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식량·폭발물·무기 등 중요한 건 모두 구급차로 운반합니다” “학교나 병원, 모스크 사원 아래에 비밀기지나 로켓 등을 보관하는 무기고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요? 그래야 ‘폭격’을 안 맞으니까요.”

이제 막 대학생이 된 듯한 학생과 청년 등 다수의 포로들이 이스라엘 정보기관 신베트(ISA, 정식명칭 이스라엘안보국)의 심문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주장했다.

IDF가 포로로 붙잡은 하마스 대원이라며 9일(현지시간) 공개한 신베트 심문 영상에는 21세 대학생이라고 밝힌 앳된 얼굴의 남성과 청년 포로들이 등장한다. 그간 하마스가 붙잡은 인질들처럼 이스라엘도 하마스 포로들 다수를 붙잡고 있다는 소식은 들려왔지만, 학생 포로가 하마스에 대해 실토하는 모습의 영상이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영상에는 전과 달리 포로들 다수가 등장하지만, 심문은 한 명씩 단독으로 진행됐다.

먼저 하마스 군사조직인 ‘알카삼’에서 응급처치 대원으로 일해왔다는 가자 남부 라파 출신의 이 대학생은 주위를 경계하면서도 그간 ‘인간 방패’ 비난을 받아온 하마스의 각종 의혹에 대해 하나하나 실토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하마스가 자체적으로 구급차를 가지고 있느냐’는 물음과 ‘대원들이 쓴 구급차가 군 구급차로 보이지 않고 일반 구급차로 보이냐’는 말에 모두 “그렇다”고 명확히 답했다. 그 이유로는 “일반 구급차처럼 보여야 폭격에 안 당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마스가 가자지구 민간인들을 ‘인간 방패’로 삼는다는 비난에 이어 민간인으로 둔갑한다는 의혹까지 더해지는 셈이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시파 병원 지하에 하마스 비밀기지가 있다고 주장하며 공개한 3D 영상 캡쳐. 2023.11.10.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시파 병원 지하에 하마스 비밀기지가 있다고 주장하며 공개한 3D 영상 캡쳐. 2023.11.10.

그는 또 ‘그 구급차로 무엇을 옮기느냐’는 물음에 “지휘관들을 태우거나 무엇이든 중요한 것을 옮긴다. 구급차를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물음에 대해선 그와 다른 소속의 포로도 “폭격을 맞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하마스)이 쓰려고 음식·폭발물·무기 등을 구급차로 옮긴다”라는 같은 답변을 내놨다. 하마스의 특공대인 ‘누크바’에서 1년 반 전부터 활동해왔다는 가자 라하(Rahar A-dik) 출신의 한 포로로부터다.

특히 그는 그간 ‘시파 병원 아래에 하마스 비밀 본부가 있다’라는 관측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답변과 함께 ‘인간 방패’가 실제 자행되는 상황이라는 데 힘을 보태는 답변을 남겼다.

그는 “학교 아래에 작전 관련 공간이 있으며 그 안에 무기와 로켓 같은 중요한 물품을 보관한다. 중요한 납치된 인질들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마스가 왜 일반 집이 아닌 학교나 병원, 모스크 사원과 같은 곳을 쓰는지’에 대해선 “그래야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고, 이스라엘군도 (비밀기지가 그 아래 있을 거라는) 예상을 못 하기에”라고 답했다.

또 그는 지난달 7일 유대교 절기 ‘안식일’에 가해진 기습공격 당시 함께 있던 팀이 받은 임무가 ‘납치’라고도 했다. 이는 다른 누크바 출신 포로가 “미션은 간단했다. 어린이·여성 가릴 것 없이 그저 죽이는 것이었다. 납치는 계획에 없었다”라고 답한 것과는 다른 답변인데, 팀별로 다른 임무를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3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병원인 알시파 병원 인근에서 구급차 행렬을 공격한 가운데 시민들이 구급차를 확인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3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병원인 알시파 병원 인근에서 구급차 행렬을 공격한 가운데 시민들이 구급차를 확인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아울러 앞서 이달 초 공개된 심문에서 등장했던 한 누크바 대원은 다시 이번 심문 영상에 나와 ‘땅굴과 병원이 관계가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그는 “그들(하마스) 대부분은 병원에 숨어 있다”며 ‘알 시파 병원’에 숨어 있다고 꼭 집어 지목했다. 알 시파 병원은 수천명의 환자가 수용된 가자지구 내 가장 큰 병원을 말한다.

