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평양 정권의 좌불안석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최근 국경의 문이 다시 열린 데다 내부적으로 식량 부족 등 사회주의 고갈을 넘어 붕괴 징후가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육, 해, 공군의 기존서열을 해, 육, 공군으로 바꾸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며칠 전인 8월 29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정은 총비서가 지난 27일 해군사령부를 방문해 인민해군 전체 장병들을 축하 격려했다고 보도했다. 김 총비서가 집권 이후 해군절(8월 28일)을 계기로 해군 관련 단독 공개 행보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김 총비서는 지난 2016년 3월 해군 597군부대 관하 10월 3일 공장 현지지도를 마지막으로 해군 관련 행보를 거의 하지 않았다. 북한군에서는 “김정은이 육군은 포기하고 해군은 방치하며, 공군만 챙긴다”는 말이 있는데 이번 해군사령부 방문을 계기로 해군만 챙기려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게 만들고 있다. 김정은의 이번 방문에는 딸 주애가 동행했는데 정주년(5·10단위로 꺾어지는 해)이 아닌 해군절에 ‘백두혈통’을 대동해 현지 지도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란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주애는 지난 5월 6일 김 총비서의 비상설위성발사준비위원회 사업 현지지도에 동행한 이후 3개월여 만에 다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울러 김 총비서는 이례적으로 군부대에서는 전혀 하지 않았던 해군의 역할에 힘을 실어주는 연설까지 했다. 그는 최근 진행된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3국이 연합 군사훈련을 정례화하기로 합의한 것을 언급하며 “우리 해군이 전쟁 준비 완성에 총력을 다하여 유사시 적들의 전쟁 의지를 파탄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전술핵 운용의 확장 정책에 따라 군종 부대들이 새로운 무장수단들을 인도받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우리 해군은 전략적 임무를 수행하는 국가 핵억제력의 구성부분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며 해군이 다양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 대목은 향후 SLBM을 해군에 양도하겠다는 의지의 천명이어서 주목된다.

김 총비서의 이례적 해군 시찰의 이유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제기된다. 먼저 북한과 러시아가 해상연합훈련을 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과 관련된 행보일 수 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17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 총비서가 지난달 25~27일 방북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큰 틀의 군사협력 방안에 합의’했으며 러시아 측이 연합군사훈련을 제안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북한은 다른 나라와 연합훈련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현실화 여부는 미지수이나, 최근 신냉전 구도 속에서 전략적으로 러시아의 제안에 응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러시아와 아주 일부분의 국경만 맞대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육군의 연합훈련은 큰 의미가 없다는 평가다. 또 상대적으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북한의 공군력과 태평양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추진하는 러시아의 군사 전술을 감안하면 북-러가 추진할 연합훈련은 한미의 해상전력에 맞대응하기 위한 해군의 훈련을 중심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올해 수중 핵드론(무인공격정) ‘해일’을 처음으로 공개하고,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전략순항미사일을 함선에 배치하는 등 해군의 핵전력 강화도 계속 추진 중이다. 김 총비서가 현재 한반도 수역은 ‘세계 최대의 전쟁장비 집결수역’ ‘가장 불안정한 핵전쟁 위험 수역’이라고 밝힌 만큼, 한미의 해상전력에 대응해 해군력을 강화하고 러시아와 연계해 위협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재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벌인 러시아의 ‘무기고’라는 정황이 드러나는 가운데 그 대가로 북한이 무엇을 챙길지도 관심사다.

2일 미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핵무기 소형화, 현찰 등을 러시아로부터 받으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러니까 평양 정권은 정상적인 개혁 개방으로 경제 재건을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냉전에 편승해 러시아로부터 무기를 팔아 외화도 벌고 정권안보도 맡기려는 희세의 사대주의 잔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은 한반도의 북쪽에 자리 잡은 작은 우방보다 더 많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린 미국에 보다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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