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왕 사태’로 ‘무자본 갭투자’ 등 전세제도 맹점 드러나
‘철근 누락’으로 신축 지하주차장 붕괴… ‘전관 문제’ 대두
‘고금리’에 PF 위기 다시 수면 위로… 부도 건설사도 19곳
국토부 수장 박상우로 교체… 10년 만에 국토부 출신 인사

박상우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식 사진. (제공: 국토교통부) ⓒ천지일보 2023.12.27.
박상우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식 사진. (제공: 국토교통부) ⓒ천지일보 2023.12.27.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계묘년(癸卯年)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검은 토끼의 해’라는 이름처럼 올해는 현행 임대차 제도의 맹점과 건설업계의 어두운 면이 드러났다. 대규모의 전세사고·사기가 잇따르면서 전세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었고, 신축 단지 철근 누락 붕괴 사고로 ‘무량판 포비아(공포증)’까지 확산하면서다.

이 과정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관 문제’ 등 내부 비위가 수면 위로 드러났고, 민간 기업에도 공공부문 공급 기회를 주는 극약처방이 내려졌다. 아울러 건설업계는 현재는 계속된 고금리로 자금시장이 경색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한편 올해에는 내년 총선에 맞춰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물러나고, 박상우 전 LH 사장이 장관으로 발탁됐다. 국토부 출신 인사가 장관으로 선 것은 권도엽 전 장관 이후 10년 만이다. 검사 출신으로 제주도지사를 지낸 원 장관과는 달리 국토부 출신으로 LH사장까지 역임한 박 장관이 내년 우리나라 부동산과 건설 경제에서 전문성을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천지일보 부산=윤선영 기자]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부산지역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5일 오전 부산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판 빌라왕으로 불리는 이모씨의 전세사기 사건의 판결 선고를 일주일 앞두고 법원에 엄중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10.05.
[천지일보 부산=윤선영 기자]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부산지역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5일 오전 부산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판 빌라왕으로 불리는 이모씨의 전세사기 사건의 판결 선고를 일주일 앞두고 법원에 엄중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10.05.

◆무지성 갭투자 부작용에 ‘빌라 공포’ 확산

지난 2022년 12월을 기점으로 확산한 ‘빌라왕 사태’는 전 국민에게 ‘전세 빌라는 위험하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빌라왕 사태는 특정 개인이나 법인이 수천채의 빌라를 ‘무자본 갭투자’로 사들이면서 문제가 됐다.

갭투자란 전세보증금과 매매가의 차이가 적은 집을 사들인 후 세입자를 구해 받은 보증금으로 대출을 갚는 방식을 말한다. 이때 전세가율이 높을수록 자기 자본이 줄고, 추후 집값이 오르면 시세 차익을 노릴 수 있다.

문제는 투기꾼들이 시세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신축 빌라’를 활용해 세입자를 꼬드겼다는 점이다. 갭투자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다만 투기꾼들은 전세가율 100% 넘는 빌라를 활용해 무자본 갭투자 수천회 이상 반복해 집을 사들였고, 이후 이자 부담과 세금을 버티지 못하고 파산해 버렸다.

이들이 파산하면서 빌라들이 경·공매로 넘어갔고, 수십만명에 달하는 피해 세입자들은 한순간에 길거리로 나 앉게 됐다. 정부는 피해자에 저리 대출이나 LH를 통한 매입 임대 등 대책을 마련했지만, 전세보증금을 대신 돌려줄 순 없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원 장관은 지난 5월 16일 “전세제도가 수명을 다한 게 아닌가 한다”며 “역전세, 전세 사기 문제가 엉켜 있고 등록임대사업자 제도도 손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임대차 신고에 행정력을 쏟기보다 전체적인 임대차 시장에 대해 큰 틀의 공사를 한 뒤 행정권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전세 빌라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올해 10월까지 서울 빌라 전세 거래량은 누적 6만여건(서울부동산정보광장 기준)으로 전년보다 1만 6천여건(26%) 줄었다. 반면 월세는 4만 7천여건에서 5만 2천여건으로 늘었다.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신축 공사장 붕괴 사고. (출처: 연합뉴스)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신축 공사장 붕괴 사고. (출처: 연합뉴스)

◆“또 부실 공사”… 정부, 무량판 전수조사

올해 4월 29일에는 인천 검단신도시에서 아파트 신축 현장의 지하주차장 1~2층이 붕괴하기도 했다. 해당 붕괴가 밤 11시 30분경에 발생해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지상층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설치될 예정이었기에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붕괴는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했다. 무량판 구조란 중량을 떠받치는 ‘벽’이나 가로 기둥인 ‘보’ 없이 기둥과 천장 슬래브 내의 철근으로만 상부층의 하중을 견디게 만든 구조를 말한다.

문제는 상부층의 하중을 분산할 ‘전단보강근’을 제대로 시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토부 조사 결과 지하주차장의 전체 기둥 32개 중 17개 기둥에만 보강근이 적용됐다. 또 사고 구간의 콘크리트 강도도 설계기준인 24MPa의 85%인 20.4MPa보다 낮은 16.9MPa로 측정됐다. 시공사인 GS건설은 전면 재시공을 약속했고 올해 대표이사가 임병용 부회장에서 허윤홍 사장으로 전격 교체됐다.

조사 과정에서 정부는 지난 2017년 이후 준공된 무량판 구조 적용 민간 아파트 293곳(약 25만 가구)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했고, 이 과정에서 ‘무량판 포비아’가 확산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이미 안전하다는 검증이 끝난 무량판 구조가 졸지에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고 비판했다.

