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우리의 전통 장(醬) 중에 여름철에 담아 먹는 집장이 있다. 우리 민족의 위대한 식품 중에 하나인 장은 음력 정월에 담궜다가 약 열 달정도 숙성시킨 뒤에 9월경부터 먹을 수 있는데, 여름철인 7월이나 8월경이면 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식량이 떨어지는 보릿고개가 되면 양식은 물론 장도 떨어지기가 십상이다. 그래서 망종 무렵인 6월경부터 단기간 숙성해 먹을 수 있는 ‘집장’을 담가 여름철에 모자라는 장을 충당했다. 그래서 된장은 가을에 수확한 콩을 주원료로 하지만, 집장은 망종 무렵 수확한 보리나 밀 등을 주원료로 해 담가 먹는다.

세조 때의 어의였던 전순의(全循義)가 지은 ‘산가요록(山家要錄)’에 즙저(汁菹) 즉 집장이 나오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七月初 生太一斗 浸水兩三日 其火三斗 合舂作塊(칠월초 생태일두 침수양삼일 기화삼두 합용작괴) 7월 초에 나온 햇콩 한 말을 이틀 내지 3일 동안 물에 담갔다가 밀기울 세 말과 합하여 절구에 찧어 덩어리를 만든다. 初七日 熟蒸 空石上布蓬艾千金木葉楮葉後 蒸太布厚一寸許 又盖前葉(초칠일 숙증 공석상포봉애천금목엽저엽후 증태포후일촌허 우개전엽) 초 7일에 푹 쪄서 빈 섬 위에 쑥 잎, 북나무 잎, 닥나무 잎 등을 깔고 그 위에 찐 콩을 한 치 두께로 펴고 그 위에 잎을 덮는다. 七日黃毛生爲上 不足 則必待生毛後 出陽乾(칠일황모생위상 부족 즉필대생모후 출양건) 7일쯤 지나면 겉에 노란 곰팡이가 잘 피게 되는데 곰팡이가 덜 나왔으면 더 나오도록 기다렸다가 이것을 꺼내 햇볕에 말린다. 麤末經篩 此末三斗則 鹽一升 和水 如厚豆粥 先布瓮底 次布茄瓜 如是滿瓮(추말경사 차말삼두즉 염일승 화수 여후두죽 선포옹저 차포가과 여시만옹) 굵게 부수어 체에 내린 가루 세 말에 소금 한 되를 물에 타서 된 콩죽처럼 만들어 먼저 항아리에 담고 그다음에 가지 오이를 깔아 그렇게 하기를 계속해 항아리가 차이도록 한다. 以板適瓮口造盖 以眞末泥水塗之(이판적옹구조개 이진말니수도지) 항아리 아가리에 꼭 맞는 나무판을 덮고 밀가루를 진흙처럼 물로 개어 틈새를 바른다. 勿令入糞氣 油紙堅封 盖瓦盆塗泥 埋新馬糞 裹蓬艾(몰영입분기 유지견봉 개와분도니 매신마분 과봉애) 말똥 냄새가 스며들지 않도록 그 위에 기름종이로 단단히 봉하고 그 위에 질동이를 덮어 새 말똥 속에 묻어 쑥 잎으로 그 위를 싸둔다. 七日或二七日開用(칠일혹이칠일개용) 7일이나 14일 후에 열어 사용한다.”

이 집장을 경상도에서는 등겨장, 전라도에서는 시큼장, 충청도에서는 즙장이라고 부른다. 이 집장이 충청도에서는 예산집장, 천안 빠금장, 보령 쩜장, 홍성 팥장 등이 있다.

천안의 빠금장은 부뚜막에서 띄워 먹는 된장이다. 된장이 떨어질 무렵인 봄에 된장을 만들기 위해 소금물에 담고 남은 메주를 절구에 거칠게 빻아서 동치미 국물에 걸쭉하게 개어 항아리에 담아 부뚜막에 올려 따뜻하게 둔다. 2~3일 후 항아리 위로 떠올라 오면 고춧가루와 소금을 넣고 간을 해 쌈장으로 먹거나 찌개를 끓여 먹었다. 빠금장은 짧은 기간 숙성시켜 바로 먹을 수 있는 발효 된장이다.

그리고 예산집장은 다른 지역의 집장에 채소가 주로 들어가는 데 비해 소고기와 해산물이 주로 들어간다. 콩과 보리쌀로 만든 메주를 띄운 뒤 단지에 메주와 쇠고기 양지 부위와 말린 대하, 찹쌀, 오이, 가지, 고추를 넣고 우리 전통간장으로 간을 맞춘 뒤 따뜻한 곳에서 수일 동안 숙성을 시킨 뒤 먹는다. 옛날에는 마당가에 쌓아 둔 두엄 속에 3일 동안 숙성시켰다고 한다.

잊혀져가는 음식의 맛을 재발견하고, 멸종위기에 놓인 종자나 품목 등을 찾아서, 기록하고 목록을 만들어서 널리 알리고 있는 세계적 슬로푸드 프로젝트인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예산 집장이 기록돼 있다.

1997년 이탈리아에서 ‘맛의 방주 선언문’이 발표된 이후 현재까지 총 76개국 1162개의 품목이 등재돼 있다.

보령의 쩜장은 정월에 담는데 메주를 쪼개서 말리고 동치미 국물과 배추국물로 불려서 쌀밥과 섞어 발효시키는 것이다. 집장과 다른 것은 집장은 7월에 담가서 퇴비에 묻어 둔 후 숙성이 되면 먹는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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