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용승 (사)굿파머스 사무총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

장기전 치닫는 러-우크라 전쟁
미-중 무역전쟁과 대유행까지
무질서 증가로 경제안보 ‘흔들’
北 위협 등 지정학적 리스크도
“질서 영향분석 능력 필요 시점”

1일 부산항 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뉴시스)
1일 부산항 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뉴시스)
[핵심요약]

◆장기전 속 러 곡물 협정 탈퇴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흐른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전쟁 종식을 위한 모멘텀을 찾지 못한 채 국지적인 공방을 지속하면서 전쟁이 장기전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다가 러시아가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허용하는 ‘흑해 곡물 협정’ 중단을 선언함에 따라 세계 곡물과 에너지 시장이 출렁거렸다. 협정 아래 옥수수·밀 등 3300만톤에 달했던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이 갑자기 모두 막히면서다. 즉시 밀과 옥수수 등 국제 식량 선물가격이 치솟는 등 세계 식량 안보에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인 주체와 어려움을 겪는 구성원들로 세계는 양극화되고 있다.

◆불확실성 커져가는 국제사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뿐만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이어지고 있고 코로나19가 다시 확산하고 있으며 북한 도발과 일본의 오염수 방류 등 국제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급변하는 상황들이 세계 시장경제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면서 지표들도 엎치락뒤치락하게 된다. 개인, 나아가 국가의 경제안보를 지키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전쟁과 같은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고 질서의 변화가 발생할 때 이것이 장기적 영향을 미칠 것인지, 아니면 단기적으로 그칠 것인지를 깊이 있게 판단하고 예측하는 게 경제안보를 지켜내는 능력이다. 불확실성이 날로 고조되고 있는 지금이 이 능력을 가장 필요로 하고 있다.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장기전을 예고하고 있다.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흐른 현재, 양국 모두 전쟁 종식을 위한 모멘텀을 찾지 못한 채 국지적인 공방을 지속 중이다.

이 와중에 세계 곡물과 에너지 시장이 출렁거렸다.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통화팽창의 여파로 인한 물가상승을 부추겼다. 세계 각국은 갑작스러운 물가상승에 고통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 없이 고물가에 시달리는 모습이다. 특히 소득은 오르지 않는데 가파른 물가상승은 서민층들을 힘들게 한다. 기업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면서 에너지 관련 기업들은 기록적인 수익을 기록했다. 단기적으로 배럴당 120달러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영국의 거대 석유 기업 쉘(Shell)은 지난해 순이익 399억 달러(약 50조원)를 기록하면서 창사 이래 최대 수익을 달성했다. 프랑스의 ‘토털에너지’ 역시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순이익의 증가는 주가에 그래도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올해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국제 에너지 가격이 하락세로 반전했다. 쉘과 토털을 비롯한 대부분의 에너지 관련 기업들은 전년 대비 수익이 반 토막 이상 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어닝 쇼크(earning shock)가 발생한 것이다. 에너지 수급 시장이 전쟁의 장기화에 적응해 가격과 수요에 조정이 이뤄진 결과다.

◆국제 곡물 시장에 미치는 영향

이러한 현상은 국제 곡물 시장에서도 나타난다. 국제 곡물 시장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을 받는 대표적인 품목은 밀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밀 공급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전쟁 직후 흑해 지역의 항행 자유가 제한되면서 국제 밀 가격은 폭등했다. 공급 부족에 따른 영향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전쟁 중에도 우크라이나 곡물을 안전하게 수출할 수 있도록 보장한 흑해곡물협정을 사실상 종료한다고 17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식량을 무기화하는 러시아의 행위는 식량이 절실히 필요한 곳에서 식량을 구하기 어렵게 만들고 가격 상승을 부추길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진은 튀르키예 인근을 지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선 (출처: AFP, 연합뉴스)
러시아가 전쟁 중에도 우크라이나 곡물을 안전하게 수출할 수 있도록 보장한 흑해곡물협정을 사실상 종료한다고 17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식량을 무기화하는 러시아의 행위는 식량이 절실히 필요한 곳에서 식량을 구하기 어렵게 만들고 가격 상승을 부추길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진은 튀르키예 인근을 지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선 (출처: AFP, 연합뉴스)

