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이 격화되는 가운데 러시아에서 가장 많은 이슬람교도가 거주하는 다게스탄공화국에서는 이스라엘인을 겨냥한 공항 습격 사건이 발생했다. (AP/뉴시스) 2023.10.30.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이 격화되는 가운데 러시아에서 가장 많은 이슬람교도가 거주하는 다게스탄공화국에서는 이스라엘인을 겨냥한 공항 습격 사건이 발생했다. (AP/뉴시스) 2023.10.30.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지난 주말 반이스라엘 폭도들이 이스라엘인을 태운 비행기가 도착한 러시아 공항을 습격해 난동을 부린 사건과 관련, 러시아와 미국 간 책임 공방이 벌어졌다.

30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두고 폭동이 우크라이나와 서방세계에 의해 조직됐다고 주장하자 미국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이를 일축했다고 CNN 등 외신이 이날 전했다.

앞서 29일 러시아 공화국 다게스탄의 마하치칼라 공항에서는 반유대주의 구호를 외치는 군중들이 터미널 출입구를 부수고 난입해 난동을 벌인 바 있다. 이 난동은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에서 출발한 여객기가 공항에 도착하기 직전 벌어졌다.

수백명의 폭도는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이 유대인이 맞는지 확인하고자 주머니를 뒤져 여권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며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쳤고 일부는 비행기 활주로로 뛰어올라 항공기를 에워싸기도 했다.

전날 다게스탄 보건부를 인용한 러 타스에 따르면 당시 10명이 병원에 입원해 있으며 그중 2명은 위독한 상태다. 보건 당국은 “경찰관과 민간인 모두 경상에서 중상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경상을 입은 10명 이상의 사람들도 외래 진료를 받았다”고 밝혔다. 보안 당국은 사태를 수습한 뒤 60명 이상을 체포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사고가 발생한 다게스탄은 러시아 서부 카스피해 서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약 31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러시아 자치공화국 중 중동에 가장 가까운 지역 중 하나로 러시아에서 가장 많은 이슬람교도가 거주하는 곳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안보위원회 회의에서 “어젯밤 벌어진 사건은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서방에 의해 선동됐다”면서 “이 혼란을 누가 조직하고 혼란을 통해 누가 이익을 가져가는지 명백해졌다. 세계 불안의 최대 수혜자는 미국의 지배 엘리트들과 그들의 위성국들”이라고 싸잡아 비난했다.

당초 “낯선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주머니를 뒤져 여권을 찾는 건 영광스런 일이 아니다”라며 폭도들을 비난했던 다게스탄 주지사도 다음 날 우크라이나를 배후로 지목하며 탓을 돌렸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하마스를 상대로 가자지구 지상전을 예고한 가운데 관련 주요국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출처: 연합뉴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하마스를 상대로 가자지구 지상전을 예고한 가운데 관련 주요국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출처: 연합뉴스)

세르게이 멜리코프 주지사는 “폭동이 우크라이나 영역으로부터 유발됐다”고 주장했다. 그 배후로는 ‘모닝 다게스탄’ 텔레그램 채널을 이용하는 ‘반역자들’을 지목했다.

‘모닝 다게스탄’은 다게스탄 공화국에 대한 러시아 지배에 반대하는 이슬람 채널로 지난 2016년 우크라이나로 망명해 시민권을 부여받은 전 러시아 하원의원과 연관돼 있다는 게 러 당국 분석이다. 모닝 다게스탄은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에서 다게스탄 공화국에 도착하는 비행기의 세부사항을 공개하고 채널 참여자들에게 “예기치 않은 방문객들을 맞이하라”고 공지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이를 지원하는 미국 등 서방으로 탓을 돌리자 미국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이날 백악관 브리핑에서 이 같은 러시아의 주장에 대해 “고전적인 러시아 수사법(rhetoric)”이라며 “서방은 이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러시아의 주장은 단지 증오, 편협, 협박일 뿐 사안은 단순하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공항 폭동을 비난했다.

이번 여파로 공항은 일주일가량 폐쇄 조치됐다. 러시아 항공국은 내달 6일까지 공항이 잠정 폐쇄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측은 이번 사건에 대해 모든 자국 시민과 유대인을 보호해 줄 것을 러시아에 촉구했다. 미국 반유대주의 감시 특사도 이날 “전 세계적으로 반유대주의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이스라엘, 유대인 공동체 전체와 함께한다”며 유대인 표적 테러를 규탄하는 한편 러시아 측에 협조를 요구했다.

러시아 공항에 난입한 친팔레스타인 시위대(마하치칼라[러시아] AP=연합뉴스) 30일(현지시간) 러시아 서남부 다게스탄의 마하치칼라 공항 비행장에 난입한 시위대가 반유대주의 구호를 외치며 걷고 있다. 외신은 전날 이스라엘에서 날아온 여객기가 이 공항에 착륙할 것으로 알려지자 친(親)팔레스타인 성향의 시위대가 난동을 벌였다고 전했다. 2023.10.30
러시아 공항에 난입한 친팔레스타인 시위대(마하치칼라[러시아] AP=연합뉴스) 30일(현지시간) 러시아 서남부 다게스탄의 마하치칼라 공항 비행장에 난입한 시위대가 반유대주의 구호를 외치며 걷고 있다. 외신은 전날 이스라엘에서 날아온 여객기가 이 공항에 착륙할 것으로 알려지자 친(親)팔레스타인 성향의 시위대가 난동을 벌였다고 전했다. 2023.10.30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