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위원

트럼프 정부 시절부터 첨예하게 대립한 미⸱중 패권 경쟁이 점점 완화의 국면으로 가는 장면이나 연출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근 7년간 악화일로만 걷게 될 것으로 보였던 양강이 이젠 만나면 7시간 이상이 기본이 될 정도의 대화 시간을 갖는다. 상호 인정하는 건설적 대화가 됐다고 할 정도의 발표도 서슴없이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작년 미⸱중 무역액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양국 간 총 6906억 달러(약 873조원)다. 싸우는 사람끼리 상호 물품을 교환할 수 있을까라고 일반인들은 의문이 든다. 겉으로는 경천동지할 정도로 으르렁대면서 실상은 수면 하에서 온갖 물물교환을 통해 이익의 균형점을 끊임없이 찾고 있다.

작년 11월 바이든과 시진핑이 만나 대화를 하자고 합의한 후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카운터 파트너인 친강 외교부장과 6월 8시간 대화했으며, 재닛 앨런 미 재무장관과 중국 측 카운터파트 허리펑 국무원 부총리가 지난 8일 7시간 동안 만나 저소득 국가 부채 경감 및 세계 기후 변화 대응 관련 전략적 대화를 가졌다. 특히 앨런 장관은 트럼프 집권 시절에도 중국과 대화를 해야만 한다고 일관된 주장을 폈던 미국 내 장관급 이상의 인물이기도 하다.

게다가 일본에서 개최된 G7 정상회담 시 중국과 디커플링시켜야 한다는 이전의 용어보다 디리스킹이라는 표현으로 자연스럽게 바뀐 발언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서방 7개국 정상 중 독일, 프랑스 최고 책임자들이 벌써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을 만나고 돌아왔고 각종 국제행사장에서 기회만 있다면 중국 측과 공식·비공식 만남이 잦아지고 있는 징후만 봐도 변화의 단초들이 점증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일본 기시다는 북한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하고, 북한은 현재 공식적 답변은 없지만 북⸱일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물밑 접촉까지 하고 있을 수 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바이든이 대놓고 시진핑에게 러시아를 노골적으로 지원하지 말라고 하면 시진핑은 대답을 못 하고 있고, 장관급 레벨에서 대화의 지속성이 계속 유지되고, 디리스킹이라는 표현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부인하고 싶지만, 미⸱중 관계의 향배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종속변수의 국가이기에 속칭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가치 외교라는 미명으로 미국의 전위대를 자처한 양 미국이 원하는 대로 일본과 통(?) 크게 화해하고 한미일 군사동맹이라는 문서에 서명만 하지 않았지, 그 직전까지 가 있는 상황이며 신 냉전적 사고로 북한만 자연스럽게 전략적 가치를 러시아, 중국에게 높여주는 행위를 자행한 꼴이다.

미⸱중은 대화로 물꼬를 트고 미국은 중국이 원하는 2인자 위치를 인정하고 국익 극대화 길로 운전대를 틀고 있다. 기시다는 김정은을 만나려 한다. 유럽국가들은 중국과 지속적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남미와 아프리카는 중국 편으로 반 이상의 국가들이 돌아서고 있다. 동남아는 중립적이다.

그런데 한국은 고립되고 북한과 한 사람의 만남도 없고 전화 한 통도 주고받지 못한다. 중국과는 오해만 쌓이고 있다. 러시아는 엄청나게 한국을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다. 사면초가의 외교를 원하지는 않았겠지만, 체면을 내려놓고 국가이익을 위해 실용 외교를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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