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행사 취소·축소… ‘잔해 속 아기예수’ 구유장식도 등장
“순례·여행객 거의 없어… 코로나19 때보다 안 좋은 상황”

(베들레헴 UPI=연합뉴스) 지난 18일(현지시간) 요르단강 서안지구 베들레헴에 있는 루터교 성탄교회 안에 설치된 성탄 맞이 예수 구유장식. 팔레스타인을 상징하는 검은색과 흰색의 ‘카피예’에 싸인 아기예수상이 가자지구의 폐허를 상징하는 건물 잔해 속에 누워 있다.
(베들레헴 UPI=연합뉴스) 지난 18일(현지시간) 요르단강 서안지구 베들레헴에 있는 루터교 성탄교회 안에 설치된 성탄 맞이 예수 구유장식. 팔레스타인을 상징하는 검은색과 흰색의 ‘카피예’에 싸인 아기예수상이 가자지구의 폐허를 상징하는 건물 잔해 속에 누워 있다.

[천지일보=방은 기자] 세계적 축제일이자 기독교의 기념일인 성탄절이 다가왔지만 예수 탄생지로 알려진 요르단강 서안 도시 베들레헴의 분위기는 전쟁의 그림자로 황폐화 됐다.

24일(현지시간) 도이치벨레(DW), CNN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두 달 넘게 이어지면서 교회 지도자들은 올해 성지에서의 성탄절 행렬 규모를 예년보다 훨씬 축소하거나 장식과 일부 축제를 취소했다. 지역 지도자들도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연대하기 위해 축제를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베트남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존 빈(John Vinh)은 “올해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불빛이 없으며 어둠만 남는다”고 말했다.

예루살렘의 가톨릭 총대주교는 이날 점령된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베들레헴으로 가는 성탄절 행렬을 이끌었다.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은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몇 명과 소수의 다른 신자들만 동행했다.

베들레헴은 보통 크리스마스 즈음에 화려한 트리 점등식과 드럼, 백파이프 연주자의 퍼레이드 등으로 떠들썩한 축하 행사가 진행됐다. 명소인 구유 광장(Manger Square)이나 시장 등 거리 곳곳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만명의 순례객과 여행자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올해는 방문객뿐만 아니라 트리, 불빛 장식, 퍼레이드, 캐럴 등 어느 것도 찾아볼 수 없다.

베들레헴 인근에 위치한 가자지구에서만 2만명 이상 숨진 상황에서 아무도 성탄절을 기쁘게 맞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공습과 지상전으로 2만명 넘게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으며 가자지구 전체 인구의 거의 85%가 난민이 됐다.

베들레헴 도심에는 예수 구유 장식에도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베들레헴의 한 복음주의 루터교 교회는 가자지구를 상징하는 부서진 벽돌과 시멘트 조각 사이에 팔레스타인을 상징하는 검은색과 흰색의 체크무늬 두건 ‘카피예’에 싸인 아기 예수로 구유 장식을 꾸몄다.

이 교회의 문테르 이삭 목사는 “오늘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고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오늘 예수가 온다면 그는 가자지구의 돌무더기에서 태어날 것이다. 이것이 팔레스타인의 성탄절 모습이고 진정한 메시지”라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축하 행사가 중단되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성탄절 교회는 대부분 텅 비어 있다. 2012년 팔레스타인 영토 내 첫 세계문화유산이 된 예수 탄생 교회도 대부분 텅 비어 있다. 아울러 전쟁의 여파로 긴장이 높아지면서 베들레헴이 있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는 올해 외부 방문객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베들레헴의 경제는 순례자와 관광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하는 3대째 가게 주인인 로니 타바시는 가게 밖에 서서 오지 않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1927년에 할아버지가 가게를 열었다는 그는 “이런 성탄절은 처음 봐요. 솔직히 3개월 동안 판매가 한 건도 없었어요. 하지만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코로나19 때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라고 지역 경제를 설명했다.

요르단강 서안 지구 경제는 70%가 관광업이 차지한다. 그 중 대부분은 크리스마스 순례와 관련이 있다. 현지 관리들은 베들레헴에 있는 70개 이상의 호텔이 문을 닫아야 했고, 수천명이 실직했다고 전했다.

성탄절을 낀 연말 휴가철 관광 수입에 크게 의지하고 있는데 베들레헴은 이번 전쟁으로 “경제가 마비됐다”고 한나 하나니아 베들레헴 시장이 말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거의 매일 폭격 소리를 듣게 된 레바논 남부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이 지역의 경제는 또한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 이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노동 허가를 취소함으로써 타격을 입었다. 10월 7일부터 이스라엘은 베들레헴과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다른 팔레스타인 마을에서 이동을 제한하고 있으며, 군 검문소를 통해 출입을 허용하고 있어 출근하려는 팔레스타인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에 따르면 점령지에서도 폭력이 급증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최소 30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

성탄절 기간에도 한산한 ‘예수탄생교회(Church of the Nativity)’(출처: 로이터, 연합뉴스)
성탄절 기간에도 한산한 ‘예수탄생교회(Church of the Nativity)’(출처: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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