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이 전체회의를 통해 국가 권력 서열 3위인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을 해임했다. 대통령·부통령에 이어 권력 서열 3위인 미국 하원의장이 해임된 건 234년 미국 의회 역사상 처음이다. 매카시 의장이 269일 만에 임기 중 물러나면서 법안 심사 처리 등 의회 기능이 정지됐다.

이번 하원의장 해임은 공화당 내 강경파의 반란에 따른 야당 내분 사태에서 비롯됐지만 그 근본 배경에는 비타협적 정치 양극화가 깔려 있다. 해임은 공화당의 강경 보수 계파 ‘프리덤 코커스(Freedom Caucus)’ 소속의 맷 게이츠 의원의 발의로 이뤄졌다. 매카시 의장이 지난 1일부터 시작하는 2024년 예산안 처리 지연에 따른 연방정부의 셧다운(shutdown, 정부 폐쇄)을 막기 위해 지난달 30일 예산안 통과를 주도했다는 이유였다. 매카시 의장이 민주당의 의견을 대폭 수용하면서도, 작은 정부를 표방하며 예산안 감축을 요구한 공화당 강경파들의 의견을 무시했다는 게 게이츠 의원 등 공화당 소수 강경파 의원들의 주장이다. 매카시 의장과 같은 당인 공화당 의원이 해임결의안을 제출하고, 극단적인 우파 성향의 공화당 의원들이 동참하면서 이뤄졌던 것이다.

연방정부의 마비를 막으려던 매카시 의장에게 여당인 민주당 의원 전원이 해임 찬성에 표를 던졌다는 점도 의외다.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를 추진한 매카시 의장과 날카롭게 대립해 온 민주당은 해임 결의안에 대해 당론으로 찬성을 결정했다.

의회민주주의의 표본인 미국에서 초당적 협력은 이제 옛말이 됐다. 대화와 타협은 커녕 극단과 대결이 난무하며 민주주의의 기본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최고조에 달했던 분열과 갈등의 정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미국 하원의장 해임사태는 지난달 21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의 이탈로 가결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보는 듯하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의장 해임이라는 극단적 카드를 선택하고, 목소리가 큰 소수의 인원에 당론이 좌우됐다. 상황은 다르지만 합리적 대화를 거부하고 자신의 사법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야당 대표가 단식에 나서는 한국 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말로는 민생과 경제를 외치면서 자기 이익만을 챙기며 최소한의 제 할 도리도 다하지 못하는 여야 대치 국면이 끝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한국과 미국 모두 극단적인 정치로 큰 소용돌이에 빠져들 수 있다. 양국 모두 어떤 타협도 거부하는 소수 강경파가 의회를 마비시킬 수 있는 정치 환경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진정한 의회 민주주의를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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