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용승 ㈔굿파머스 사무총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

꺾일 줄 모르는 ‘킹 달러’ 기세
대외의존 높은 나라, 물가 ‘타격’

러-우에다 이-팔 전쟁 큰 변수
기후변화에 재배 상한선 북상

한 나라 단독으로 해결 어려워
국익 기초 외교역량 발휘 절실

21일(현지시간) 러시아군 미사일 공습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 지역의 곡물 창고 모습. (제공: 우크라이나 오데사주) ⓒ천지일보 2023.07.23.
21일(현지시간) 러시아군 미사일 공습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 지역의 곡물 창고 모습. (제공: 우크라이나 오데사주) ⓒ천지일보 2023.07.23.
[핵심요약]

◆심상치 않은 밥상 물가

소비자 물가가 3개월 연속 3%대의 오름세를 이어가는 등 장바구니 물가가 심상치 않다. 지금의 물가 상승은 일시적 상승이라기보다는 대내외의 복합적 요인에 기인하는 전반적인 상승 기조를 보이기에 더 우려스럽다. 미-중 대결에 따른 대중국 무역의 축소,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팔 전쟁으로 인한 곡물 및 유가의 불안정 등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물가 상승의 압박은 가중되고 있다. 한국의 대중국 무역의존도는 최근 줄어들고 있다. 한 국가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의존도는 국가 경제의 건전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과의 무역 감소 기조가 물가 측면에서는 부정적 영향을 지속해서 끼칠 여지가 크다.

◆과거와 다른 국제 시장 환경

러-우 전쟁과 이-팔 전쟁처럼 전쟁이 장기화되고 그에 따른 불안정성이 지속되면 곡물 가격 역시 불안해진다. 이처럼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 한국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별로 없다. 전 세계가 구조적 변화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단기 정책으로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국익에 기초한 독자적 외교역량이 필요한 이유다. 이제 공기관의 외교역량 강화는 물론 민간 외교의 개념과 역량 강화를 위한 노력도 경주해야 한다. 조속히 대응해야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안이다. 국내 문제에 얽매이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세계적 환경 변화는 우리의 밥상을 위협하고 있다.

 

동용승 ㈔굿파머스 사무총장.
동용승 ㈔굿파머스 사무총장.

장바구니 물가가 심상치 않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소비자 물가가 3개월 연속 3%대의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석유류의 가격 하락 폭이 크게 줄어들면서 물가 상승을 이끌었다는 게 통계청의 설명이다. 채소류를 비롯한 농·축·수산물 가격이 최대 상승 폭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장바구니 물가는 무서울 정도다. 마트에선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데 들었다 놨다 하면서 고민하는 주부들을 쉽게 본다. 직장인들은 점심 외식이 부담스러워서 도시락을 준비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소득은 오르지 않는데 물가는 오르니 실질 구매력은 물가 상승 이상으로 떨어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 이어 국민과의 대화에서 물가 상승 부담 때문에 긴축재정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하게 어필했다.

◆지금의 물가 상승이 우려스러운 점

지금의 물가 상승은 일시적 상승이라기보다는 대내외의 복합적 요인에 기인하는 전반적인 상승 기조를 보이기에 더 우려스럽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것, 미-중 대결에 따른 대중국 무역의 축소, 코로나 사태로 인해 많은 돈이 풀린 것과 기후변화로 인해 과채류 생산기반이 변화하고 있는 것,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생산비 상승 부담으로 인한 것,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팔 전쟁으로 인한 곡물 및 유가의 불안정 등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물가 상승의 압박은 가중되고 있다.

그런데 물가 상승의 요인들을 보면 우리 독자 정책으로 컨트롤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른바 ‘킹 달러’의 기세는 꺾일 줄 모른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는 달러 강세 기조에선 국내에 원화가 많이 풀릴 수밖에 없다. 선거를 앞둔 미국은 미-중 대결과 자국 내 경제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고금리를 당분간 유지할 것이므로 달러 강세는 적어도 내년까지는 지속될 듯하다.

