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출연·SBS 지분 매각 빠져
보증채무 규모, 자구안보다 커
산은, 워크아웃 무산 경고 내놔
당국 “주말까지 대안 내놔야”
하도급·분양자 볼모 비판도

(서울=연합뉴스) 김주현 금융위원장(왼쪽 네 번째)이 2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과 관련한 대응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3.12.28
(서울=연합뉴스) 김주현 금융위원장(왼쪽 네 번째)이 2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과 관련한 대응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3.12.28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태영건설이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을 신청한 가운데 채권단과 태영건설 간 기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태영그룹이 가진 것을 최대한 내놓아야 하지만 오너 일가의 대규모 사재 출연, 핵심 계열사인 SBS 지분 매각 등을 자구안에 포함하지 않으면서 워크아웃 불발 가능성도 제기되면서다.

일각에선 태영건설이 법정관리로 가게 될 경우 하도급 업체 줄도산, 채권단 등 금융사 연쇄 타격, 분양계약자 피해 등 여러 방면에서 정부의 부담이 큰 만큼 태영그룹이 이를 이용하는 것이라는 목소리까지 내놓고 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태영그룹은 3일 태영건설 워크아웃 관련 채권단설명회에서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1549억원)의 태영건설 지원 ▲에코비트 매각추진 및 매각대금의 태영건설 지원 ▲블루원의 지분 담보제공 및 매각 추진 ▲평택싸이로 지분(62.5%) 담보제공 등 4가지 자구안을 내놓았다.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은 당시 직접 채권단설명회에 참석해 “태영이 이대로 무너지면 협력업체에 큰 피해를 남기게 돼 줄도산을 피할 수 없고 국가경제 위기의 불씨가 될 수 있다”며 워크아웃 동의를 눈물로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오너 일가의 대규모 사재 출연, 핵심 계열사인 SBS 지분 매각 등이 자구안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일부 채권단 관계자들은 태영건설의 자구안이 기대에 못 미친다며 설명회가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뜨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시장에서는 계열사 매각과 지분 담보제공 등이 담긴 태영건설의 이번 자구안을 통해 태영건설에 지원될 수 있는 금액이 현재 시장가치 기준으로 1조~1조 2천억원가량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태영그룹이 채무자설명회에서 공개한 태영건설 현황에 따르면 태영건설의 유위험 보증채무(우발채무)는 브릿지보증 1조 2193억원, 분양률 75% 미만 본 PF 보증 1조 3066억원 등 2조 5259억원이다.

태영그룹의 주장대로 9조원대 PF 보증채무 중 실제 문제가 되는 우발채무를 2조 5천억원가량으로 본다고 해도 이번 자구안은 이를 해소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이러한 가운데 태영그룹이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 때 내놓은 자구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신뢰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태영건설은 지난달 29일 만기가 돌아온 1485억원의 상거래채권 중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 451억원을 갚지 않았다.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이란 원청업체가 협력업체에 구매 대금을 현금 대신 지급한 외상매출채권을 담보로 협력업체가 받은 은행 대출을 말한다. 태영건설이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을 계속 상환하지 않으면 협력사들이 은행 대출을 추가로 받기 어려워 자금난에 빠질 수 있다.

태영건설은 이에 대해 “해당 외담대는 원칙적으로 금융채권으로 분류돼 상환이 유예된 것”이라며 “워크아웃 통지 시점부터 금융채는 지급이 유예되기 때문에 지급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라 상환이 유예됐다는 주장이다.

금융당국이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 당일 “만기가 돌아오는 상거래채권에 대해선 모두 결제할 것으로 안다”고 밝혔던 것과 배치되는 결정을 내린 셈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지난 주말 은행권에 협력사를 대상으로 한 상환 청구권 행사 유예를 요청하는 조치를 취하는 한편, 채권단과 협의를 거쳐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지주사 티와이홀딩스가 태영건설에 유동성을 지원하겠다는 약속도 논란이 일고 있다.

티와이홀딩스는 지난달 28일 “태영건설의 안정적 자금 운용을 위해 1133억원을 1년 동안 대여하기로 했다”고 공시했지만 실제로 빌려준 건 400억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논란이 일자 태영건설은 이날 공시를 통해 “이사회 결의 후 두 회사는 1133억원을 한도로 1년간 차입 계약을 체결한 것”이라며 “향후 잔여 금액(733억원)에 대한 부분은 당사의 필요 상황에 따라 차입이 실행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해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태영그룹이 당초 약속한 자구 계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주채권 은행으로서 대단히 유감스러운 상황”이라며 “태영건설 측이 문제해결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채권단의 원만한 협조와 시장 신뢰회복 이끌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또 “워크아웃 협의 과정에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지원, 에코비트 매각추진, 블루원 지분 담보 및 매각 추진, 평택 사이로 지분 62.5% 담보 제공을 제시했지만, 태영 측은 1번 약속 중 400억원만 태영건설에 지원하면서 신뢰가 상실됐다”고 지적했다.

강 회장은 특히 태영그룹이 더 높은 수준의 자구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채권단의 75% 동의를 거쳐야만 워크아웃에 돌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경고를 내놓기도 했다.

만일 워크아웃이 무산된다면 법정관리를 받아야 하는데 이 경우 협력업체 공사대금 등 상거래채권까지 모든 채권이 동결되면서 분양 계약자와 500여개 협력업체의 피해가 커지게 되고 나아가 국내 경제의 뇌관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금융당국 역시도 ‘오너 일가의 자구계획’ ‘자기 뼈가 아니라 남의 뼈를 깎는 방안’ 등 비판을 이어가며 추가 자구안을 이번 주말까지 내놔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채권단 입장에서는 태영건설 자구계획이 아니라 오너일가 자구계획”이라며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뼈를 깎는 자구노력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채권단 입장에서는 남의 뼈를 깎는 노력”이라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자금에 대해서도 “당초 약속한 1549억원 중 실제로 태영건설에 지원한 400억원도 회사가 받은 매각자금만 들어가 있고, 대주주 일가의 자금은 파킹돼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채권단이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블루원을 매각한 대금을 대주주 일가가 필요한 급한 채무변제에 먼저 쓰고 남은 돈을 태영건설에 투입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 들었다”며 “그렇게 되면 실제로는 현금성 자산은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태영건설이 오는 11일로 예정된 제1차 채권단 협의회까지가 아니라 바로 이번 주말까지 채권단이 납득할 수 있을 수준의 자구안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영건설 자구안을 두고 논란이 이는 가운데 태영그룹이 정부의 부담을 이용해 배짱을 부리는 것이라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실례로 티와이홀딩스 관계자는 채권단 설명회 후 “어려움을 겪으면서 태영건설을 살리려는건 태영건설과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이해관계자들이 많고 ‘사회적 파장’이 일어날 수 있는 기업이니 어떻게든 살리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태영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하도급 업체와 분양계약을 맺은 일반인 등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태영그룹이 이를 볼모로 삼고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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