상대적으로 아프리카, 중동 등에서는 밀 공급에 차질이 있었지만, 북미·유럽·아시아 등에는 공급 부족 현상은 없었고, 국제가격 변동에 따른 가격 상승이 나타났을 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북미·유럽·아시아 등은 미국이나 유럽산 밀을 주로 소비하는데, 상대적으로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산보다 품질이 좋고 가격이 높다. 반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산 밀은 품질은 떨어지는 대신 가격이 저렴하다.

유통경로 역시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산 밀은 흑해를 거쳐 아프리카나 중동지역으로 이동하기 유리하고, 수입국들의 소득을 감안할 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산 밀을 선호해 왔다. 전쟁으로 영향을 받은 지역은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이다. 특히 소득이 낮은 아프리카는 충격이 크다.

다행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1년간 흑해를 통한 식량 운송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는 ‘흑해 곡물 수출협정’을 했기 때문에 우려했던 만큼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가 협약의 연장을 거부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곡물 가격은 다시 요동치고 있다. 현재는 덜하지만 조만간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와 예상 때문이다.

◆미-중 대결에 ‘반도체’도 직격타

미-중 대결로 인해 큰 영향을 받은 품목은 반도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면 중국으로의 반도체 수출이 어렵게 될 것이란 예측이 대세를 이룬다. 실제로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은 예년과 비교하면 형편없이 낮아졌다. 예측한 대로 실적에 반영되면 이것이 장기화될 것인가, 단기전으로 끝날 것인가에 따라 기업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천차만별이다.

미-중 대결이 고조된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까지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는 대폭 하락했다. ‘5만 전자’가 언제 6만 전자가 되겠냐며 많은 투자자들이 삼성전자 주식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7만 전자’가 됐다. 미-중 대결이 어느 정도 맥을 잡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최근 ‘디커플링(de-coupling, 시장 배제)’에서 ‘디리스킹(de-risking, 위험 제거)’으로 전환되는 듯한 분위기도 한몫을 한 듯하다. 이와는 달리 잘 보이지는 않지만 큰 흐름의 변화로 인해 서서히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미국-중국 간 무역전쟁.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3.05.25.
미국-중국 간 무역전쟁.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3.05.25.

몇 년 전 아프리카 돼지 열병(ASF)으로 돼지고기 시장이 요동친 적이 있다. 한국에선 초기 발병 시 수의 방역 대책을 마련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그래도 ASF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한국은 주식(主食)이 쌀에서 돼지고기로 바뀐 지 오래다. 돼지고기 자급률은 약 70%다. 만일 ASF로 인해 한국의 돼지고기 공급에 문제가 발생하면 한국의 주식이 흔들리게 된다.

한국과 달리 중국, 동남아 지역은 ASF로 인해 시장의 40%가 무너졌다고 한다. 물론 이들 나라들은 돼지고기가 주식은 아니지만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폭락하고, 돼지사육 농가들은 문을 닫았다. 돼지사육 자체가 어려워진 것이다. 내수공급에 차질이 발생하고 수입고기의 비중이 높아진다. 한번 무너진 것은 복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러한 현상은 장기적으로 ASF 이전과 이후로 돼지고기 시장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ASF를 비롯한 수의 방역 기준은 높아지고, 이로 인해 개별 농가들의 사육은 줄어드는 반면 기업 차원의 대규모 사육이 늘게 된다.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장기적으로 상승추세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지만 단기적으로는 당장의 수급문제 때문에 가격이 요동친다.

◆세계 경제 멈춰 세운 코로나 대유행

코로나 펜데믹 역시 장기적 변화를 수반하는 계기가 된다.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한 직후 전 세계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 세계를 예측하는 붐이 일었다. 경험해 본 적 없는 바이러스가 인간을 공격했기 때문에 불안은 극에 달했다. 전 세계 경제는 멈춰 섰고 사람들은 이동을 최소화했다.