그는 “시파 병원은 일개 작은 병원이 아니다. 지휘관을 포함해 지하에 숨어 있다. 이스라엘군이 추격 중인 하마스 가자지구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와 같은 윗급 정치인과 군 지휘관들이 모두 그곳에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8년부터 특공대 누크바에서 지휘관들과 구급차 운전사로 일해왔다는 다른 한 포로의 심문도 이어졌다.

그는 심문에서 “치료 등 의료, 그리고 병원 관련 모든 주제는 하마스의 이익을 위해 사용된다”고 했다. 자신이 수료한 응급처지에 대해 어떤 코스를 밟았는지에 대한 질문도 받았는데, 그 업무가 이슬람의 적십자사에 해당하는 적신월사(Red Crescent)의 코스와 관련되냐는 물음에 “적신월사 같은 과정도 있지만 이건 다른 코스다. 군부대와 관련 있는 코스”라며 “지원자 절반은 민간인들이고 나머지 반은 알카삼 출신”이라고 했다.

반면 이스라엘군은 이러한 점들을 내세워 병원과 구급차 등 공공시설에 대한 공격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3일 알시파 병원 입구 2m 앞에서 적신월사 구급차 1대가, 약 1㎞ 떨어진 곳에서 보건부 소속 구급차가 공습을 받았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그동안 이러한 이스라엘 공격으로 9일까지 의료진 195명이 사망하고, 구급차 51대가 파괴됐다.

◆“어린이 침실 옆서 무기 생산”

이밖에도 이스라엘군은 전날 하마스가 어린이 침실 바로 옆 주거 건물 내에 무기 생산·저장 시설을 두고 있다면서 관련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8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 외곽에 있는 아파트에서 어린이 침실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방안을 소개하고 있다. (제공: IDF) ⓒ천지일보 2023.11.10.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8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 외곽에 있는 아파트에서 어린이 침실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방안을 소개하고 있다. (제공: IDF) ⓒ천지일보 2023.11.10.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8일(현지시간) 하마스가 어린이 침실 바로 옆 주거 건물 내에 무기 생산·저장 시설을 두고 있다면서 공개한 사진. (제공: IDF) ⓒ천지일보 2023.11.10.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8일(현지시간) 하마스가 어린이 침실 바로 옆 주거 건물 내에 무기 생산·저장 시설을 두고 있다면서 공개한 사진. (제공: IDF) ⓒ천지일보 2023.11.10.

IDF는 “무인기와 무기를 생산 보관하는 데 사용되는 하마스 무기 제조·저장 시설을 발견했다. 현장은 가자지구 북부 셰이크 라드완 지역 중심에 있는 학교들과 인접한 주거용 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면서 “하마스의 폭발물과 작전계획이 어린이 침실 바로 옆에서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무기를 만드는 시설과 함께 이미 만들어져 조립만 하면 쓸 수 있는 무인기, 그리고 포탄, 방탄조끼 등 군수품이 나오고, 바로 옆에는 여아가 사용했을 법한 분홍색으로 도배된 침실이 등장한다.

이와 관련 이스라엘 육군 401여단의 부사령관 이도 중령은 “여기 있는 모두가 우리의 적이었다. 하마스만 있었을 뿐”이라면서 하마스가 가자지구 주민들을 ‘인간 방패’로 삼고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하마스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근거가 없다고 반박해왔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 대변인이 하마스가 의료진들이 환자들을 위해 써야 할 병원 비축 연료를 자신들의 작전 수행을 위해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발표했을 때도 하마스 측은 “적군(이스라엘군) 대변인의 발언에는 근거가 없다”라며 “이스라엘이 우리 국민을 상대로 새로운 학살이 자행될 수 있는 길을 닦기 위해 주장을 꾸며냈다”고 반박했다.

◆그칠 줄 모르는 ‘피의 보복전’

이처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자리 잡은 ‘중동의 화약고’에서는 어린이들과 여성 등 민간인들까지 가리지 않은 피비린내 나는 양측의 보복전이 무차별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앞서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조직 하마스는 유대교 안식일인 지난달 7일 새벽을 기해 이스라엘 도심을 향해 5000발에 달하는 미사일 폭격을 가했다.

이에 이스라엘은 230만명이 거주하는 가자지구에 더 압도적인 위력의 공습을 연일 쏟아붓고 있다. 최근에는 그간 벼르고 별렀던 지상전까지 착수, 육해공 통합작전으로 가자지구 곳곳을 박살 내고 있는 모양새다.

