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옛날에는 전라남도 장흥 정도는 가야 매생이 맛을 보았는데, 요즘은 마트에 가면 녹색 매생이 덩이가 종종 눈에 띈다.

매생이는 갈파래목의 해조류로 깨끗한 곳에서 자라며 매산(苺山)이 접미어 ‘이(伊)’가 붙어 ‘매산이’ 음운변화를 거쳐 ‘매생이’가 되었으며, 일부에서는 ‘맷생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생 이끼라는 뜻으로 생긴 모습과 질감이 마치 이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인 것 같다.

매생이는 섬유질이 촘촘해서 보온능력이 아주 뛰어나다.

녹색 매생이와 두부, 굴을 넣은 매생이국이나 매생이죽은 겨울철 음식으로 제격이다.

다만 매생이는 무척 뜨거운데, 겉으로 보기에는 김조차 나지 않아 그냥 후후 불고 먹다가 입천장 다 까진 경험이 한 번쯤은 있다. 그래서인지 보통 장모님들이 미운 사위들 입천장 다 까지라고 대접하는 음식으로 유명해서, 매생이죽을 ‘미운사위죽’ 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김을 양식할 때 매생이가 붙어 있으면 김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떼어 냈을 만큼 달갑지 않은 해초였으나 매생이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이제는 거꾸로 매생이를 양식할 때 김이 붙지 않게 주의하고 있다.

한편 과거에는 매생이 포자를 붙인 발을 바다에 펼쳐두고 한 발에서 여러 번 매생이를 수확했다. 이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난간에 가슴을 대고 엎드려 매생이를 뜯어냈는데, 이 때문에 매생이 판 돈을 ‘가슴 아픈 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매생이는 전라남도 강진과 완도 등 청정해역에서만 자라나는 남해안 지방의 특산물이다. 주로 겨울철에 채취하며, 11월에서 3월까지가 제철이다. 파래처럼 생겼지만 김보다는 더 푸른 빛을 띠며, 김을 판판하게 펼쳐 종이처럼 건조해 상품화한다면 매생이는 한데 뭉쳐 덩이째로 판매한다. 이때 매생이 한 덩이의 단위를 ‘제기’라고 부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전라남도 나주, 영암, 진도, 강진 등이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宣世宗實錄)』[지리지(地理志)] 전라도편에는 전라도에서 세금으로 바치는 토산품으로 매생이는 매산이(莓山伊)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초기, 성종 때의 학자인 용재(慵齋) 성현(成俔, 1439~1504)이 저술한 『용재총화(慵齋叢話)』제8권에 “김[苔]은 남해(南海)에서 나는 것을 감태(甘苔)라 하고, 감태와 비슷하나 조금 짧은 것을 매산(莓山)이라 하는데, 구워서 먹는다. 내 친구 상사(上舍) 김간(金澗)이 절에서 독서할 때 밥상에 있는 것을 먹어보니, 아주 맛이 좋으나, 무엇인지 알지 못하다가 중(僧)에게 자세히 물어본 뒤에야 비로소 그 이름을 알았다. 하루는 내 집에 와서 말하기를,

​“혹시 ‘매생이구이’를 먹어 봤느냐고 물으면서 천하의 진미”라고 자랑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성현은 순진한 친구를 골탕 먹일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내가, “이것은 임금님이 잡수시는 상에만 올리는 물건이므로 궐 밖 사람이 맛볼 수 없는 것이나 자네를 위하여 구하리다”

하고, 숭례문 밖으로 나가 연지(蓮池) 속에 태발(苔髮)이 물 위에 어지럽게 떠 있는 것을 보고 조리로 떠내어 구워놓고 하인을 보내 상사를 불러오게 하니, 상사가 이 말을 듣고 곧 왔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술을 마실 때 나는 매산을 먹고 상사는 오로지 김만 먹더니 겨우 두어 꽂이를 먹고 나서 말하기를, “구이 가운데 모래가 있어 먼저 먹던 것 같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점점 가슴속이 메스꺼워 뱃속이 편안치 않다”하고, 곧 집으로 돌아가 토하고 설사하여 수일을 앓은 뒤에 일어나서 말하기를, “중이 준 매산은 아주 맛이 있었는데, 그대의 매산은 아주 나쁘다”라고 하였다”고 기록했다.

용재(慵齋)의 짓궂은 너스레에 나오는 내용처럼 연산군(燕山君)은 매생이를 좋아했던 것 같다.

연산군은 전라도 관찰사 김영정(金永貞)에게 유시하기를,“매산(苺山)을 맛이 좋은 것으로 가려 많이 봉해 올리라”고 했을 정도다.『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연산군 10년(1504) 3월 29일

조선 중기 유희춘(柳希春, 1513~1577)은 『미암일기(眉巖日記)』에서 “해남 수령이 매산이를 보내주어 좋아했다”는 내용이 나오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형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유배 시절 쓴 어류학서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매산태(苺山苔)라고 나와 있는데 “누에의 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하며 길이가 수척에 이른다. 빛깔은 검푸르다. 국을 끓이면 부드럽고 서로 엉키면 풀어지지 않는다. 맛은 매우 달고 향기롭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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