 많은 행사에 참석해봤다. 핵문제, 인권문제, 남북 및 남남갈등 문제 등의 토론회, 세미나, 워크숍, 특강에 많이 참석했다. 때로는 직접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기도 했다. 허나 문제는 통일이 진척되거나 남북관계가 좋아지는 게 아니라 더 나빠지거나 답보상태에 머문다는 사실이다. 어째서 이렇게 많은 통일관련 행사를 하고 대안과 방법까지 제시하는데 남북관계나 통일 환경은 오히려 더 나빠지는가? 비판적인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물론 통일과 관련한 연구와 토론이 많다고 하여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전혀 진전이 없을 뿐 아니라 더 후퇴한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통일인문학은 접근 방법을 달리 한다. 정치경제적 통일문제의 접근을 지양한다. 아울러 남북한 사회문화 통합의 차원도 아니다. 통일 혹은 통일문제는 나’로부터 출발하고 인간존재에 주목하며 더 나아가 자기성찰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 쉰들러리스트를 보라.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되고 나치에 충성한 쉰들러였다. 어느 날 그는회심했고 천백명의 유대인의 목숨을 구했다. 이제 우리도 회심할 때가 됐다. 6.25 전쟁을 기억해야 하며 동시에 왜 390여만명이 죽어야 했는지도 알아야 한다. 한편으로는 통일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남북이 계속 싸우는 것이 통일을 위한 것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남북이 싸우지 않고 서로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를 모순적 존재인 나로부터 찾고 나를 변화시키려는 것이 통일인문학의 핵심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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