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판사가 고교·대학 시절뿐만 아니라 법관 임용 이후에도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정치성향을 반영한 글을 썼다고 한다.

조선일보와 채널A 보도를 종합하면, 정 의원에게 징역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는 2019년 10월 10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그토록 존경받던 기자의 지위와 권위를 떨어뜨린 것은 누구도 (아닌) 바로 기자 자신”이라는 글을 올렸다.

해당 게시물은 고(故) 리영희 교수가 1971년 쓴 ‘기자풍토 종횡기’를 박 판사가 요약해 게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부의 자산관리인으로 알려진 김모씨가 KBS와 인터뷰를 가진 것에 대해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비판하던 시기에 작성됐다고 한다.

박 판사는 지난해 3월 9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선에서 패배한 뒤엔 “이틀 정도 소주 한잔 하고, 울분을 터뜨리고, 절망도 하고, 슬퍼도 했다가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야 한다”는 게시물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2021년 4월 7일 박영선 당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낙선했을 땐 중국 드라마 ‘삼국지’ 장면을 캡처한 사진을 30장 정도 올리며 ‘승패는 언제나 있을 수 있다. 피를 흘릴지언정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글을 달았다고도 한다.

2018년 1월 24일 박근혜 정부 시기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했다는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김명수 대법원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내자 다음날 ‘분노하라’는 문구와 함께 주먹 쥔 삽화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변경했다고도 한다.

박 판사가 법관 재직 시절 정치성향이 반영된 글을 올린 것은 법관윤리강령을 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법관윤리강령 제7조에 따르면, 현직 법관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정치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의 임원이나 구성원으로 참여해선 안 되고, 선거운동 등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는 활동을 하면 안 된다.

지난 2012년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권고 의견으로 법관의 소셜미디어 사용에 관한 규정을 마련했다. 대법원은 “법관은 소셜미디어 상에서 구체적 사건에 관해 논평하는 것이 제한되고, 사회‧정치적 쟁점에 의견 표명을 하는 경우 균형적 사고를 바탕으로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며 “법관으로서 공정성이 의심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관이 향후 공정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를 야기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했다.

법관이 개인적으로 정치적 의견을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법원의 내부적인 권고 지침을 무시하고 개인적 정치성향을 소셜미디어에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은 판결에 반영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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