온라인 거래가 대세가 될 것이며 이는 펜데믹 이후에도 더 확장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더 이상 세계화는 없을 것이며 지역 단위 블록화가 강화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세계화의 주역이었던 항공과 해운업계는 줄도산이 예고됐다. 사람들의 이동이 온라인으로 해결되며, 온라인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이동을 통한 세계화는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예측도 할 정도였다.

그런데 펜데믹 이후의 세계는 빠른 복원력을 보이고 있다. 사람들은 몇 년 동안 움직이지 못했던 한을 풀기라도 하듯이 아직은 내리지 않은 항공료에도 불구하고 공항으로 달려가고 있다. 재택근무의 비중도 점차 줄어들고 사람들은 다시 사무실로 모였다. 사무실 임대업이 이제는 재미가 없어질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사무실 수요는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빠른 복원에도 불구하고 펜데믹 이전과 이후에 분명한 변화가 보인다. 위생 문제가 대표적이다. 위생 기준이 높아짐에 따라 관련 설비 공급업체들의 업그레이드와 운영 기준의 강화 등은 사회적 변화를 가져온다. 장기적 변화지만 읽어 내기는 어려울 수 있다.

올해는 정전협정 체결 70년이 되는 해다. 남북한은 각기 70년의 의미를 달리한다. 한국은 북한의 무력침공을 막아내고 유사 이래 최고의 경제발전을 구가하고 있는 지난 70년을 평가한다. 실제로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전환한 유일한 국가다.

반면 북한은 미국의 침공을 막아내고 지금까지 미국과 맞서고 있는 것을 자랑한다. 북한은 분명 조국 해방전쟁이라고 하면서 자신들의 침공을 정당화했는데, 언제부턴지 항미(抗美) 전쟁이라며 미국을 몰아낸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자기모순에 빠져있다. 전쟁 도발을 기획했던 김일성이나, 이를 지원한 중국, 소련도 지금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쟁과 같은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고 질서의 변화가 발생할 때 이것이 장기적 영향을 미칠 것인지, 아니면 단기적으로 그칠 것인지를 깊이 있게 판단하고 예측하는 게 경제안보를 지켜내는 능력이다. 불확실성이 날로 고조되고 있는 지금이 이 능력을 가장 필요로 하고 있다.

[용어설명]

◆흑해 곡물 수출협정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라 중단된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 재개를 위해 지난해 7월, 4개월(120일) 기한으로 체결된 협정이다. 당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유엔과 튀르키예의 중재 하에 흑해 항로를 통한 양국 곡물 및 비료를 안전하게 수출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은 4자 흑해 곡물 수출 협정을 맺었다. 우크라이나는 밀과 옥수수, 콩, 해바라기유 등의 세계 최대 수출국 중 하나지만,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흑해가 봉쇄되면서 연간 6000만~8000만t에 달했던 곡물 수출이 모두 중단됐다. 이에 따라 국제 곡물가가 급격히 상승한 것은 물론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등에 극심한 식량난이 초래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이에 중재를 통한 흑해 곡물 수출협정이 맺어졌다.

◆미-중 무역전쟁

지난 2018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을 말한다. 미-중 무역전쟁은 2018년 3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시작됐다. 관세로 시작된 양국의 무역전쟁은 이후 미국의 화웨이 제재 조치와 중국의 희토류 수출제한 시사 등으로 기술 문제로까지 확대됐으며, 미 국방부가 2019년 6월 내놓은 보고서에 대만을 국가로 명시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뜨리면서 체제 문제로까지 퍼졌다. 이후 환율전쟁으로까지 번진 미·중 무역전쟁은 최근 시장 배제를 의미하는 ‘디커플링(de-coupling)’에서 위험 제거를 뜻하는 ‘디리스킹(de-risking)’으로 수위가 완화되면서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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