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언론인
서울대에 글로벌 스타트업 기업을 양성하는 ‘캠퍼스타운’이 있다. 4년 전부터 서울시, 관악구와의 협업을 통해 창업 불모지와 다름없던 관악캠퍼스 주변을 ‘창업 밸리’로 조성하기 위한 선도 역할을 하고 있다. 교수진과의 기술 연계, 맞춤형 컨설팅, 커뮤니티 활동 지원 등을 다채롭게 펼치고 있다. 대학동, 낙성대동 2개 거점센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창업 및 지역 상생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입주기업에 창업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런 혜택 때문에 유망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 창업가들 사이에 캠퍼스타운 입주 경쟁이 치열하다. 그간 87개 스타트업 기업들이 들어와 벤처캐피탈(VC)을 1300억원 가량 유치했고, 전체 매출액이 3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VC 유치액의 경우 서울시가 지원하는 32개 대학의 전체 실적 중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캠퍼스타운 목표는 이런 양적 성과보다 서울을 ‘글로벌 5위 창업도시’로 발돋움시킬 최첨단기술 혁신기업 육성에 두고 있다. 입주기업 중 햄버거 조리 로봇을 개발한 ‘에니아이’는 미국 주식시장인 나스닥 상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

카이스트를 졸업한 30대 대표를 비롯한 4명의 공동 창업자들이 4년 만에 로봇제어, 설계, 인공지능(AI) 인지 원천기술을 개발해 세계 주방 자동화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캠퍼스타운 내에서 유니콘 기업(국내 23개에 불과한 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예비 등극 1순위로 꼽히고 있다.

AI 기술을 이용해 반려동물 생체인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를 출시한 기업 등 2~3개 입주업체도 조만간 국내 주식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암 치료를 위한 나노 항암제, AI 영상 생성 서비스, 세계 최초 동형 암호 상용화 기술 개발 등 특색 있는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4년간 캠퍼스타운을 진두지휘했던 A교수를 얼마 전 만났다. 관악산 계곡길 등산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그의 연구실은 맑고 신선한 공기로 가득했다. A교수는 현대 자본주의의 정치, 경제, 사회 영역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독일의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를 신봉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베버 묘지, 집무실, 집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고풍스런 비석엔 ‘MAX WEBER 1864~1920, MARIANNE WEBER 1870~1954’라는 베버 부부 합장을 알려주는 묘비명이 선명했다.

베버는 당대의 유명한 학자이기도 했지만 1차 세계대전 후 자유주의 독일민주당을 창당하고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든 현실 정치가이기도 했다. 1919년 바이마르 헌법을 입안하는 위원회 고문으로도 일하다 스페인 독감에 감염돼 돌연 56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국가 관료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같은 거대조직 문제에 천착하면서 정치인에겐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주문했다. 베버가 갈망했던 정치인은 소명의식을 튼튼히 하고, 내면적 실력을 꾸준히 다듬어가는 ‘책임 윤리’ 강한 사람들인데, 요즘 얼마나 될까.

A교수는 베버가 주창한 합리적 관료주의와 시장 자본주의 정신을 ‘스타트업 국가론’으로 승화하고 있다. “고도성장 대신 저성장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된 상황에서 무엇을 주력 성장 동력으로 삼을지가 대단히 중요하다.

반도체, AI, 바이오, 배터리, 디지털헬스, 서비스경제 전환 촉진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창업으로서의 스타트업을 산업개념으로 보고, 이를 성장동력으로 채택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벤처기업을 대대적으로 육성하는 경제 체질로 변화시켜보자는 것이다.

그는 ‘기술패권 전쟁시대’에 돌입한 현재 한국의 경쟁 상대는 일본이나 유럽 국가를 이미 넘어섰기에 미국, 중국 2개 국가로 설정한다. 미국과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벤처기업을 대대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국내 또한 벤처기업 매출 총액이 삼성 그룹 다음으로 2위에 이를 만큼 급성장하고 있다. 국내 벤처기업의 총 고용인원이 4개 대그룹보다 많은 것으로 집계된다. 프랑스도 스타트업을 국가 성장동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는 스타트업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국가가 될 것이다. 창업을 위한 가장 매력적이면서 창의적인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공언했다.

서울대 벤처타운의 실험이 정부, 국회. 대기업에 큰 울림이 되면 좋겠다. 총선이 다가오지만 민생경제나 국가를 살려보려는 치열한 정책과 공약 대결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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