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부모만 한 자식이 없다는 말이 있다. 이 표현은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지를 강조하며, 부모·자식 간의 특별한 유대감을 나타낸다. 어떤 부모에게도 자식이 그 자체로 가장 소중한 것이며, 부모의 사랑은 돈이나 성과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이 생각난 것은 한국 프로야구 간판스타 이정후가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입단 합의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이다. 뉴욕 포스트 존 헤이먼, 디애슬레틱의 켄 로젠탈 기자 등 미국 현지 대표적인 소식통은 13일(한국시간) 엑스(옛 트위터)에 “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와 6년 1억 1300만 달러에 입단 합의했다. 계약서에 4년 뒤 옵트아웃(구단과 선수 합의로 계약 파기) 조항이 포함됐다”고 썼다.

계약대로라면 이정후는 한국 선수의 빅리그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 역사를 새로 쓴다. 앞서 류현진이 2013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6년간 3600만 달러(연평균 600만 달러)에 계약하며 한국프로야구를 거쳐 미국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는 첫 사례를 만들었다. 현재까지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 중 최대 규모 계약이었다. 타자 중에서는 이정후의 절친한 선배인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이 2021년 샌디에이고와 한 4년 2800만 달러(연평균 700만 달러) 계약이 최대 규모였다. 연평균 보장액은 김하성이 류현진보다 높다.

이정후는 아버지 이종범과 함께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간판타자였다는 특이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빠른 발과 빼어난 타력으로 ‘바람의 아들’로 불린 이종범은 해태 타이거즈 소속이던 1993년, 1996년, 1997년 3차례 우승, KIA의 구단 인수 후 첫 우승인 2009년을 포함해 총 4차례 우승을 이끌었다. 대표적인 수상 기록으로는 통산 정규 시즌 MVP 1회, 한국시리즈  MVP 2회, 골든글러브 6회, 미스터 올스타 1회를 수상했다. 또한 2002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6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대표팀 주장으로 참가해 각각 금메달과 4강 진출에 기여하기도 했다.

이정후는 프로 입단 전부터 이종범의 아들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고교 시절 주포지션은 유격수로 뛰며 타격에서의 잠재력을 인정받고 프로에 입단했다. 입단 후 출전 기회 보장을 위해 당시 공석이었던 중견수로 전향했고, 2017년에 10년 만의 고졸 신인왕이 됐다. 정교한 타격과 선구안, 배트 컨트롤로 안타를 생산해 내는 컨택 능력이 특징으로 5년 연속 골든글러브와 2년 연속 타격왕, 2022년 MVP 수상을 한 바 있다. 특히 아버지처럼 발이 빨라 도루가 많았던 이정후는 ‘바람의 손자’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한 전문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부모의 뒤를 이어 자식이 부모를 뛰어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천부적인 재능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을지 몰라도 개인적 열정과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부모와 같은 성공을 이루는 것이 매우 힘들다. 정치나 기업 명문가에서 가업을 잇는 것이 어려운 이유이다. 운동 분야도 비슷하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치열한 승부의 장이 펼쳐지는 운동 경기에서 부자가 나란히 성공신화를 세운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스물세살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쓴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었다”고 썼다. 우리 프로야구계는 보기 드문 부자 성공신화를 써내려간 이정후가 아버지에 이어 ‘바람’자가 들어가는 별명을 갖고 있는 만큼 메이저리그에서 멋진 야구를 펼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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