무역 증가에 따른 외환증가는 국내 통화 증가를 유발하게 될 것이다. 고금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재정 긴축과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통화량의 빠른 회수를 통해 물가를 억제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의 대중국 무역의존도는 최근 줄어들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은 저렴한 상품 공급을 통해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주요 기제로 작동했다. 한국은 중국에 주로 부가가치를 가미한 중간재를 수출했다면 중국은 주로 생산 완제품과 기초 원자재를 수출했다. 그렇기에 한국의 물가에는 긍정적 기여했지만 이러한 연결고리가 축소되면서 물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계란은 한 바구니에 넣지 않는다’라는 위험관리 방식에서 볼 때 한 국가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의존도는 국가 경제의 건전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것은 80년대까지 한국경제가 일본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지만, 1984년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경제의 장기불황 국면이 지속되면서 한국경제의 대일 의존도가 낮아진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찌 됐든 중국과의 무역 감소 기조가 물가 측면에서는 부정적 영향을 지속할 여지가 크다고 할 것이다.

◆기후변화와 전쟁이 끼치는 변화

기후변화는 한반도의 작물 재배 환경을 변화시키고 있다. 과채류 재배 상한 라인이 점차 북상하고 있다. 생산기반이 북쪽으로 상승하고 있음은 기존 생산지의 변경과 새로운 투자를 의미한다.

과채류 투자는 생산지 변경을 위한 신규 토지 확보를 위한 토지비, 새로운 기후환경에 맞는 새 종자 확보를 위한 비용·인력조달 등을 감안할 때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다. 즉 기존 생산물이 줄어드는 것에 비해 신규 생산물이 적시에 나오는 데 많은 시차가 있음을 의미한다.

10월 주요 소비자 물가 상승품목 중에 사과의 가격이 전년 대비 72.4% 상승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사과의 생산과 공급이 소비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최근 과채류 가격의 상승 역시 단기 기후 불순에 따른 생산량 변동 때문이 아니라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생산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 가는 과정이라고 볼 때 상당 기간 지속할 수밖에 없음을 예상할 수 있다.

21일(현지시간) 러시아군 미사일 공습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 지역의 곡물 창고 모습. (제공: 우크라이나 오데사주) ⓒ천지일보 2023.07.23.
21일(현지시간) 러시아군 미사일 공습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 지역의 곡물 창고 모습. (제공: 우크라이나 오데사주) ⓒ천지일보 2023.07.23.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전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심지어 1차 대전 당시의 참호전 가능성도 언급될 정도로 공방이 지속되는 양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곡물 가격 변동은 장바구니 물가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지만, 실제로는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된 곡물이 흑해 항로를 통해 공급되는 시장은 주로 중동·아프리카 지역으로 한국의 장바구니 물가에는 직접적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현재 국제 곡물 가격은 동북아와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단기 급등을 보인 이후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그에 따른 불안정성이 지속되면 곡물 가격 역시 불안해질 가능성은 상존한다. 특히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야기된 중동 정세의 불안정성은 지속되고 있다. 중동 정세의 불안정성은 국제 유가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1970년대 1차, 2차 석유파동은 세계 경제를 얼어붙게 했다. 당시 아직 세계적으로 가치 사슬이 엮여 있지 않았음에도 그 파장은 엄청났다.

◆하나로 연결된 지구촌, 영향 더 커

그런데 지금은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돼 있다. 연결고리 중 가장 중요한 물자 중의 하나가 석유다. 석유 공급에서 가장 큰 비중을 중동이 차지한다. 여기에서 전쟁이 발생하면 1, 2차 석유파동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초기에 전 세계는 경악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반격과 그에 따른 이란 등의 참전을 우려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이-팔 전쟁의 조기 종결을 요구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미국은 지속적인 이스라엘 지원 약속과 중동전쟁 발발 가능성이라는 양극단에서 고민 중이다. 이 와중에 석유 가격이 꿈틀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치솟았던 국제 유가는 점차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었는데 이-팔 전쟁으로 다시 불안정성이 증가하는 모습이다. 석유 가격의 단기 상승은 물론 장기적 상승 기조는 소비자 물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단순히 석유제품뿐 아니라 석유에서 나오는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 제품들은 가장 말단의 소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농축산물 가격 상승도 비료, 사료 가격 상승과 물류비용 증가 등에 영향을 받는다.

