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대한민국은 오는 국군의 날을 맞으며 모처럼 열병식과 시가행진 등 군사퍼레이드를 진행한다. 그동안 좌파 정부 기간 군은 모든 행사에서 제외되다시피 했다. 왜? 평양의 눈치를 보느라고…. 이제 대한민국은 정상국가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좌파 정부 기간 우리 국군은 정말 숨죽이며 지내야 했다. 분단국가에서, 그것도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군이 숨을 제대로 못 쉬니 국가안보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반면 북한은 어떤가? 올해 들어와 북한은 벌써 세 번째 열병식을 거행했다. 지난 2월 8일 정규군 창설일에 한 번, 7.27 이른바 전승절에 한 번, 그리고 엊그제 정권 수립 75주년에도 북한군의 노농적위군과 붉은청년근위대는 김일성광장의 지축을 울리며 행진했다.

북한은 지난 8일 ‘전술핵공격잠수함’이라고 주장하는 ‘김군옥영웅함’ 진수식을 공개한 데 이어, 이날 정권수립 75주년 중앙보고대회와 ‘민방위 무력 열병식’을 연달아 개최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열병식에 딸 주애와 함께 참석했으나, 별도의 연설은 하지 않았다. 뭐 별로 대내외에 보낼 메시지가 없는 것 같다. 북한 정권은 올해 두 차례 핵 무력 중심의 열병식에 이어 민방위 열병식까지 개최해 내부단결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열병식에 류궈중 부총리 등 중국 대표단이 참석했으며, 러시아는 ‘알렉산드로브명칭 군대아카데미 협주단 단원들’만 참석하고 별도의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곧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총비서의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으니 별도의 대표단을 보내고 말고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공화국 창건 75돌 경축 민방위 무력 열병식이 8일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서 성대히 거행됐다”고 보도했다. 열병식의 주석단 특별석에는 김 위원장과 딸 ‘주애’가 정중앙에 단둘이 앉았고, 리병철 비서와 박정천 당 군정지도부장 등도 자리했다. 최근 태풍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김 위원장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은 김덕훈 내각 총리가 열병식 보도에서 가장 먼저 호명됐다. 김 총리는 전술핵공격잠수함 진수식에도 참석했고, 특히 정권수립 75주년 중앙보고대회에서는 ‘보고’까지 맡았다. 금방 날려버릴 것 같던 내각 총리를 그대로 두는 걸 보면 김정은의 속내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북한은 당초 예고한 ‘민간무력 열병식’ 대신 이날 ‘민방위 무력 열병식’이라는 표현을 썼다. 북한 인민군 정규군과 사회안전성 경찰 무력은 일체 참여하지 않고 각계계층에 조직돼 있는 노농적위군 부대들을 중심으로 열병식이 진행된 것이다. 노농적위군은 북한의 각 직장과 행정단위 별로 편성된 민간 군사 조직으로 57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신문은 민방위 무력에 대해 “국가 방위력의 중추인 인민군대의 믿음직한 익측부대, 후방보위, 향토 보위의 기본역량”이라면서 “평화 시기에는 일터마다에서 창조와 건설의 우렁찬 동음을 울리고 일단 유사시에는 근로인민 모두가 무장”을 잡는다고 설명했다. 열병식 선두에 수도당원사단 종대가 섰고, 이어 평안북도 등 각도의 노농적위군 종대, 김일성종합대학, 황해제철련합기업소, 김정숙평양방직공장, 국가과학원, 붉은청년근위대 종대 등이 행진했다. 열병식에 참여한 민방위무력의 기계화 종대로는 모터사이클 종대, 트랙터들이 견인하는 반탱크미사일 종대, 고사포 종대, 위장방사포병 종대 등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 2월 8일 건군절과 7월 27일 이른바 ‘전승절’에 북한 정규군의 핵 무력 중심 열병식이 두 차례 열린 데 이어 이번에는 민방위 열병식까지 개최함으로써 내부 방위태세와 체제단결을 과시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러시아 대표단이 지난 7월 27일 ‘전승절’ 열병식에 참여한 것과 달리 이번 열병식의 경우 러시아 외교사절은 이례적으로 참석하지 않았다. 열병식에 앞서 개최된 중앙보고대회에서 김덕훈 총리는 “비상히 상승하여온 공화국의 국력과 위상은 우리 당의 사상과 정책, 우리 인민정권과 우리식 사회주의 체제의 승리인 동시에 그 정당성과 우월성, 불패의 생활력을 꿋꿋이 지켜낸 우리 인민의 억센 자존심과 강인성의 승리”라면서 “김정은 동지 따라 혁명해 온 지난 10여 년의 투쟁이 이를 훌륭한 결실로써 증시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트랙터까지 끌고 나와 ‘힘있는 나라’라고 선전하는 북한의 모습이 참담하다. 제아무리 열병식으로 나라의 힘을 과시하려 들지만 그것은 더욱 인민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삐뚤어진 처사임을 하루빨리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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