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설경구가 지난달 22일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카페 라디오엠에서 영화 ‘서부전선’ 홍보 차 천지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촬영: 이혜림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이현정 기자] “‘서부전선’은 다른 전쟁영화들과는 확실히 다르지 않나요? 그리 묵직한 메시지나 인물들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주인공들이 계급도 없어요. 사실 두 사람이 계급이 뭔지도 모르죠. 통성명도 나중에 하잖아. 전쟁은 배경일 뿐, 실제로는 휴머니즘이 매우 강한 어설픈 사람들의 이야기죠.”

모두가 대성통곡하는 초상집에서 뱃속에서 열 달의 시간을 이기고 막 태어난 갓난아이. 죽음과 삶의 경계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다시금 돌아가고 있는 오묘한 시간은 다름 아닌 6.25 전쟁 중인 서부전선이다.

누군가는 초상집에서 얼큰하게 취해 콧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전쟁 통에 초상을 치르느라 지쳐서 눈물을 흘리고 또 누군가는 갓 태어난 아이를 받아들고 생명의 신비를 만끽하고 있다. 평범한 군상들의 이야기와 버무려진 전쟁의 폐해는 마치 B급 코미디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영화 ‘서부전선’을 선택한 설경구도 이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근 카페에서 본지와 만난 설경구는 영화 ‘서부전선’에 대해 “정통전쟁영화가 아니라서 출연하게 됐다”고 슬며시 웃어 보이며 색다른 전쟁영화, 설경구의 마음을 움직인 ‘서부전선’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 영화 ‘서부전선’에서 설경구가 연기한 ‘남복’.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Q: ‘서부전선’ 남복 캐릭터, 평범하면서 인간적인 메시지 강한데 연기하면서 어떤 지점에 중점을 뒀나.

설경구: 남복 캐릭터는 욕심이 나는 캐릭터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남복과 함께 영광(여진구 분) 이 두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 가는 영화라 두 사람의 호흡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두 사람의 호흡이 안 맞으면 봐주기 어려웠을 텐데 다행히 호흡이 잘 맞았다. ‘서부전선’이 전쟁이 주가 아니고 그리 비장하지도 않다. 전쟁영화인데 전쟁영화 같지 않다. 아마 ‘전쟁영화지만 전쟁영화같지 않는 지점’을 신경 쓰지 않았을까.(웃음)

Q: 극 중 남복과 영광이 나이차이가 나는데 실제로도 여진구와 나이차이, 호흡은 어땠나?

설경구: 현장 호흡이 참 좋았다. 영화로만 보면 어설픈 장면도 있고 어리버리한 장면도 있는데 굳이 변명하고 변호하자면 그런 어설픈 장면들이 이 영화의 색깔과 잘 맞았다. 거칠고 억지스러운 장면 있는 것도 알지만 그래서 더 어설픈, 전쟁에 어설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이런 부분이 여진구와 잘 맞아 호흡도 좋았던 것 같다.

Q: 영화 속 남복은 엉뚱하고 어설픈 면모 때문에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 같다. 전작에도 이렇게 재미있는 캐릭터 보여준 적 있었나?

설경구: 없다. 이렇게 대 놓고 웃기려고 한 적 없는 것 같다. 사실 웃기려고 한 게 아니고 난 그냥 연기한 건데, 많이들 웃어주셨다.(웃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 듯 배우는 캐릭터를 남긴다는 생각해왔다. ‘설경구’라고 했을 때 ‘강철중’을 떠 올리듯이. 그런데 ‘설경구’라고 말해서 ‘남복’을 떠 올릴 것 같진 않다. 캐릭터가 튀는 영화가 아니라 스토리에 잘 어우러지는 전쟁영화로 내용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사실주의 영화가 아니고 작가적 상상이 재밌게 설정돼 있어 자연스럽게 남복 캐릭터가 웃음을 선사했던 것 아닐까.

▲ 영화 ‘서부전선’에서 여진구와 호흡을 맞춘 설경구.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Q: ‘서부전선’은 충무로에 손꼽히는 이야기꾼이자 제작자인 천성일 감독의 첫 연출작인데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설경구: 사실 글로도 천성일 감독과는 같이 작품을 안 해봤다. 그래서 잘 몰랐다. ‘7급 공무원’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을 썼다고 해도 감독이 누군지 궁금해 하지 작가를 궁금해 하진 않잖아. 영화는 감독예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더 그렇게 생각하는데 천 감독은 제작사 대표이면서도 책도 써. 특히 제작한 영화들을 보면서 믿음이 생겼기 때문에 이번 영화에 출연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Q: ‘서부전선’ 촬영 중 가장 신경 쓴 명장면이 있다면?

설경구: 엔딩 씬은 생각을 많이 한 장면이다. 테이크도 많이 갔다. 내상을 입은 상태라 정상은 아닌 남복의 심리를 묘사해야 했기 때문에 복잡했다. ‘서부전선’ 자체를 단순하게 연기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마지막 엔딩은 그러지 못했다. 결국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어가는 동료, 친구, 가족을 지켜봤을 여러 ‘남복’을 대변하는 신이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 배우 설경구가 지난달 22일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카페 라디오엠에서 영화 ‘서부전선’ 홍보 차 천지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촬영: 이혜림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Q: ‘서부전선’, 설경구에겐 어떤 필모그래피로 남게 됐나?

설경구: 곱씹으면 매우 슬프다. 남복은 참 슬픈 인물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열여덟 학도병인 영광을 때리고 괴롭히는데, 영화는 그 에피소드에서 빚어지는 코믹한 장면을 부각한 거잖아. 지금도 곱씹으면 슬픈 게 남복이다. ‘서부전선’은 내게 남복의 슬픔을 알려줬다.

한편 설경구 여진구 주연의 영화 ‘서부전선’은 지난달 24일 개봉해 절찬 상영 중이다.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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