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의해 강제로 사할린이라는 낯선 땅으로 끌려간 한인들. 그들은 해방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한국 정부의 무관심 속에 그들은 차가운 땅에 그렇게 버려진다. 1990년대 ‘영주귀국사업’이 시작되지만, 대상은 매우 제한적. 결국 이산가족 문제만 되풀이 된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지금, 여전히 한인들은 고통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재외동포에 대한 정부의 정책 의지는 미온적이다. 이에 연재기사를 통해 사할린 한인의 현 실태를 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 사할린 한인 리환진씨(윗줄 왼쪽 세 번째)가 어릴 적 친인척과 함께 찍은 사진. 2009년 영주 귀국한 리환진씨는 오래된 사진을 보며 가족을 떠올리고 있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강제징용에서 시작된 고통의 역사… 한국 정부는 방치
“사할린에 두고 온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게 마지막 소원

돌아오지 못한 징용 피해자
사할린에 5만여명 동원
남은 한인 2만 3500명
대부분 무국적자로 남아

동포지원 특별법 제정
17대 국회에서 처음 제기
잇따른 실패로 통과 불투명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내 나라(한국) 오려고 (사할린에서) 무국적으로 살았지. 하지만 (영주 귀국할 때) 우리 자식들은 하나도 못 데리고 왔어. 내 자식 안 아까운 사람이 어디 있겠어. 늘 보고 싶지.” (사할린 한인 박연동(91, 남)씨)

광복(光復)을 맞은 지 70년이 지났다. 하지만 사할린 한인들의 역사적 운명에 대한 문제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특히 제한적인 영주귀국 조건으로 부모와 자녀가 평생 떨어져 살아야만 하는 비극적인 삶은 되풀이되고 있다.

◆사할린 한인, 그들은 누구인가

1905년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는 전쟁에 패한 대가로 일본에 남-사할린을 넘기게 된다. 일본은 남-사할린을 일본영토로 공고히 하기 위해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 노동력을 한반도에서 끌어오게 된다. 일본은 할당모집, 관 알선, 강제 징용의 방식으로 한인들을 강제동원했다. 이들은 사할린의 탄광·군수공장 등에서 혹사당했다. 남-사할린을 점령한 40년 동안 일본은 약 5만명의 한인들을 이곳으로 동원했다.

이후 전세가 불리해진 일본은 해상 연료운반이 어려워지자 사할린 한인 노동자들을 일본 규슈로 이중 징용시켰다. 1944년 8~9월에 거쳐 재배치된 3200여명의 생사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왜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 했나

전쟁 후 남-사할린에는 2만 3500명의 한인이 남는다. 소련과 미국은 협상에 따라 1946년 가을 일본인들을 본국으로 송환시킨다. 하지만 사할린 한인들의 송환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광복 후 혼란으로 송환 여력이 없었던 한국 정부는 한인들을 방치했다. 한인들은 그렇게 낯선 땅에 버려진다. 한인 1세대들은 소련 국적 취득이 향후 귀국에 문제될 수 있다고 생각해 대부분 무국적자로 남아 어려운 삶을 이어갔다. 북한의 회유도 견뎌야 했다.

소련이 해체된 후 1994년 한·일 양국은 적십자사를 통해 영주귀국 시범사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영주귀국 ‘시범사업’이, 2007년부터는 영주귀국 ‘확대사업’이 진행돼 2015년 사업종료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1세대(19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자 및 거주자)들과 배우자에 한해 영주귀국이 허용됐다. 이렇다 보니 1세대들은 그토록 원하던 조국 땅을 밟으려면 사랑하는 자녀들과 헤어져야만 했다. 입주조건도 2인 1가구 원칙이어서, 급하게 결혼하거나 동성끼리 짝을 지어야 했다. 2015년 2월 현재까지 국내 24개 시설에는 4239명이 영주 귀국해 살고 있다.

▲ 영주귀국자 현황. ⓒ천지일보(뉴스천지)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게 소원”

꿈에 그리던 고향.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 앞에 닥친 현실은 쓸쓸함과 고독이었다. 노부부는 방 안에서 각자의 일을 하는 게 일상의 대부분이었다. 사할린에 두고 온 자녀를 만나러 가는 ‘역방문’ 사업이 있지만 이도 종료를 앞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할린 한인들의 자녀에 대한 그리움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할린에서 온 유묘열(76, 여, 인천)씨는 “주위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걸 보면 사할린에 두고 온 아이들이 생각난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속상하다”며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호소했다.

중앙아시아에 자녀를 두고 온 최창복(72, 남, 충남 아산)씨도 “너무 그리운데 할 수 있는 건 전화뿐”이라며 “명절에도 아이들을 못 봐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사할린 특별법 제정해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동포들은 ‘사할린 동포지원 특별법’ 제정에 입을 모으고 있다.

특별법은 ▲영주귀국 대상 확대 ▲사할린 잔류 희망자에 대한 지원 ▲사할린 동포 관련 업무를 관장할 기구 설립 ▲일본에게 받지 못한 저금과 미수금 상환에 대해 국가가 외교적 노력을 다할 것 등이 핵심이다.

17대 국회에서 처음 제기된 이 법안은 사안의 시급성이 강조됐지만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다. 18대 국회에서도 사할린 동포 관련 4개 법안이 발의해 소관위원회의 대안까지 만들어졌다. 하지만 법 제정에는 실패했다. 현재 19대 국회에서는 사할린 동포 관련 법안 두 가지가 상정돼 있다. 하지만 잇따른 실패로 통과여부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이 교차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지구촌동포연대 배덕호 대표는 “입법운동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해외동포와의 형평성 문제, 외교적 마찰 등을 들어 입법을 통과시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관·정 삼박자가 맞춰져야 문제가 해결된다”며 “특히 외교부가 일본 외무성에 문제 해결을 계속 촉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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