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양국 해군 출동 ‘일촉즉발 대치’
군비 대폭 증강에 군사 긴장감 커져
이란, 관계개선 필요성 반대 목소리
“힘에 의한 해결보다 대화에 나서야”

최근 이란 해군의 민간 선박 나포 시도로 미 해군이 출동하면서 일촉즉발의 긴장이 연출되는 등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 주변에서 양국 간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이란 근해에 배치된 미군 USS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 모습. (AP/뉴시스)
최근 이란 해군의 민간 선박 나포 시도로 미 해군이 출동하면서 일촉즉발의 긴장이 연출되는 등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 주변에서 양국 간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이란 근해에 배치된 미군 USS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 모습. (AP/뉴시스)
편집자 주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 주변에서 이란-미국 간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란에서는 서방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가 미국에 의해 쇠퇴하고 무너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도 페르시아만에서 전투 능력을 보강하고 시리아 등 중동에서 군사적 행동을 강화하고 있다. 군사적 우위를 통해 긴장을 억지하려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해 본지는 세쿠페 닷고스타 만소리(Shekoofeh Dadgostar Mansori)가 보내온 글을 번역해 게재한다. 세쿠페 닷고스타는 이란 출신으로 스페인 그라나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유럽과 튀르키예, 이란 등을 오가며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스페인 국적을 보유한 그는 유럽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길목인 튀르키예와 중동 지역에 대한 통찰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고자 한다.

 

세쿠페 닷고스타 만소리 칼럼니스트.
세쿠페 닷고스타 만소리 칼럼니스트.

이란 해군이 지난달 5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으로 이어지는 오만 인근 공해상에서 미국 국적의 유조선에 총격을 가했고, 미국 해군이 출동해 일촉즉발의 긴장이 연출됐다.

미국 해군은 이날 “이란 해군함정이 페르시아만에서 미국 정유사 등 민간 유조선 2척을 나포하려는 시도를 저지했다”고 밝혔다. 미 제5함대는 “이란 해군함정들이 먼저 TRE 모스 호에 접근했고 긴급 출동한 미 해군 유도미사일 구축함 맥폴호가 현장에 나타나자 해역을 떠났다”며 “미군이 누구에게도 발포하지 않았으며 부상자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유조선 2척은 각각 마셜제도 국적의 유조선 TRE 모스호와 미국 정유사 셰브런이 운영하는 리치먼드 보이저호다. 페르시아만 일대에서 이란 해군의 민간 선박 나포 시도는 지난 2019년 이후 처음이다.

◆페르시아만에 병력 증강하는 美

미 제5함대는 지난해 미국의 우방국들과 함께 이 지역에서 항해용과 잠수용 무인정 약 100대 운용을 목표로 특수 무인정 MAST-13 기동대를 출범시켰다. 미군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이 지역에 군사력을 추가 배치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17일 토마스 해드너 구축함과 함께 F-35, F-16 전투기를 중동에 배치하겠다고 선언했다.

미 국무부는 페르시아만에 전투 비행기와 해군함정을 배치한 건 해상운송의 안전을 감독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투기와 군함을 중동의 전략적 수로에 배치한 것은 단순히 이란의 적대적 행동에 대응하기 위한 예방 조치일 뿐,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려는 건 결코 아니라는 설명이다.

미 국무부 대변인 매튜 밀러는 지난달 18일 언론 브리핑에서 페르시아만에서 이란과의 분쟁 준비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분쟁 준비는 절대 아니다. 해상 무역의 안전을 보장하고 불안정의 잠재적 원인을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 주변에서 이란군과 미 해군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것은 양국이 긴장의 책임을 서로의 탓으로만 돌리고, 포괄적인 대화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페르시아만의 이란 군함. (출처: 연합뉴스)
페르시아만의 이란 군함. (출처: 연합뉴스)

◆이란 혁명 이래 44년간의 불화

알리 악바르 살레히 전 이란 외무장관은 “미국과의 논의가 항상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수감자 석방,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전반적인 핵 문제 같은 특정 문제에 초점을 맞춰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미국은 이란의 다른 측면을 포괄하는 포괄적인 정치적 대화를 한 적이 없다”면서 “현재의 지역적, 세계적 상황을 고려할 때 지금은 유럽과 미국을 아우르는 서방 세계와 포괄적·정치적 대화를 시작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이란 혁명 이래 지난 44년 동안 이란과 미국 간의 관계는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러시아와 중국도 이란이 자국 경제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관계를 개선할 것을 권고해왔다.

마흐무드 아마디네자드(Mahmoud Ahmadinejad) 이란 외무장관은 “대부분의 글로벌 은행이 이란과 연결돼 있지 않아 수입 상품 가격이 급등, 교역 비용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한국이 이란에 지급해야 하는 원유 대금(미국 제재로 동결)을 풀려고 해도 스위스로 먼저 송금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며 “이에 따라 환율 때문에 또 한 번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군부 등 강경파들은 미국과의 관계개선 필요성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란혁명수비대(IRGC)의 고위 사령관은 “서방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가 미국에 의해 쇠퇴하고 무너지고 있다”며 “중국과 러시아, 이란 등 삼각 세력이 향후 중요한 지구촌 발전을 이끌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군사 옵션보다 ‘포괄적 대화’ 필요

호세인 살라미 이슬람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지난달 24일 “미국은 지역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을 상실했고 전통적인 동맹국들은 이에 등을 돌렸다”며 “미국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모두 무너졌고 이슬람 혁명에 의존했던 사람들은 버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페르시아만 지역은 엄청난 압력으로 더 이상 미국 외교 정책의 우선 순위가 아니며 중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이 접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도 페르시아만에서 전투 능력을 보강하고 시리아 등 중동에서 군사적 행동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애당초 평화로운 지역 안보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란과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다.

미국은 군사 옵션을 유지하면서 긴장 수위 상승을 억제하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 요컨대 군사적 우위를 통해 긴장을 억지하려는 방식이다. 브렛 맥거크 백악관 중동·북아프리카 조정관은 “이번 외교는 압박이 따르지만 지난 5월 오만에서 양국 간 대화의 토대를 마련했다”며 군사력을 기초로 한 긴장 고조 억제 효과를 설명했다.

포괄적 대화만이 이란과 미국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페르시아만 지역의 평화 정착을 꾀할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양국이 서로의 입장을 인정하지 않고 힘에 의한 대응방식을 고수한다면, 포괄적 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노력 없이는 페르시아만 지역이 지구촌의 또 다른 화약고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4일(현지시간) 한국 국적의 유조선 'MT-한국케미호'가 걸프 해역(페르시아만)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됐다. 사진은 이란 타스님통신이 보도하고 AP통신이 배포한 것으로 'MT-한국케미호'가 이란 혁명수비대 선박 여러 척에 둘러싸인 채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출처: AP/뉴시스)
4일(현지시간) 한국 국적의 유조선 'MT-한국케미호'가 걸프 해역(페르시아만)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됐다. 사진은 이란 타스님통신이 보도하고 AP통신이 배포한 것으로 'MT-한국케미호'가 이란 혁명수비대 선박 여러 척에 둘러싸인 채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출처: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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