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 사진가가 찍은 고종황제 사진 중 가장 오래된 사진으로 해강 김규진이 촬영해 미국 외교사절에 선물한 것이다. (사진제공: 뉴시스)

장소·촬영자·시기 상세히 기록
김규진, 황실사진가 활동 증명
흑백사진에 노란색 등 채색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한국인 사진가가 찍은 고종황제 사진 중 가장 오래된 사진이 미국에서 발견됐다. 특히 이 사진은 촬영 장소와 시기, 사진가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록돼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이번에 발견된 고종황제 초상사진은 대한제국이 일제에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늑약을 체결하기 두 달 전에 촬영된 것으로, 촬영 장소는 일제가 강압적으로 을사늑약을 체결했던 장소인 덕수궁 중명전(重明殿)으로 밝혀졌다.

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미국 뉴어크박물관에서 1905년 해강 김규진이 경운궁(덕수궁) 중명전에서 촬영한 고종 초상사진 등을 확인했다”며 “한국 사진가가 찍은 황실 사진 중 가장 시기가 이르고, 촬영 장소와 시기, 사진가 이름이 기록된 유일한 것으로 근대사와 사진사 연구에 획기적 자료”라고 지난 5일 밝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해당 사진은 지난 4월 미국 뉴어크박물관(Newark Museum)에서 한국 문화재를 조사하던 중 발견된 것으로 1905년 해강 김규진이 촬영해 미국 외교사절에 선물한 것이다.

사진은 가로 22.9㎝, 세로 33㎝로 흑백 사진 위에 황제의 복식인 노란색 황룡포와 보라색 익선관 등 일부를 채색한 것이 특징이다.

사진 한쪽 편에는 ‘대한황제진 광무구년 재경운궁(大韓皇帝眞 光武九年 在慶運宮)’과 ‘김규진조상(金圭鎭照相)’이라는 글씨가 인쇄돼 있다. 여기서 광무구 년은 1905년, 경운궁은 오늘날의 덕수궁을 뜻한다. 구체적인 촬영 장소는 사진의 바닥 타일의 문양이 현재의 덕수궁 중명전 1층 복도 타일과 일치해 궁내 중명전 1층 복도로 추정하고 있다.

국외소재문화재단 측은 “(해당 사진처럼) 채색된 고종 사진은 미국 워싱턴 프리 어새클러미술관이 소장한 사진을 포함해 두 점뿐”이라고 설명했다.

고종황제 초상사진을 촬영한 해강 김규진(1868~1933년)은 한국 근대 서화가이자 사진가로 그동안의 연구에서 대한제국 황실의 사진가로 활동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은 전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 사진의 발견은 김규진이 황실 사진가로 활동했다는 것을 증명할 뿐 아니라, 1907년 천연당(天然堂) 사진관을 열기 이전부터 사진가로서 활동했음을 확인해주는 계기가 됐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장진성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에 따르면 “고종 초상사진은 여러 점이 전하지만, 뉴어크박물관 소장 고종 초상사진은 연대와 작가가 함께 작품에 기록된 유일한 예”라며 “단순히 왕의 초상이라는 미술사적 가치를 넘어 1905년 격동하던 한국근대사의 양상을 알려주는 역사적 가치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사진은 미국의 철도 및 선박 재벌이었던 에드워드 해리먼(Edward Henry Harriman, 1848~1909)이 소장하던 것으로 그의 부인이 1934년 뉴어크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고종은 1905년 미국 테오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시로 아시아를 순회하던 사절단을 만나 해리먼에게 건네진 것으로 알려졌다. 고종은 당시 일본의 압박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여러 열강으로부터 도움을 얻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으로부터 도움을 얻고자 미국에서 온 사절단을 극진히 대접하고 사진 등도 선물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미국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한 뒤였다.

비록 단 한장의 사진이지만 지나간 역사의 숨은 부분 까지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 쓸쓸함이 묻어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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