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지구 라파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된 모스크 폐허 근처에서 라마단 첫 번째 금요일 기도를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15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지구 라파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된 모스크 폐허 근처에서 라마단 첫 번째 금요일 기도를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이슬람 금식성월 라마단 전날, 후세인 오다(37)와 그의 가족 7명은 무슬림이 일출부터 일몰까지 금식하기 전에 먹는 식사 ‘사하리’를 먹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그들 앞에 놓인 식탁에는 요거트, 치즈와 빵이 전부였다.

가자지구 남부 라파로 피난 온 이 컴퓨터 엔지니어는 10월 7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체중이 약 29.5㎏(65파운드) 빠졌다고 미 매체 NBC 밝혔다. 전쟁 중인 약 6개월간 금식을 강요당했기 때문이다. 이제 라마단이 시작됐으니 금식 일정이 정해져 있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이슬람력에서 아홉 번째이자 가장 성스러운 달인 라마단은 무슬림들이 꾸란의 첫 구절이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계시됐다고 믿는 기간이다. 전 세계에서 수백만명의 무슬림이 낮 시간 동안 금식하며 신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불우한 이웃에 대한 절제와 동정심을 실천한다. 자기 성찰, 감사, 공동체 간의 축하가 이 행사의 핵심이다.

가자지구에서는 전통 음식을 나누고 함께 모여 기도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연말연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한때 전등으로 장식됐던 집들은 폐허로 변했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음식이 가득하던 식탁은 텅 비어 있다.

가자지구 관리들에 따르면 3만 1천여명이 사망하고 25명 이상이 기아로 사망하는 등 인도주의적 위기가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많은 무슬림들이 금식을 지키고 있다.

1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지구 라파에서 주민들이 라마다 기간 먹을 전통 과자를 만들고 있다. (출처: 뉴시스)
1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지구 라파에서 주민들이 라마다 기간 먹을 전통 과자를 만들고 있다. (출처: 뉴시스)

◆기근 속 깨진 전통

라마단 첫날, 살렘 스베타(48세)와 그의 가족은 전통적으로 닭고기와 황마 잎으로 만든 스튜인 몰로키아를 먹는다. 라마단을 위한 쇼핑과 준비는 한 달 전부터 시작되며, 집안을 꾸미고 해가 진 후에 먹을 카타예프(크림이나 견과류로 속을 채운 달콤한 만두)와 같은 전통 디저트 재료를 구입하는 것이 포함된다.

그러나 올해는 아홉 식구가 함께 사용하는 임시 텐트에 직접 만든 라마단 장식만 초라하게 달려있다. 스베타는 NBC에 “보다시피 가스가 없다. 우리는 직접 불을 펴 요리를 하는데, 화상을 입기가 쉽다”고 말했다.

주변 환경보다 더 심각한 것은 실종된 가족들이다. 전쟁 중 아들 한 명이 사망하고 다른 한 명은 부상을 입었다. 스베타의 아내 사바는 “나는 아들들의 방문을 두드리며 ‘일어나, 사하리 시간이다’라고 말하곤 했다”며 “더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가자지구 북부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주민들은 야생 식물인 호비자를 채취해 요리할 수밖에 없었다. 자발리아 난민촌으로 피난 온 사미야 아베드 자말은 이마저도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자말은 “우리는 사하리를 먹지 않고 물만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며 “우리에겐 빵이나 밀가루가 없다. 뭘 할 수 있겠나”라고 전했다.

무슬림은 라마단 기간 동안 신선한 과일과 채소, 콩, 계란, 유제품, 동물성 단백질 등 특히 영양가 있는 음식을 섭취하도록 권장한다. 하지만 올해는 가자 지구에 거주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풍성하고 다양한 식단은 불가능하다.

유엔에 따르면 50만 명 이상의 가자 주민들이 기아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구(UNRWA)에 따르면 1월부터 2월까지 가자지구로 들어오는 인도주의적 지원의 양이 50% 감소하는 등 식량과 긴급 지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처럼 심각한 식량 부족으로 인해 북쪽 지역의 많은 주민들이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고 UNRWA의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줄리엣 투마는 전했다. 그는 “기본적인 식재료를 구하고 요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그래서 가자 주민들에게는 매우 힘들고 매우 슬픈 라마단이다”라고 말했다.

13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중심 도시 데이르 엘 발라에 있는 집 잔해 위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일몰시간 이후 금식을 깨고 식사를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13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중심 도시 데이르 엘 발라에 있는 집 잔해 위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일몰시간 이후 금식을 깨고 식사를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투마는 구할 수 있는 제품도 매우 비싸서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 수 없다고 전했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계란 가격은 10배나 올랐고, 게다가 신선하지 않은 계란이 많아 이를 먹은 주민들은 병에 걸렸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아프거나 영양실조에 걸리는 등 건강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금식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은 누구든지 금식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몇 달째 굶주린 가자지구의 무슬림은 신에 대한 헌신으로 필요한 양질의 음식과 깨끗한 물을 얻지 못한 채 금식을 지키고 있다고 NBC는 보도했다.

사바 스베타(45)는 이번 라마단에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이슬람의 타왁쿨 개념, 즉 신에 대한 신뢰와 의존에 크게 기대 금식할 계획이다.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신앙에 의지하는 무슬림은 스베타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모스크가 파괴됐지만, 라마단 전날 무슬림들은 라파의 알 파루크 모스크 폐허 옆에서 모여 라마단 저녁 기도인 타라위흐(taraweeh)를 드렸다.

8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라파에서 이슬람 성월 라마단을 앞두고 팔레스타인인들이 파괴된 모스크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8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라파에서 이슬람 성월 라마단을 앞두고 팔레스타인인들이 파괴된 모스크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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