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회의서 푸틴 작심발언
“협상 거부하는 건 우크라”
전문가 “美, 전쟁에 이중잣대”
“이스라엘 민간인 살상엔 침묵”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화상으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출처: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화상으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유엔 사무총장이 ‘가자 지구가 거대한 어린이 묘지로 변했다’고 했을 때 여러분은 충격을 받지 않았나요?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유혈 쿠데타에 이어 돈바스에서 자국민을 상대로 벌어진 키이우 정권의 전쟁은 충격적이지 않나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2일(모스크바 현지시간) 인도가 주최한 화상 주요 20개국(G20) 특별정상회담에 참석,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위기와 효과적인 지구촌 지배구조를 저해하는 요인들을 열거하며 한 말이다.

외교 안보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러시아와 미국의 지구촌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고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전쟁과 평화 문제에 중점을 두고 발언했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나라’라는 서방의 서사(narrative)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사뭇 당당했다.

푸틴 대통령은 “여기 있는 우리 동료 중 일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계속 공격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는데, 우크라이나가 평화 협상을 거부하며 이를 행정명령으로 못 박는 장면에는 충격받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군사작전은 언제나 특정인, 특정 가족, 국가 전체의 비극이며 우리는 이 비극을 어떻게 멈출 것인지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고 전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평화 협상을 거부한 적이 없다”면서 “협상 과정에서 탈퇴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러시아가 아니라 우크라이나”라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 “세계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국제사회 압도적인 다수의 견해를 반영하는 집단적이고 합의에 기반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유엔 헌장과 협력적이고 상호 존중하는 공동 작업 원칙에 기초해 개방적이고 호혜적인 국제 경제협력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지구촌 경제 거버넌스(지배구조, 협치) 시스템의 효과적인 최적화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며, 중재 기능을 포함해 세계무역기구(WTO) 전체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도 전문가 “美, 이스라엘 폭격 묵과”

이번 회담 의장국인 인도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푸틴의 연설에서 서방, 특히 미국이 국제사회의 중요한 갈등에 대해 이중잣대를 비판한 점에 주목했다.

아누라다 체노이 박사(전 자와할랄 네루 대학교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연구 센터)는 이날 푸틴 대통령의 연설과 관련, “가자지구의 이스라엘 침략에 대한 미국의 무제한적인 지원은 서방이 국제 갈등을 평가하는 ‘이중잣대’와 ‘규칙 기반 국제 질서’에 대한 워싱턴의 수사(rhetoric)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상기시켰다”고 비판했다.

그간 서방과 한국을 포함한 서방의 동맹국들을 제외한 지구촌 남반구 국가들은 인권과 인도주의법, 국제법 문제에 대해 서구의 이중잣대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해왔다. 아랍과 이슬람 국가 지도자들, 많은 남아프리카 국가들의 성명에서 이런 불만이 잘 드러난다. 이런 비판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맞아 더욱 힘을 받는다는 게 체노이 박사의 분석이다.

체노이 박사는 “서방은 이스라엘의 행동에 공모하고 지지해 왔다. 이스라엘이 며칠 동안 식량, 물, 기타 기본 시설을 거부했을 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집단적 처벌을 수행할 수 있는 완전한 면책권을 부여했다. 병원과 민간 주택, 기반시설을 무자비하게 폭격하는 것도 묵과했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민간인이 위협받는 상황에 대한 러시아의 책임을 묻는 정의로운 서양 인권운동가의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는 지적이다.

체노이 박사는 “최근 남반구의 많은 국가들은 인권, 인도주의법에 대한 서방의 담론이 다양한 국가의 내부 문제에 개입하기 위해 인권을 무기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직접 목격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워싱턴과 그 동맹국들이 전파하는 ‘규칙 기반 국제 질서’는 실제로 미국과 서방이 미국의 국가적, 지정학적 이익에 이익이 되는 규칙을 정의하고 결정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가령 미국과 서방은 이스라엘의 민간인 폭격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집단적 처벌에 관한 국제인도법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며 “서방이 국제 거버넌스 개념의 근간으로 강조해온 ‘규칙 기반 세계 질서’는 다극화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제안한 다극적, 국제법 기반 비전과 뚜렷이 대조된다”고 말했다.

한편 인도 뉴델리 소재 외교안보 싱크탱크 ‘냇스트랫(NatStrat)’의 라즈 쿠마르 셔르마(Raj Kumar Sharma) 박사(선임 연구원)는 세계 상위 20개 경제 대국 정상들이 마주 앉은 회담에서 전쟁종식과 평화 회복을 촉구했다.

그는 “G20 플랫폼을 반대하는 주장도 많지만, 현재 지구촌 거버넌스 구조에서 G20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최빈 개도국이 직면한 다양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G20가 지구촌 평화를 결정하지 못한다면, G20 회원국 중에 평화를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는 말로 풀이됐다. 자신들만의 잣대로 선과 악을 구분지어 민간인 학살에 대한 잣대마저 이중적으로 들이대는 게 결국 평화를 반대하는 세력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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