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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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민음 정치부 기자

‘탈진실(post truth)’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난달 27일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인 메리엄 웹스터가 올해의 단어로 ‘authentic(진짜·진정성)’을 꼽았다. 메리엄 웹스터에 따르면 이 단어는 진실(real), 사실(actual)과 동의어다. 피터 소코로프스키 메리엄 웹스터 편집장은 “진짜의 위기(crisis of authenticity)를 목도하고 있다”며 “정치인이 실제 이 발언을 했는지 믿을 수 없게 됐으며 때때로 우리의 눈과 귀까지 믿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AI딥페이크 영상, 선거운동 금지

챗GPT가 출현한 지 불과 1년 만에 세상은 가짜뉴스로 더더욱 혼란을 겪고 있다. 이전에는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려면 3D 전문가를 비롯한 많은 전문인력과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딥페이크 영상을 만드는 데 불과 몇 분이면 된다. 물론 부정적 결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챗GPT로 인해 한층 발전된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고, 새로운 발전을 이루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긍정적 효과는 잘 드러나지 않고, 파괴적이면서도 오용되는 사례로 인한 피해는 금방 드러난다.

AI딥페이크 영상이 처음 선거에 등장했던 때는 대부분 신기하고 흥미롭게 이를 바라봤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AI딥페이크 영상이 선거에 악의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부도 제재에 나섰다. AI딥페이크 영상의 선거운동을 제재한 미국의 사례 등을 참고한 것이다. 관련 법안은 5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통과했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선거 90일 전인 내년 1월 11일부터 AI로 선거운동 영상을 제작해 유포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하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지난 대선만 해도 중앙선관위는 딥페이크 영상 선거운동 활용을 허용했다. 당시 국민의힘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도 이 기술로 유튜브 채널에 ‘위키윤’이라는 이름의 아바타를 운영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이재명 대표 역시 선거운동 영상에 아바타 ‘AI재밍’을 활용했다. AI딥페이크 영상이 신박한 면도 있었다는 점에서 총선 후보들의 AI영상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아쉬움도 없지 않으나, 선거 혼란을 애초에 차단한다는 측면에서 환영할만한 결정이다.

◆유튜브 가짜뉴스 믿는 국민이 피해자

현실적으로 더 큰 문제는 유튜브 가짜뉴스다. 이미 온 세상이 유튜브 천하가 된 마당에 유튜브 가짜뉴스에 대한 제재는 아직도 너무 미흡하다. 유튜브 측에 문제제기를 해도 침묵하면 그뿐이다. 유튜브 측은 이런저런 핑계로 윤리적 책임을 회피하며 ‘돈벌이’를 하고 있는데, 이렇게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법이 있어도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팬데믹 동안 유튜브 가짜뉴스 범람은 우리 사회의 또다른 분열 원인이 됐다. 특히 정치적 편가르기를 위한 가짜뉴스와 특정 성향의 뉴스만 자동으로 보여주는 유튜브 알고리즘은 사고의 보편성과 논리성까지도 말살시키면서 우리 사회를 극한 대치로 몰아가는 원흉이 됐다. 이런 정치적 유튜브 영상의 상당수는 특정인의 생각을 주입하거나 근거 없는 가짜뉴스가 다수여서, 정치 성향이 다른 상대를 더욱 혐오하고 증오하게 만들었다.

원래 사람은 진실보다 자극적인 뉴스를 더 빨리 믿고 더 빠르게 전하는 특성을 가졌다고 하는데, 그런 특성과 유튜브가 제대로 맞아떨어지면서 가짜뉴스는 급속도로 퍼져 유무형의 피해를 양산하고, 유튜브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정치 성향을 가진 가짜뉴스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가짜뉴스를 믿는 국민이다. 나아가 서로를 혐오하는 사회 분위기는 국가 발전과 국익을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으니 국가 또한 무형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탈진실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을 알고자 하는 각자의 의식이다. 당장은 어렵지만 언론과 지식인이 이를 반복적으로 전달해 확증 편향에 빠진 국민이 사실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도록 선도해야 한다.

◆유튜브 가짜뉴스 강력 처벌법 마련해야

가짜뉴스는 누군가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고 나라를 위기에 빠트릴 수도 있는 심각한 범죄다. 하지만 유튜브 가짜뉴스 처벌은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콘텐츠 생산자를 처벌하기 어렵다면, 과거 콘텐츠 노출 통로가 되는 네이버를 제재했던 사례를 적극 검토해봐야 한다. 이후 네이버는 물론 다음도 자정 노력을 기울여 인터넷 정보가 많이 정화됐다. 마찬가지로 가짜뉴스 공급망의 주체인 유튜브에 책임을 강력히 무는 법안을 만들어 국내에서라도 적용되게 해야 할 것이다. 범죄가 반복되고 양산되는 이유는 강력한 처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정책입안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우리나라만 움직여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면 유튜브 가짜뉴스의 문제점을 인지하는 각국과 연계해 공동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런 움직임만으로도 유튜브 스스로 자체 검열과 기준을 강화하는 자정노력에 나서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모든 일은 시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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