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음식·형식 간소화 권고
“축문 한글로 적어도 괜찮다
종가 제사, 문화유산 지정해야”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2일 국회 소통관에서 2023 전통제례바로알리기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 사회 특성 등을 고려한 제사 권고안과 전통제례 보존을 위한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2일 국회 소통관에서 2023 전통제례바로알리기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 사회 특성 등을 고려한 제사 권고안과 전통제례 보존을 위한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국내 유교의 총본산인 성균관이 일반 가정에서 모시는 제사 음식과 형식을 대폭 간소화하라고 권고했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통제례 보존 및 현대화 권고안’을 제시했다. 이번 발표는 현대 사회의 특성 등을 고려해 제사 관습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각자의 형편에 맞게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일반 가정의 부담을 덜기 위해 마련됐다.

위원회는 권고안에서 조상이 사망한 날에 지내는 ‘기제(忌祭)’와 조상의 묘 앞에서 지내는 ‘묘제(墓祭)’의 진설 방식을 제안했다. 

◆ “초저녁 제사도 OK… 제사 음식 준비는 온가족 함께”

기제에는 과일 3종과 밥, 국, 술에 떡, 나물, 김치, 젓갈(식해) 등을 곁들인 것을 보기로 제시했다. 묘제에는 술, 떡, 포, 적, 과일, 간장 등 음식을 올린 더 간소화된 진설을 보여줬다. 과일의 경우 한 접시에 여러 과일을 올린 모습이었다.

최영갑 성균관 의례정립위원장은 “제사가 번거롭고 힘들어 지내지 못하겠다는 분들의 마음을 짐을 덜어드리고자 (권고안을 마련해) 발표하는 것”이라며 “평상시의 간소한 반상 음식으로 자연스럽게 차리고 돌아가신 분께서 좋아하시던 음식을 올려도 좋다.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이라도 정성을 다하면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제안한 원칙을 다시 강조한 것이다. 

성균관은 가정의 형편과 문화, 지역 특성 등에 따라 제사를 달리 지낼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예를 들어 제사 시간은 돌아가신 날의 첫 새벽(오후 11시~오전 1시)에 지내야 하지만, 가족과 합의해 돌아가신 날의 초저녁(오후 6~8시)에 지내도 된다는 것이다. 특히 며느리의 부담을 키운다는 제사 음식 준비에 관해서는 “고인을 추모하는 가족 모두가 함께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또 축문을 한문이 아닌 한글로 써도 되며, 신위는 사진 혹은 지방 어느 것을 이용해도 된다고 밝혔다. 부모님 기일이 서로 다른 경우에도 함께 제사를 지낼 수 있으며 제기가 없으면 일반 그릇을 써도 된다고 덧붙였다.

최 위원장은 “제사는 지금까지 오랜 시대를 거쳐오면서 많은 변천을 해왔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음식을 차리는 등 복잡한 제례 문화가 계승되고 있다”며 “조상을 추모하고 추억을 되살리며 가족 간의 화목을 위하는 길사(吉事, 경사스러운 일)인 제사로 인해 도리어 불화가 생긴다면 옳은 방법이 아닐 것”이라고 당부했다. 

(출처: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출처: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 국민 과반 “앞으로 제사 지낼 계획 無”

성균관이 이번에 제사 간소화 방안을 제안한 것은 제사 관습에 부정적인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30일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만 20세 이상 성인남녀 15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제례 문화 관련 국민인식조사' 결과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5.9%가 “앞으로 제사를 지낼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제사를 지내지 않으려는 가장 큰 이유는 ‘간소화하거나 가족 모임 같은 형태로 대체하는 것이 좋다(41.2%)’를 꼽았다. 이어 ‘시대의 변화로 더는 제사가 필요하지 않다’가 27.8%였고, ‘종교적 이유나 신념’ 이유가 13.7%, ‘자손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아도 괜찮다’가 11.4% 등이었다.

제사 과정에서 가장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제수 음식의 간소화(25.0%)’가 가장 많이 꼽혔다. 이어 형식의 간소화(19.9%), 남녀 공동 참여(17.7%), 전통과 현대를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제사(17.2%), 제사 시간 변경(5.3%) 등의 순이었다.

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통 제례 보존 및 계승을 위한 방안에 대해서도 발표했다. 제사 간소화와는 별개로 종손이 지내는 제사나 불천위(不遷位, 큰 공훈이 있어서 영원히 사당에 모시도록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 제사에 대해서는 ‘세계인류 문화유산’이나 ‘국가무형 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게 성균관의 입장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혜령 뿌리회 회장은 “종손가 중심의 불천위 제례 보존을 위해 위원회, 종가, 학자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제례 문화 계승에 적합한 제도를 모색해 전통 제례의 현실적 계승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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