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의 문화 창] 아 차가운, 서울의 달
[전경우의 문화 창] 아 차가운, 서울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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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희고 뽀얀 피부, 깔끔하고 화려한 옷차림,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표준말, 서울 아이들의 이미지는 대개 그런 것이었다. ‘별에서 온 그대’처럼 느껴지는 서울 아이를 보고, 시골 아이들은 ‘서울내기 고래 고기 맛좋은 다마내기’ 하고 목을 뽑아 노래를 했다. 서울 아이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 질투와 선망이 뒤섞인 묘한 가사다. 전학 온 서울 아이를 두고 벌어지는 유치한 사랑 이야기도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서울 사람들은 서울깍쟁이로 불렸다. 깍쟁이는 원래 뱀 장수, 땅꾼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청계천 등 개울가나 다리 밑에 움막을 짓고 모여 살았다. 그 세계에도 나름 엄격한 규율이 있었고 따르지 않는 자는 벌을 받거나 쫓겨났다. 이들은 저잣거리로 나가 사람들을 속여 먹기도 했다. ‘눈뜨고 코 베어 가는’ 신묘한 재주를 지녔고, 그래서 서울 사람은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다. 서울 사람을 서울깍쟁이라 부른 것은 서울 사람에 대한 질시와 두려움이 반영된 것이다. 

1909년 서울 인구는 23만명이었다. 일제강점기이던 1935년에 30만명, 1936년 서울의 구역확장으로 인구가 늘면서 1942년에는 백만명 시대를 열었다. 이 시기 일제는 대륙 침략의 기지로 만들기 위해 서울을 본격적으로 개발했고 이 때문에 서울 인구가 급격히 늘어났다. 당시 ‘경성천도론’이라는 책이 나왔다. 서울에 살고 있던 일본인이, 동경 대신 서울을 수도로 삼아야 대륙 침략에 유리하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일본인들은 서울에 전기와 수도를 놓고 일본인 집단 거주지를 만들어 주인 행세를 했고, 왜놈들 수탈에 힘들어 하던 지방의 조선인들도 서울로 몰려들었다. 

해방이 되고 근대화 바람이 불면서 서울인구도 급팽창했다.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그 길에서 꿈을 꾸며 걸어가리라. 을지로에는 감나무를 심어보자. 감이 익을 무렵 사랑도 익어 가리라. 아~ 우리의 서울 우리의 서울~’ ‘서울 서울 서울 아름다운 이 거리. 서울 서울 서울 그리움이 남는 곳~’ 음악은 신이 났고, 음악 속 서울은 아름다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달을 안고 옹기종기 모여 사는 우리들, 근심 잘 날 없어도 마음만은 부자라네, 우리 동네 달동네~’ 1980년대 초반 서민들에게 눈물과 웃음을 주며 큰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달동네’ 주제가다. ‘마음만은 부자’라며 위안을 삼았지만, 서울의 삶은 고단했다. 정태춘은 그래서 ‘오늘 밤도 그 누구의 밤길 지키려 어둔 골목, 골목까지 따라와 취한 발길 무겁게 막아서는 아, 차가운 서울의 달’이라고 노래했다.

1959년 200만명이던 서울인구는 1988년 천만명이 됐다. 그로부터 28년 후인 올해, 천만 명 시대가 무너졌다. 서울을 떠나는 사람 열 명 중 여섯 명이 집 때문이라고 했다. 치솟는 전월세 때문에 할 수 없이 서울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화려한 유혹 속에서 웃고 있지만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해~’(서울 이곳은. 장철웅). 

세월이 흘러 세상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서울의 달’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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