그 외에도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 한국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별로 없다. 단기 정책으로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전 세계가 구조적 변화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국익에 기초한 독자적 외교역량이 필요한 이유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확대되면서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인도적 위기에 처했다. 28일(현지시간) 북부지역 주민 100만명에게 이스라엘군이 남쪽으로 대피를 요구한 가운데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 도착한 난민들은 끼니를 만들 연료가 없어서 나무로 불을 떼 음식을 만들고 있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가자지구는 사회기반시설 파괴로 의료 물자, 물, 및 에너지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출처: UPI, 연합뉴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확대되면서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인도적 위기에 처했다. 28일(현지시간) 북부지역 주민 100만명에게 이스라엘군이 남쪽으로 대피를 요구한 가운데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 도착한 난민들은 끼니를 만들 연료가 없어서 나무로 불을 떼 음식을 만들고 있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가자지구는 사회기반시설 파괴로 의료 물자, 물, 및 에너지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출처: UPI, 연합뉴스)

지난 1년 동안 한국은 한미 동맹 강화와 한미일 정책 공조라는 전통적인 외교의 기본 틀을 정상화하는 데 주력해 왔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밥상 물가의 변동을 관리할 수 없다. 각각의 사안들은 다양하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한국의 독자적 외교역량과 범위를 넓혀 가면서 각각의 사안들은 최대한 관리하는 역량을 축적해 나가야 한다.

한국의 경제력 확대 및 세계적 영향력을 감안할 때 외교역량 강화는 절대적이다. 외교의 역량도 한국경제의 역량 증대에 걸맞은 근본적 개혁과 변화 그리고 발전이 필요하다. 또 외교는 정부만 하는 것이 아니다.

K-문화의 영향력을 보자. 일본 주요 언론사의 기자와 나눈 이야기다. BTS 멤버 중의 한 명이 군대에 간 것에 대해 왜 군대에 가는지를 찾다 보니 일제 강점기 문제가 나왔고, 일본이 한국을 강점했던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민간 외교의 극명한 사례다.

이제 공기관의 외교역량 강화는 물론 민간 외교의 개념과 역량 강화를 위한 노력도 아울러 경주해야 한다. 조속히 대응해야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안이다. 국내 문제에 얽매이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세계적 환경 변화는 우리의 밥상을 위협하고 있다.

[용어설명]

◆대외의존도

특정 국가의 경제가 해외 시장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한 나라의 경제를 대표하는 국내총생산(GDP)이나 국민총수입(GNI)을 산출하는데 해외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준다. 대외의존도는 GDP 산출 과정의 한계를 보안하고, 실물 경제 내 해외 부분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왜곡 없이 보여주기 위해 순 수출액이 아닌 수출과 수입액을 합산한 금액을 GDP나 GNI로 나누어 산출한다. 한국·독일·스위스와 같이 수출 부문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국가들은 수출뿐 아니라 수출을 위해 수입하는 원자재 양이 많아 대외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내수가 큰 미국이나 중국은 상대적으로 낮으며 아프리카 국가나 폐쇄적인 국가들도 낮은 편이다.

◆석유파동

1973년 말 석유수출국기구에 의한 석유 가격의 급격한 인상조치로부터 발생한 사태를 말한다. 자국의 유전에 대한 항구 주권을 주장하는 산유국과 세계 대부분의 유전을 지배하고 있는 7대 메이저 간의 오랜 대립과정에서 발생했다. 석유파동이 세계 경제에 준 충격은 제 2차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은 석유파동 사태로 전례 없는 마이너스 경제성장과 국제수지의 역조 심화, 물가 상승 등을 동시에 경험했으며,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이 받은 석유파동의 충격은 선진국 못지않게 컸다. 그 이유로는 선진제국의 확대 정책에 따른 인플레 현상, 자국 자원의 보호 및 항구 주권론 강화, 국제유동성 산유국 편재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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