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리메이크에 관해 흔히 제기되는 의구심이 있었다. 리메이크가 많아지는 것이 창조성이 고갈된 증거라는 것. 이른바 편하게 우려먹기라는 비판이 있었다.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해야 하는데, 이미 검증된 작품의 후광 효과를 기대하는 심리에 대한 비판도 비등했다.

일견 일리가 있어 보였다. 결국, 새로운 시도가 발전과 진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놓친 점도 있었다. 이런 지적은 사실 팬이나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비평가들을 위한 지적을 위한 단골 레퍼토리 언사였다. 중요한 것은 작품이나 콘텐츠를 누리는 사람들의 상황과 관점이다.

이런 창조성 고갈이나 우려먹기론이 무너지게 된 것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크게 인기를 끌면서다. 이를 통해 리메이크는 두 가지 역할과 효과가 있었다.

하나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곡을 들려주는 문화 민주주의 원칙이었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해석과 편곡이었다. 부르는 사람이 어떤 역량과 개성, 세계관을 적용하면 충분히 달라질 수 있었다. 더구나 리메이크곡을 취하는 이들은 거의 젊은 세대였다. 새로운 세대가 기존 노래를 요즘 취향에 맞게 부르는 것은 재발견이었다. 이는 문화적 가교 구실을 통해 세대 통합의 효과도 가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수많은 오디션에서 등장하는 노래들은 그 어떤 전문가의 평가보다 자연발생적으로 평판을 만들어내는 음악적 현상이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창조적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얼마 전 열린 가수 한영애의 ‘2024 다시 봄 콘서트’는 이러한 리메이크가 왜 음악적인 점은 물론 문화적으로 우리 사회에 중요한지 잘 보여주었다. 젊은 뮤지션들과 같이 콜라보레이션하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대개 젊은 뮤지션과 협업을 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요즘 인기 있는 젊은 가수들과 함께하는 유형이 있고 다른 하나는 지인 협조 공연이거나 헌정하는 무대일 수 있다. 이는 후광 효과를 꾀하거나 친분을 드러내는 점이 중심이었다. ‘2024 다시 봄 콘서트’의 무대에 오른 젊은 뮤지션들은 이에 해당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가수 한영애와 친분이 없었다. 오로지 오디션 무대 등을 통해 가수 한영애의 노래를 커버 송이나 리메이크했던 신예 가수들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가수 한영애의 노래를 70여명이 리메이크했는데 이날은 엠넷 ‘포커스’의 신예원, ‘보이스 코리아’의 이소정, ‘풍류대장’의 강태관, ‘슈퍼스타K4’의 BUMZU(계범주), ‘싱어게인3’의 임지수가 엄선되어 무대에 올랐다. 스토리나 실력 면에서 출중한 이들이었다. 그동안 상당히 나이 차이가 있음에도 그들은 가수 한영애의 노래를 불렀다. 세대와 문화적 차이를 넘어 노래로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락과 국악을 접목한 강태관의 ‘코뿔소’도 곡의 본질적 재창조 면에서 눈길을 끌었고, 단적으로 블루스곡인 ‘루씰’을 jtbc ‘싱어게인3’의 가수 임지수와 가수 한영애의 콜라보로 접할 수 있었던 무대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가수 한영애의 곡이 대부분 그렇지만 특히 ‘루씰’ 같은 곡은 보통 역량이라면 소화할 수 없는 까다로운 곡인데도 임지수는 선택했다. 이런 점은 사실 ‘루씰’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블루스곡이 더는 한국에서는 주류가 아닌 상황에서 젊은 신예 가수가 이를 열정적으로 부른다는 것은 새로운 문화적 계승이며 가교 구실을 하는 셈이었다. 가수 한영애의 콘서트는 그러한 계기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이런 무대 공연은 단지 기성 유명 가수의 독식 무대만이 아니라 이렇게 신예들에게 도약대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 때 더 각별한 미래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그것이 선배들이나 기성세대의 의무이자, 미덕이다.

2011년 JK김동욱은 MBC ‘나는 가수다’에서 가수 한영애의 ‘조율’을 불러 크게 주목받았다. 버거움이 느껴질 수 있던 그의 리메이크를 통해 ‘조율’이라는 곡을 알게 되었다는 시청자들이 꽤 많았다. 가수 한영애는 JK김동욱의 ‘조율’이라고 했지만, 리메이크는 원곡자에게도 가치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비단 가수 한영애의 노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레전드 가수들이 세대를 넘어서 그냥 흘러가지 않거나 잊히지 않는 것은 후배들의 리메이크 때문이다. 하지만 리메이크 가수들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가치 부여 면에서 덜 부각이 된 면들이 있었다. 유명 가수들일수록 자신의 노래를 커버하는 이들을 되돌아보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레전드의 프레임에 갇혀 있어서다. 하지만 나는 새가 높이 보이는 것은 그 새를 하늘 밑에서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수 한영애의 ‘2024 다시 봄 콘서트’는 젊은 신예들을 어떻게 포용하여 음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어떤 미래 효과를 기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었다. 다른 뮤지션들의 무대에도 활발하게 등장해야 하는 본보기의 콜라보 무대였다. 이는 비단 음악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신구 세대가 같이 자리하고 협업할 기회가 많이 만들어질수록 미래의 통합적 대안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