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서울시지부(지부장 김기제)와 산하 25개 지회장 등 참전군인들이 6.25 전쟁 기념일을 앞둔 6월 19일 인천시 자유공원 내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 김성렬씨)

월미도 앞바다 상륙작전 현장 목격한 참전용사
“포탄 비오듯… 조명탄에 개미까지 보일 정도”
북한군 허리 자른 작전 적중, 일거에 전세 역전

[천지일보=임문식 기자] “3일 동안 쏟아진 포탄이 월미도를 짓이겨 놨다.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된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65년 전인 9월 15일. 인천으로 가는 관문인 월미도가 포연에 휩싸였다. 유엔군총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한미 해병대의 상륙작전이 개시됐다. 이곳에 상륙한 미국 군함들의 함포는 일제히 불을 뿜었다. ‘구라망’으로 불리는 항공모함 함재기도 날아들어 폭탄을 쏟아부었다. 당시 김포군의 한 야산에 있던 김성렬(84)씨가 목격했던 상륙작전 현장이다. 지금도 그날의 기억은 생생하다. 김씨는 “밤엔 조명탄 수십 개가 인천 상공에 떠 있었다”며 “땅에 개미 새끼 기어가는 것도 보일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인천상륙작전은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전격 실시됐다. 파죽지세로 남진했던 북한군에 부산까지 함락될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맥아더 장군은 한강 방어선을 시찰한 뒤 이 작전을 명했다. 북한군의 허리를 자르겠다는 것. 작전은 명중했다. 남쪽 깊숙이 진군해 있던 북한군 주력부대는 보급로가 끊기면서 고립됐다. 전세는 일거에 역전됐다.

상륙작전은 2단계로 진행됐다. 15일 오전 6시 월미도에 상륙한 한미 해병대는 2시간 만에 점령을 완료했다. 이어 인천과 김포 비행장, 수원까지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28일엔 수도 서울을 완전히 탈환했다. 인천을 교두보로 확보한 데 이어 서울까지 손에 넣으면서 북진의 발판을 마련했다.

▲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서울시지부 김성렬 부지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6.25 전쟁 중에 입대했던 김씨는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서울시지부 부지부장이다. 그는 패색이 짙던 6.25 전쟁을 반전시킨 인천상륙작전이야말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결정적인 작전으로 평가한다.

김씨는 맥아더 장군에 대해 “인천상륙작전으로 적군 군수 통로를 잘라 적군 주력부대의 전력을 약화시켜 섬멸했다”며 “10월 1일 38선 돌파, 10월 20일 평양 탈환, 10월 26일 압록강 초산, 혜산진, 청진까지 진격한 세기의 명 장군”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6월 19일 인천시 자유공원에 세워진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 고개를 숙였다.

맥아더 장군 동상은 1957년 9월 15일 건립됐다. 상륙작전이 펼쳐졌던 인천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자리다. 하지만 일부 단체에서 이 동상이 ‘제국주의 상징’이라며 철거를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까지도 보수와 진보 단체가 철거 여부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

참전군인으로 이뤄진 6.25참전유공자회는 맥아더 동상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등 동상 수호에 앞장서고 있다.

김씨는 “동상이 세워진 지 50년이 넘었지만, 젊은이들뿐 아니라 나이 든 사람들도 동상이 있는지 잘 모른다”며 “대한민국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하는 데 밑거름이 되어 준 맥아더 장군의 공훈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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