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말을 전하고 있는 서울역사박물관 강홍빈 관장.
[뉴스천지=이길상 기자]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강홍빈, 이하 박물관)은 5일 박물관 1층 강당에서 ‘한국 독립운동과 진관사’라는 주제로 시민강좌를 열고 진관사 독립운동 사료의 학술적 가치를 조명했다.

이번 강좌는 박물관에서 개최 중인 ‘진관사 태극기’ 특별전과 관련해 항일독립운동의 현장 진관사에서 발견된 독립운동 사료의 학술적 가치와 백초월스님의 항일운동을 심도 있게 조명해 시민들의 역사의식 함양에 기여코자 기획됐다.

강홍빈 관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번 시민강좌는 국권상실의 암울한 시기에 구국의 일념으로 독립운동에 온 몸을 던져 투쟁한 백초월스님의 애국충절을 기리면서 스님이 남기고 가신 독립운동자료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항일독립운동에서 진관사가 수행했던 역할을 재확인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진관사 주지 계호스님은 축사에서 “불탄 흔적을 간직한 태극기 속에 차곡차곡 접혀 있던 독립신문류를 처음 보았을 때 일제 강점이라는 폭압 속에서 광복의 희망을 준비했던 애국선열의 염원에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면서 “강좌를 통해 90년 만에 그 모습을 드러낸 3·1운동 당시 귀중한 유물들과 유물의 중심에 서 계신 백초월스님의 항일운동을 돌아보며 새로운 희망의 100년을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축사를 전하고 있는 진관사 주지 계호스님.
계호스님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신대한>이나 이름만 전해지던 <자유신종보>의 발견은 매우 고무적(鼓舞的)인 일이라고 평가를 했다.

동국대 김광식 연구교수는 ‘백초월 그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백초월스님의 생애와 독립운동에 관련해 강연을 했다.

김광식 교수는 “백초월스님은 한용운·백용성 스님이 불교계 대표로 3·1운동을 주도하고 참가해 옥에 수감되자 그들을 대신해 불교 독립운동을 진두지휘 했다”며 “스님은 4번이나 투옥됐으며 독립운동 군자금 사건으로 일경에 의해 투옥됐다가 1944년 청주교도소에서 옥중 순국했다‘고 전했다.

또 그는 “불교독립운동사, 3·1운동사에 또 하나의 족적인 백초월을 찾아내면서 그로부터 뜨거운 숨결을 찾을 수 있었다”라며 “백용성·한용운의 길과는 또 다른 길을 갔던 그의 삶과 독립운동은 지금부터 재평가·재인식·복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초월스님은 1986년 건국포장이 추서됐으며 출신고장인 경남 고성에 기념탑이 건립됐다. 그는 1990년 국가에서 품격을 재심사, 애국장이 추서됐다.

건국대 한상도 교수는 ‘3·1운동 직후 <자유신종보> 간행과 독립운동계 동향’이란 주제 발표에서 “자유신종보는 3·1운동 직후 학생계 및 불교계 독립운동 진영에서 간행한 ‘지하신문’이라고 할 수 있다”며 “자유신종보는 2009년 8월 진관사에서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발표했다.

동국대 한철호 교수는 진관사 태극기의 역사적 의의와 가치에 대해 ▲1919년에 제작된 태극기라는 점이 태극기의 변천사를 밝히는 데 크게 기여 ▲불교계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성립 직후부터 임시정부와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독립운동을 펼쳤던 사실을 입증 ▲사찰이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배후 근거지 혹은 거점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밝혀준다는 점 등이라고 평가했다.

‘신대한 신문과 신채호의 독립운동’에 대해 발표한 경북대 김주현 교수는 “90년의 세월을 단숨에 뛰어넘어 우리에게 던져진 보물과 같은 자료. 그것은 떨림과 흥분 그 자체였다”며 “발견 당시까지 국내 연구계에 알려진 <신대한>은 1호·17호·18호이며 몇 해 전 그것을 일본외무성 자료실에서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대한은 1919년 10월 28일 상해에서 창간호가 발간됐으며 신채호가 주필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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