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의 추석은 조국이 해방을 맞은 날짜와 동일한 양력 8월 15일.
하지만 조국에서의 부름은 55년이나 지난 후다.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반세기를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떠돈 사할린 동포들의 한과 그리움.

꿈에 그리던 고국땅을 밟았지만 터무니없는 귀국허용조건은 제2의 생이별을 낳았다.

[스탠딩]
“여기는 영주 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이 모여 살고 있는 아산시 신창면에 위치한 소화마을입니다. 고국에서 추석을 맞는 소수의 사할린 동포들이 모여 있다고 하는데요. 들어가 보시죠.”

[최미자(74세) / 아산 사할린 동포]
(명절인데 사할린에 있는 가족들 생각나지 않나?) “우리 부모님들 다 돌아가시고 그러니까 부모님 산소에 못 간 것만 해도 섭섭하죠. 자주 못 만나요. (사할린에 살고 있는) 아이들도 사느라고 바쁘고 우리는 자주 갈 형편이 안되고..”

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돌아가신 부모님. 음력 명절도 쇠지 못하던 생각에 가슴이 무너진다.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면 더 쓸쓸해지는 마음. 눈을 감아도, 노래를 부르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떨쳐지지 않는 혈육에 대한 그리움은 차라리 고통이다.

[유묘열(77세) / 사할린동포]
“섭섭하죠. 마음은 아프고 아이들은 사할린에 있고 우리들만 여기 나와 있는데 조그마한 아이들 보면 아닌 게 아니라 눈물이 나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소원이 있다면) “자식들도 한국에 다 들어오면 그게 제일 소원이에요. 한국에 들어오는 것..”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외로움과 싸우며 그렇게 그리움은 밀물처럼 차오른다.

각 지역마다 판이하게 다른 임대료, 생계급여로 근근이 살아가는 많은 사할린 영주귀국 동포들은 ‘죽을 일이 걱정’이라고 말한다. 동거인이 사망하면 독거노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귀환을 꿈꾸며 살아가는 사할린 거주 1세대 동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가족과 떨어질 수 없어 영주귀국도 포기. 현실적 경제난과 함께 또 다른 이산의 아픔을 가지고 산다.

역사 속에 잊혀져가는 사할린 동포들. 이들을 지원하는 특별법이 2005년 처음 발의됐지만 10년이 넘도록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우복남 연구위원 / 충청남도 여성정책개발원]
“여전히 가족 이산의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일본의 사례가 있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바뀌는 것이 없다는 것. 지금 살날이 그렇게 많이 남지는 않은 분들, 역사의 어떤 피해자였기 때문에 그분들의 대한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켜주지 못한 사람들, 안아주지 못한 땅!
사할린 동포를 알고 계십니까?

(영상취재/편집: 김미라·장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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