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사교육카르텔 조사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
피라미드식으로 거액 챙겨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을 겨냥해 집중단속을 시작한 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수업 내용과 관련된 광고문구가 적혀있다. ⓒ천지일보 2023.06.22.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을 겨냥해 집중단속을 시작한 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수업 내용과 관련된 광고문구가 적혀있다. ⓒ천지일보 2023.06.22.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모의평가 출제에 참여한 현직 교사들이 사교육 업체와 유착해 뒷돈을 받고 문항을 제공해 온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확인됐다.

‘교원 등의 사교육시장 참여 관련 복무 실태 점검’ 감사를 진행한 감사원은 이 같은 혐의를 확인하고 관련자인 교원과 학원 관계자 등 56명을 경찰청에 수사해 달라고 올해 2월 초부터 세 차례에 걸쳐 요청했다고 11일 발표했다. 56명은 구체적으로 고교 교사 27명과 사교육 업체 관계자 23명, 전직 대학 입학사정관 1명 등으로 청탁금지법 위반과 업무방해, 배임증재, 배임수재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이번 감사에서는 수능 출제 또는 EBS 수능 연계교재 집필에 참여한 다수 교사가 사교육 업체와 조직적으로 문항을 거래한 것도 확인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항 거래는 수능이나 수능 모의고사 출제 경력, EBS 수능 연계 집필 경력이 있는 교원을 중간 매개로 삼아 ‘피라미드식’ 조직적 형태로 전개됐다. 수능 문항과 유사한 문항을 만들어 파는 다수의 교사가 있고, 그 위에서 일부 교사가 ‘중간 관리’ 역할을 맡아 사교육 업체와의 거래를 알선하고 수수료를 챙겼으며, 정점에는 교사들로부터 문항을 공급받아 ‘족집게’ 행세를 하는 대형 입시 학원과 유명 강사들이 위치한 식이다.

한 사례를 보면 수능과 수능 모의평가 검토위원으로 여러 번 참여한 고교 교사 A씨는 출제 합숙 중에 알게 된 교사 8명을 포섭해서 문항 공급 조직을 구성했다. A씨는 포섭한 교사들과 2019년부터 2023년 5월까지 수능 경향을 반영한 모의고사 문항 2천여개를 만들어 사교육 업체와 유명 학원강사들에게 공급하고 6억 6000만원을 받았다. 이 가운데 3억 9000만원은 조직에 참여한 교원들에게 지급하고, 나머지 2억 7000만원은 자신이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2억 1000만원은 자기의 부정 수입이 드러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배우자 등 다른 사람의 계좌로 받았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고교 교사 B씨는 배우자가 설립한 출판업체를 공동 경영하면서 현직 교사 35명으로 문항 제작팀을 구성한 뒤 사교육 업체와 유명 학원강사들에게 문항을 넘겨 수억원의 부당 이익을 챙긴 것으로 파악됐다.

EBS 교재가 수능 출제와 연계된다는 것을 악용한 사례도 있었다. 교사 C씨는 EBS 교재 출간 전 교재 파일을 빼돌려 문항 장사에 활용했다. 그는 2015년부터 EBS의 수능 연계 영어 교재 집필진이 됐고, 곧바로 EBS가 교재를 발간하기 전 최종 검토를 위해 집필진에게 제공하는 파일을 빼돌려 이와 유사한 문항을 만들었다. 교재 파일을 직접 구할 수 없을 때는 다른 집필진에게 ‘연구용으로 쓰겠다’ ‘수업에 활용하겠다’ 등 거짓말을 해서 파일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C씨는 이런 식으로 2021년까지 7년간 문항을 8000여개 만들어 유명 학원 강사에게 공급하고 5억 8000만원을 받았다.

이외에도 전직 대학 입학사정관이 사교육 업체에 이중 취업해 수험생의 자기소개서 작성을 도와준 게 감사에서 확인됐다. 감사원은 “입학사정관 퇴직 후 3년간 학원 등 취업이 제한되는 고등교육법 조항을 위반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며 “법상 위반 시 제재 규정은 없어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쳐 교육부에 제도 개선 등을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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