인구가 밀집한 곳이어서 민간인 사상자도 속출했다. 지난달 31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부의 난민촌을 강타해 가자 내무부 발표 기준 4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가자시티 내 알 아흘리 병원에서도 지난 17일 미사일 폭격으로 500여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사진은 공포 휩싸인 가자지구 어린이들(출처: 연합뉴스)
사진은 공포 휩싸인 가자지구 어린이들(출처: 연합뉴스)

사망자는 이미 가자지구에서만 1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스라엘이 대규모 반격에 나선 지난달 7일 이후 가자에서만 1만 812명이 숨지고 2만 6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고 9일 밝혔다. 사망자 가운데 어린이는 4412명, 여성은 2918명이다. 어린이 1400명을 포함한 2650명은 여전히 잔해에 깔려 있는 상태다. 이스라엘에서는 1400명 이상이 사망했는데 이 중 대부분은 지난달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로부터 인도주의와 확전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이스라엘군은 보복전을 더 치밀하게 해나가고 있다. 앞서 이스라엘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유대교 국가인 만큼 피를 부르는 보복전이 극악으로 치달을 거란 전망이 나왔었는데, 이러한 우려가 결국 현실이 된 셈이다.

이번 전쟁을 통해 국제법의 한계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현재의 국제법으로는 경우에 따라 민간인 살상도 허용된다. ‘비례성의 원칙’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군사적 이익이 민간의 피해와 비례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국제인도법으로 불리는 전쟁법은 무력분쟁을 전제로 한 법 개념으로, 최대한이 아닌 꼭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인도적 원칙만 담고 있다. 이에 현재의 이 같은 국제법으론 실질적인 민간인 피해 방지나 나아가 전쟁 억지력을 갖추기엔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15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가자지구 라파 마을의 파괴된 건물 창에서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천진한 표정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다. (출처: AP/뉴시스)
15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가자지구 라파 마을의 파괴된 건물 창에서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천진한 표정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다. (출처: AP/뉴시스)
병원 도착한 팔레스타인 부상 어린이들[가자지구=AP/뉴시스]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으로 부상한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치료를 위해 데이르 알발라에 있는 알 아크사 병원에 도착하고 있다. 2023.11.01.
병원 도착한 팔레스타인 부상 어린이들[가자지구=AP/뉴시스]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으로 부상한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치료를 위해 데이르 알발라에 있는 알 아크사 병원에 도착하고 있다. 2023.11.01.
지난달 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뒤 이스라엘군이 대규모 보복공격에 나서면서 양측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가자지구 자발리아 난민촌에서 주민들이 파괴된 건물 잔해에 깔린 한 소녀를 구조하는 모습. (AP/뉴시스) 2023.11.07.
지난달 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뒤 이스라엘군이 대규모 보복공격에 나서면서 양측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가자지구 자발리아 난민촌에서 주민들이 파괴된 건물 잔해에 깔린 한 소녀를 구조하는 모습. (AP/뉴시스) 2023.11.07.
피랍 주민 무사 귀환 기원하는 키부츠 주민들[텔아비브=AP/뉴시스] 2일(현지시각)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크파르 아자 키부츠 주민들이 눈을 가리고 손을 묶은 채 하마스에 납치된 주민들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이 작은 키부츠에서는 지난달 7일 어린이 7명 포함 18명의 주민이 하마스에 납치됐으며 그중 가장 어린아이는 3세였다. 2023.11.03.
피랍 주민 무사 귀환 기원하는 키부츠 주민들[텔아비브=AP/뉴시스] 2일(현지시각)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크파르 아자 키부츠 주민들이 눈을 가리고 손을 묶은 채 하마스에 납치된 주민들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이 작은 키부츠에서는 지난달 7일 어린이 7명 포함 18명의 주민이 하마스에 납치됐으며 그중 가장 어린아이는 3세였다. 2023.11.03.
[모디인 마카빔=AP/뉴시스] 11일(현지시각) 이스라엘 모디인 마카빔에서 한 부부가 아들의 장례식 도중 오열하고 있다. 이 부부의 아들과 그의 여자친구는 지난 8일 이스라엘 남부 레임 키부츠의 음악 축제장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살해됐다.
[모디인 마카빔=AP/뉴시스] 11일(현지시각) 이스라엘 모디인 마카빔에서 한 부부가 아들의 장례식 도중 오열하고 있다. 이 부부의 아들과 그의 여자친구는 지난 8일 이스라엘 남부 레임 키부츠의 음악 축제장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살해됐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