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계춘할망’ 스틸. (제공: ㈜콘텐츠 난다긴다)

서울 가던 길에 잃어버린 손녀
12년 만에 훌쩍 커서 나타나

제주도 할망과 손녀의 동거
감동적이고 따뜻하게 그려

윤여정, 도회적인 이미지 벗고
제주도 해녀 완벽하게 연기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어릴 적 시골에 가면 할머니는 당신 방에 있는 장롱 깊숙한 곳에서 숨겨 뒀던 미숫가루를 꺼내어 스테인리스 국그릇에 얼음을 동동 띄워 주시곤 했다. “너 미숫가루 좋아하잖아”라며 건네주시면 그 자리에서 다 마시고 배시시 웃었다.

창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계춘할망’은 미숫가루처럼 가슴 한구석에 있었던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계춘할망’은 12년 만에 잃어버렸던 손녀를 기적적으로 찾은 ‘계춘(윤여정 분)’과 손녀 ‘혜지(김고은 분)’가 함께 살아가면서 진정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가족 감동 드라마다.

“손지딸아. 나는 물질로 먹고살았지만 너는 꼭 그림으로 먹고살라.”

제주도 해녀인 계춘은 어린 손녀 혜지와 단둘이 산다. 남편과 아들은 세상을 떠났고 며느리는 손녀를 남기고 뭍으로 나갔다. 혈육이라곤 혜지가 전부다. 계춘은 불면 날아갈까 만지면 깨질까 혜지를 금지옥엽 키운다. 힘든 물질이지만 혜지가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서울에서 하는 결혼식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고 계춘은 서울 한복판 시장에서 혜지를 잃어버린다. 이후 계춘은 혜지를 애타게 찾지만 12년이 흘러도 찾지 못한다. 계춘은 찾아야 할 혜지는 못 찾고, 산에 있는 약초는 잘 찾는 자신의 모습에 한탄한다.

▲ 영화 ‘계춘할망’ 스틸. (제공: ㈜콘텐츠 난다긴다)

어느 날 고등학생으로 훌쩍 커버린 혜지가 계춘 앞에 나타났다. 계춘은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 혜지가 여간 기특한 게 아니다. 계춘에게는 여전히 예쁜 손녀다. 어린아이 다루듯 뭐든지 챙겨주고 아침부터 밤까지 혜지 생각만 가득하다.

하지만 혜지는 계춘이 생각하는 꼬맹이 혜지가 아니었다. 할머니와 살던 제주도로 돌아온 혜지는 모든 것을 어색하고 부담스러워 한다. 계춘이 발라주는 생선도, 돼지가 밑에 있는 제주도식 화장실, 계춘의 코 고는 소리 등을 말이다.

혜지는 빛보단 어둠이 익숙했다. 할머니와 지낸 못한 지난 12년 동안 혜지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길거리를 떠돌았다. 힘들고 외로웠던 지난 시간이 혜지를 강퍅하게 만들었다. 고마워하는 법도 사과하는 법도 모르는 철부지 10대가 된 것.

“혜지야. 세상살이가 힘들고 지쳐도 온전한 내 편 하나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 내가 네 편 해줄 테니 너는 네 원대로 살라.”

올해 초부터 극장가는 범죄, 스릴러, 액션 등의 장르가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영화 ‘계춘할망’은 할머니, 어머니가 있는 손자, 손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뜨거운 감동을 선사한다. 할머니와 손녀의 재회만으로도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계춘은 집에 온 혜지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준다. 늘 혜지가 올때를 대비했을 밥상엔 할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겨 있다.

▲ 영화 ‘계춘할망’ 스틸. (제공: ㈜콘텐츠 난다긴다)

할머니 계춘이 손녀 혜지를 아이처럼 대하는 모습은 감동을 넘어 웃음을 자극한다. 특히 자다가 화장실에 가는 장면과 문을 잠그고 목욕하는 혜지에게 문을 열라고 잔소리하는 장면이 그렇다.

또 물질하는 바다, 낮게 쌓아 올린 돌담, 자전거 타고 지나는 등굣길, 산책하던 빨간 등대, 유채꽃밭, 사려니 숲, 해안도로 등 아름다운 제주도의 일상을 볼 수 있어 눈이 행복하다. 계춘의 집은 실제로 제주도민이 거주하던 집을 빌려서 소품을 더해 완성됐다. 제주도의 평범한 모습을 그대로 담으려는 노력이 보인다. 이 때문에 영화는 빡빡한 일정으로 뻔한 수학여행이 아니라 즐거운 가족여행 같다.

여기에 윤여정, 김고은, 김희원, 신은정, 양익준, 최민호, 류준열 등의 주·조연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력은 영화를 완성시킨다. ‘하녀’ ‘돈의 맛’ 등에서 도회적인 이미지로 스크린에 등장했던 배우 윤여정은 노인분장을 통해 제주도 해녀이면서 손녀 바보인 할머니 계춘으로 완벽 분했다. 윤여정은 “이번 영화를 통해 도회적인 이미지를 벗어보려고 도전했다”고 말했다.

12년 만에 만난 할머니의 무한한 사랑이 부담스러운 불량손녀 혜지 역을 맡은 김고은은 무난히 소화했다. 김고은은 혜지의 눈빛을 통해 시간이 지나면서 할머니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 마음을 표현했다.

나의 어머니, 나의 할머니, 나의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계춘할망’ 개봉은 오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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