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정부 ‘법적 대응’ 경고 속에도 나발니 장례식 거행
무소불위 권력 맞선 나발니 향년 47세로 고향 땅에 잠들다

18일 독일 베를린 러시아 대사관 근처에서 나발니를 지지하는 시위대가 “푸틴은 살인자”라는 배너를 들고 행진하는 모습. (출처: 연합뉴스) 2024. 02. 18
18일 독일 베를린 러시아 대사관 근처에서 나발니를 지지하는 시위대가 “푸틴은 살인자”라는 배너를 들고 행진하는 모습. (출처: 연합뉴스) 2024. 02. 18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푸틴은 살인자” “전쟁을 반대한다.”

러시아 정부의 강력한 경찰 감시와 구속 위협도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추모 발길을 막을 순 없었다.

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한 교회에서 열린 나발니의 장례식에서 수천명의 지지자들이 모여 무소불위 권력에 맞서온 당대의 지도자 죽음을 애도하는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부를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고 CNN 등 외신이 이날 전했다. 장례식 참석자들은 이날 이구동성으로 “나발니! 나발니!”를 외치거나 “푸틴은 살인자” “전쟁을 반대한다” 등의 목소리를 냈다.

알렉세이 나발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강력한 적수로 꼽힌다. 지난 2011년 창설한 반부패재단을 통해 반정부 운동을 이끌던 나발니는 2018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푸틴 현 대통령에게 패배한 바 있다. 나발니는 신경작용제 중독 사고에서 살아남고 수차례 징역형을 받은 후에도 푸틴 대통령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해왔다. 그 이후 불법 금품 취득, 극단주의 활동, 사기 등의 혐의로 3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2021년 1월부터 복역 중이었다.

그러다가 지난달 16일 시베리아 최북단 야말로네네츠 자치구의 제3 교도소에서 그의 아내, 딸, 아들을 두고 숨을 거뒀다. 향년 47세의 나이였다. 갑작스러운 그의 사망 소식은 전 세계 각국으로부터 그가 권력으로부터 살해당했다는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반면 크렘린궁(대통령실)은 그의 죽음과 어떠한 관련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남동부 마리노의 보리솝스코예 묘지를 향해 나발니 추모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24.03.02.
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남동부 마리노의 보리솝스코예 묘지를 향해 나발니 추모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24.03.02.
17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러시아 영사관 근처에 러시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촛불과 사진이 놓여 있다. (출처: 뉴시스)
17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러시아 영사관 근처에 러시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촛불과 사진이 놓여 있다. (출처: 뉴시스)

그러나 나발니 측은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그의 시신을 회수하고 장례식을 위한 장소를 대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실제 이날 장례 행렬 길을 따라 군중 통제 장벽이 세워졌고 수십 대의 경찰 밴이 동원됐다. 공개된 현장 영상에는 경찰관들이 애도자 행렬이 내려다보이는 옥상에 줄줄이 투입된 것으로 비쳐졌다.

정부도 강수를 뒀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번 무허가 장례식에 참여하지 말 것을 경고하면서 참석하는 이들을 향해 “법을 위반하게 될 것”이라며 엄포를 놨다.

그럼에도 장례식은 모스크바 남동부 마리노의 우톨리 모야 페찰리(내 슬픔을 위로하소서) 교회에서 엄수됐다. 이곳은 그가 생전 살았던 지역이기도 하다.

나발니의 관이 땅에 묻히는 동안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가 연주됐다. 애도자들은 묘지에서 당대 무소불위의 권력에 대항했던 나발니에게 마지막 경의를 전했다.

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남동부 마리노의 우톨리 모야 페찰리(내 슬픔을 위로하소서) 교회에서 나발니의 장례식이 엄수되고 있다. (AP=연합뉴스) 2024.03.02.
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남동부 마리노의 우톨리 모야 페찰리(내 슬픔을 위로하소서) 교회에서 나발니의 장례식이 엄수되고 있다. (AP=연합뉴스) 2024.03.02.
1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굴라그 정치범 수용소 기념비에서 한 여성이 알렉세이 나발니를 추모하며 우는 모습을 경찰관들이 지켜보고 있다. (출처: 뉴시스)
1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굴라그 정치범 수용소 기념비에서 한 여성이 알렉세이 나발니를 추모하며 우는 모습을 경찰관들이 지켜보고 있다. (출처: 뉴시스)

나발니 측은 장례식이 거행되던 교회 내부의 이미지를 공유했는데, 시신이 장미로 덮인 모습과 그의 어머니인 류드밀라 나발나야가 촛불을 들고 지켜보는 모습을 보여줬다.

율리아 나발나야는 니발니의 죽음으로 졸지에 미망인이 됐음에도 도망다녀야 하는 망명 생활을 두고 “26년간의 절대적인 행복”이었다고 말하며 오히려 감사를 표했다. 그러면서 남편을 향해 “당신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하늘에 있는 당신이 절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나발니가 사망 전 포로 교환으로 풀려나기 직전이었다고 말한 나발니의 최측근인 마리아 페브치크 보좌관은 이날 “사람들이 큰 소리로 ‘나발니’를 외치고 있다. 이 구호는 몇 달 후에도 1년 후에도 계속 들릴 것”이라고 전했다.

장례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웅’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모였다고 말했다. 교회 밖에 있던 수천 명의 애도자 중 한 명인 폴리나라는 러시아 여성은 “끔찍하게 슬프다”고 말하면서도 그의 죽음이 많은 러시아인들을 하나로 모았다고 역설했다.

나발니를 애도하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왔다는 마리나는 “그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그에게 ‘작별’을 고하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82세의 고령의 지지자인 타티아나는 어느 지지자도 장례식 참여에 대한 정부의 위협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수백명이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감시 단체 OVD-Info에 따르면 모스크바에서 6명이, 노보시비르스크에서 18명이 경찰에 붙잡히는 등 32개 도시에서 열린 나발니 추모 행사에서 400명 이상이 체포됐다.

17일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정치 탄압 희생자를 기리는 슬픔의 벽 기념비 근처에서 한 여성이 나발니를 추모하는 중에 경찰에게 체포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17일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정치 탄압 희생자를 기리는 슬픔의 벽 기념비 근처에서 한 여성이 나발니를 추모하는 중에 경찰에게 체포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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