또 전수조사 자체도 ‘말만 요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제대로 된 조사를 하려면 가구마다 강도 점검을 점검해야 하지만, 주민 반대 등을 이유로 표본 조사에 그쳤고, 기간도 2달 만에 끝내버렸기 때문이다.

무량판 포비아는 날림공사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발주자인 LH로 번졌다. 발주자가 점검해야 할 설계 과정에서부터 철근이 누락됐고, 설계와 감리 용역 업체도 LH 전 직원이 있는 ‘전관 업체’였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2021년 부동산 투기 사태 이후 LH의 내부 비위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드러났고, 정부는 ‘이권 카르텔’을 척결하겠다고 엄포했다. 정부는 지난 12일 ‘LH 혁신방안’으로 공공주택사업을 민간 기업도 할 수 있게 했다. 다만 LH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민간에만 사업 기회를 만들어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 중단이 장기화 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의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분쟁 중재안에 대해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이 거부 의사를 밝혔다. 시공사업단은 서울시의 요청으로 합동점검 기간 중 일시 중단한 타워크레인 철수를 오는 7일부터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사진은 5일 오후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현장 모습. 2022.6.5 (출처: 연합뉴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 중단이 장기화 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의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분쟁 중재안에 대해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이 거부 의사를 밝혔다. 시공사업단은 서울시의 요청으로 합동점검 기간 중 일시 중단한 타워크레인 철수를 오는 7일부터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사진은 5일 오후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현장 모습. 2022.6.5 (출처: 연합뉴스)

◆우발채무 우려 커져… 태영건설도 ‘곤욕’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50%로 연중 유지하는 등 고금리가 계속되면서 부동산 PF 위기도 다시 심화하고 있다.

대규모 개발사업이 진행될 경우 시행사는 은행 대출을 통해 자금을 마련한다. 문제는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고금리까지 계속되면서 이자 부담을 못 버티는 시행사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통상 시공을 맡은 건설사가 보증을 선 만큼 시행사의 부도는 건설사의 부도로 이어지고, 돈을 빌려준 금융권도 안전하지 못하다. ‘연쇄 부도’로 이어질 수 있는 대목이다.

29일 금융·건설업계에 따르면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건설업계 PF 리스크를 주시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한신평)는 15개 건설사의 부동산 PF 보증금이 올해 2분기 기준 27조 7천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중 위험도가 높은 미착공 PF, 즉 브릿지론은 12조 7000억원 규모다.

나이스신용평가도 현재 만기연장으로 버티고 있는 브릿지론의 규모를 30조원으로 추산했다. 브릿지론이란 본 PF 대출 조달까지 필요한 사업자금에 투입되는 금융 대출을 말한다. 나이스신용평가는 “고금리가 길어질 경우 브릿지론의 30~50%는 최종 손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건설 경기 위축과 PF 이자 부담에 부도난 건설사도 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9월 말까지 19곳의 건설사가 부도났다. 이는 최근 3년 새 가장 많은 수준이다. 폐업 신고는 종합건설사만 366건으로 작년(214건)보다 71% 증가했다.

PF 우려가 확산하면서 대형 건설사를 보는 시선도 마냥 곱지는 않다. 도급순위 16위의 태영건설은 자기자본 8400억원이고, PF 우발채무는 3조 5000억원을 웃돈다. 우발채무란 당장은 채무가 아니지만 시행사가 부도날 경우 시공사가 떠맡아야 하는 은행 대출을 말한다. 또 업계 8위인 롯데건과도 PF 우발채무 4조 9700억원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식. (제공: 국토교통부) ⓒ천지일보 2023.12.27.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식. (제공: 국토교통부) ⓒ천지일보 2023.12.27.

◆‘잔뼈 굵은’ 신임 장관, 부동산 위기 타계할까

검사 출신 국토부 장관이 LH 사장 출신인 박상우 장관으로 교체된 점도 올해 있었던 굵직한 이슈 중 하나다. 박 장관은 지난 26일 취임식을 진행했고 현재 국토부 장관으로서 임기를 시작했다. 사법고시 수석 합격 검사 출신으로 제주도지사를 역임했던 원희룡 장관은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지난 22일 물러났다.

박 장관은 국토부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27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국토해양부 시절 주택정책과장, 국토정책국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또한 국토부에선 기획조정실장 등을 맡아 국토부 실무와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인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2012년 국토해양부 주택토지실장 당시는 분양가 상한 탄력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 등 이른바 ‘주택 3법’과 같은 굵직한 주택시장 정상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박 장관은 이후 국토부를 나와서는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 건설주택포럼 회장 등 건설업계 유력 기관장으로 활동을 이어갔고, 지난 2016~2019년에는 LH 사장으로 임기를 수행했다. 

실제로 박 장관은 LH를 이끌며 주택공사·토지공사 통폐합 후 이어진 약 20조원의 부채를 감축해 LH의 재무구조를 개선한 바 있다. 아울러 박 장관이 국토부 장관에 취임하면 최근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와 전관예우 논란 등으로 도마 위에 오른 LH 혁신안을 주도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박 장관은 지난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을 통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연착륙 등 주택시장 불안요인을 최소화하는 한편 가구 형태, 소득 수준에 맞춰 다양한 주거 옵션이 제공될 수 있도록 재건축·재개발 규제와 절차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다양한 정비사업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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