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언론인

30대 회사원 A씨는 강아지의 생살을 찢고 내장칩을 꺼내 유기한 사건에 치를 떤다. 얼마 전 충남 천안에 사는 견주가 키우던 푸들과 말티즈를 버렸다가 정보 등록된 푸들의 칩을 통해 연락이 오자 이런 잔인한 짓을 한 뒤 두 마리를 또다시 유기했다.

몸 안의 내장칩은 사라지고 푸들 옆구리에 깊게 파인 상처를 드러낸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자 천인공노로 들끓었다. A씨 또한 분을 삭이지 못하고 인터넷 댓글부터 살펴봤다.

‘개 키우다 개 되는 세상’ ‘버림받은 고통의 상처투성이 눈빛, 인간에 대한 신뢰상실’ ‘천벌받을 개버린’ 등등. 비혼주의자 A씨도 유기견 푸들을 애지중지 키우는 입장이라 댓글에 격하게 공감한다. 그는 휴일을 이용해 틈틈이 유기견 돌봄 동아리 봉사활동에 나선다.

회원 300여명을 둔 N 유기견 동아리는 매주 토, 일요일마다 주로 수도권 유기견보호센터를 방문해 청소, 산책, 미용 봉사를 하고 있다. 대형견이 있는 센터에 처음 갔을 때 코를 찌르는 지독한 동물 냄새에 적응이 안 돼 구토가 날 지경이었다. 이젠 봉사활동을 하고 나면 몸은 고되지만 ‘셀프 힐링’을 한 듯 마음이 가벼워지고 기분도 좋아진다.

회원들은 ‘개 식용 금지’와 ‘비윤리적인 강아지 번식 금지’ 법 제정 온라인 청원 운동에도 적극 동참했다. 1500만명 반려동물 인구 시대에 이르면서 동물유기 뿐만 아니라 무허가 강아지 번식 문제도 심각해졌다. 양계장 닭처럼 비좁은 번식장에서 발정제를 맞은 개들이 한 해 45만 마리의 강아지를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아지 공장에서 태어난 새끼들이 어미젖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경매장과 펫숍으로 팔려나간다. 그저 강아지, 고양이가 귀여워 뭣도 모르고 입양했다가 배설물 처리나 털 날림 등의 번거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내다 버리는 행태가 급증하고 있다.

유기견 돌봄 회원들은 최근에 일명 ‘김건희 법’으로 불리는 개 식용, 도살, 유통 종식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다행으로 여긴다. 서울시의회가 동물권 인식개선과 보신탕 관련 사업주의 전업 및 폐업 지원에 필요한 ‘개 식용 종식을 위한 지원 조례안’을 발의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이들 눈에 비치는 국내 동물보호의 길은 아득하고 멀기만하다.

보신탕 먹기 어렵게 되자 대체 보양식으로 떠오른 흑염소 수요가 늘고 있다고 한다. 엊그제 경북 경주의 한 펫숍가게 앞에 피범벅의 강아지 사체를 담은 비닐봉지가 놓여있어 경악스럽다. 사체를 발견한 업주는 경찰에서 “개 식용 금지법에 반발한 의도적인 범행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왜 이렇게 사람이기를 포기한 잔혹사가 자꾸 일어나나.

동물권을 심각히 고민하는 시대다. 고대 이집트 시대엔 신으로 숭배했던 고양이를 손상하면 사형에 처했다고 한다. 요즘 개나 말 등 동물을 파트너로 둔 동물성애자(주파일‧zoophile)를 다룬 논픽션 ‘성스러운 동물성애자’라는 책이 나왔다.

도심 공원에 가면 반려동물을 대동한 노인 너댓명이 정자나 의자 주변에 모여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홀로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강아지가 자식과 다름없는 식구다. 대통령들도 한결같이 반려견을 키운다.

국내에선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미국 태생 스패니얼 4마리와 살았고 박정희, 전두환, 김대중,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 전 대통령들도 진돗개, 풍산개, 삽살개, 보더콜리 등 여러 종류의 반려견과 함께 했다.

클린턴, 오바마, 바이든 등 미국 대통령도 기념일이나 봉사활동 장소에 반려견을 데리고 대중 앞에 선다. 바이든 대통령이 키우던 셰퍼드는 개물림 사고를 11번이나 일으켜 백악관에서 퇴출됐다. 정상 관저에 사는 반려견은 영부인인 ‘펴스트 레이디’와 같은 반열의 ‘퍼스트 독’이라 호칭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퍼스트 독은 은퇴한 시각장애인 안내견 ‘새롬이’를 비롯해 10마리가 넘는 것으로 보도됐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반려동물 병원비와 치료비 경감(표준수가제 도입), 불법 강아지 공장 근절, 동물 학대 예방 및 학대 처벌 강화, 전담기관 신설 등을 공약했다.

이 중 김건희 여사가 강력히 주창한 개 식용 금지법만 이뤄졌다. 반려동물 정책이 1500만명에 이르는 ‘펫팸(pet+family 합성어)족’의 표심만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려면 나머지 공약도 추진돼야 한다.

유기견 돌봄 회원들은 이런 진정성을 갈구하고 있다. 윤 대통령 부부는 TV 동물농장에 출연해 “반려견 사지 말고 (유기견) 입양하세요”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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