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전 대통령이 국가보훈부에 의해 내년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국가보훈부가 1992년부터 선정해온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이 전 대통령이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제야 이 전 대통령이 독립운동가로 포함됐다는 사실에 놀라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동안 보훈부는 매년 12명 이상의 독립 유공자를 선정했다. 김구 주석, 유관순 열사, 안중근 의사 등 두 차례 중복 선정된 13명을 포함해 현재까지 총 463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 중에는 외국인도 12명이나 들어있다.

‘이달의 독립운동가’는 지방자치단체와 관련 기관, 기념사업회 등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보훈부, 광복회, 독립기념관, 근현대사 전공학자 등으로 구성된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위원회’가 선정한다. 보훈부는 이 전 대통령의 독립 관련 공적으로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지낸 점,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으로 1942년 한인자유대회를 개최한 점을 들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지휘한 최고 책임자였던 이 전 대통령을 30년 넘게 ‘이달의 독립운동가’에서 배제한 것은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 당시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혁명으로 하야한 대통령이라는 평가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선정 과정에선 1945년 이전 조국 독립을 위해 힘썼던 공적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고 보훈부는 설명했다.

보훈부가 이 전 대통령의 독립운동 공적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을 계기로 그의 일제 강점기 활동에 대해 재평가를 해야한다. 이승만은 독립운동가로 외교 독립론을 이끌었다. 한국 독립에 영향을 주는 여론을 미국 내에서 만들었으며,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자 한국에 무지했던 미국 내에서 한국 독립에 대한 처리에 영향을 주는데 결정적으로 기여를 했다.

1941년 ‘일본 내막기’라는 책을 저술해 일본에 대해 순수한 시각을 갖고 있었던 미국인들에게 일본 제국주의의 위험성을 알렸다. 특히 해방직전인 1945년 2월 ‘얄타 비밀협약’을 폭로함으로써 얻어 낸 성과는 단연 최고이다. 그의 애국적 모험 덕분에 한반도가 공산주의 러시아에 병합될 위험이 실질적으로 사라졌다는게 역사적 평가이다.

이승만이 해방 직후 귀국했을 때, ‘최고의 독립 운동가’ ‘구국의 지도자’ ‘민족 지도자’ 등으로 국민적인 환영을 받았으며, 1948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대통령 재임 중 대한민국 정부 수립, 농지개혁,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등과 같은 족적을 남겼으며, 6.25 전쟁과 같은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도 했다.

6.25 전쟁 막바지에 8군 사령관을 지낸 맥스웰 테일러 장군은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 같은 지도자가 베트남에도 있었다면 베트남은 공산군에게 패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소모적 이념논쟁으로 인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좌파를 중심으로 한 일각에선 ‘친일파의 거두’ ‘독재자’로 몰아가며 기념관도 짓지 못하게 했다. 윤석열 정부들어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위한 모금 움직임이 있는 등 공적을 평가하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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