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나박(蘿薄)김치는 납작하고 네모나게 썬 배추와 무를 소금에 절인 후, 채 썬 마늘, 파, 생강, 미나리를 넣고 고춧가루로 물들인 소금물을 부어 만든 일종의 물김치다.

나박김치 어원에 대해 무의 한자어인 나복(蘿蔔)이 바뀌어 나박김치가 됐다는 설이 있으나 이를 입증할 문헌적 근거가 없다.

나박김치가 등장하는 최초의 문헌은 조선 초 세종·문종·세조의 3조(朝)에 걸쳐 전의감(典醫監)의 의관(醫官)을 지낸 전순의(全循義, 생몰연대 미상)가 쓴 산가요록(山家要錄)이다.

이 책에 기록된 나박김치에 대한 내용을 보면 무를 깨끗이 씻어 납작하고 잘게 썰어 바로 항아리에 담되 바람이 들지 않게 담가야 김치 맛이 좋다고 돼 있다. 즉 이때부터 나박김치의 정체성은 얇게 썬 무로 정의됐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조선 초 의관 전순의는 1450년 산가요록을 집필하며, 蘿, 薄 자를 쓴 ‘나박김치’로 기록했다.

75년 후 중종 20년(1525)에 의관 김순몽(金順蒙)·유영정(劉永貞)·박세거(朴 世擧) 등은 왕명을 받아 돌림병인 온역의 치료와 예방법을 모아 44조로 엮어 한글로 번역한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이라는 의서를 편찬했다. 이 의서에도 나박김치가 등장하는데, 그 원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又方溫蕪菁葅汁合家大小並服不限多少(우방온무청저즙합가대소병복불한다소)’고 나온다.

1776년 유중림(柳重臨, 1705~1771)이 엮은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나복황아저(蘿葍黃芽葅)’가 보인다.

고춧가루가 전혀 들어가지 않고 얇게 썬 무와 파만 들어가 나박김치다. 여기서 충청도 지역에서 주로 많이 해 먹은 ‘만청저법(蔓菁菹法)’을 보자.

‘순무를 취해 얇게 썰어 싱건지를 담는데 한때만 먹을 수 있고 겨울 나는 반찬이 될 수는 없다.’

이 내용을 보더라도 ‘나박김치’는 숙성시켜 오래 두고 먹는 김치류가 아니고 물김치를 담아 이틀 정도 짧은 기간 숙성시켜 바로 먹는 반찬이다.

고춧가루가 나박김치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1800년대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1919년에 심환진(沈晥鎭)이 상주 군수로 부임해 그곳의 반가에 소장돼 있던 조리 책 하나를 빌려서 괘지에 필사해 뒀던 ‘시의전서(是議全書)’가 있는데, 심환진이 1919년에 필사 했지만 그 원본은 1800년대 것으로 추정해 본다.

이 책에 ‘무우를 골 모양으로 얄게 쓰흐려 나벅김치 담아 쓰되 파고초 마늘 생강 다 쳐 너허 닉히라’라고 나온다.

이때부터 고춧가루를 비롯한 생강, 마늘과 같은 자극적인 재료들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지역이나 집안에 따라 단맛을 더하기 위해 사과나 배, 과일을 넣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동치미는 겨울에 주로 먹는 물김치지만 나박김치는 물김치를 담아 한 이틀 정도 단시간에 발효시켜 그 자리에서 바로 먹는 것이다. 특히 나박김치는 사계절 언제든지 만들어 먹는 물김치며, 차례상에도 올라가는 물김치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