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근래 평양과 워싱턴이 ‘종전선언’을 놓고 밀당이 이어지는 가운데 특히 평양 정권이 한반도 ‘두 개 국가론’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무슨 말인가. 지난 2019년 베트남 하노이 노딜 이후 평양으로 귀국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반도 통일이란 단어조차 쓰지 못하게 하며 이제 당분간 내적으로 분단체제로 간다는 방침을 천명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때부터 북한에서는 민족이란 말이 사라지고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두 개 국가론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두 개 국가론은 그 1년 전부터 착실하게 준비된 걸로 보인다. 2018년 12월을 끝으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서 민족이 사라졌다. 심지어 북한의 대남기구가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김정은은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남측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조국통일을 위한 우리의 력사적 투쟁은 오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며 대남전략의 대전환을 예고했었다. 자신들의 시나리오에 따른 조국통일의 대세는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아마도 북한 당국은 사실상 대화창구인 조평통을 해체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이번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방북 뉴스가 터지자 북한은 조평통이 아닌 외무성 국장을 내세워 거절 담화를 발표했는데 이것은 남북관계를 잠정적 특수관계가 아닌 정상적인 국가관계로 보고 싶다는 방증이 되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잘 될수록 북한 정권은 잃는 것이 더 많아진다. 한국의 자유와 한류문화, 경제발전이 그만큼 북한 주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때문이다.

2021년 소집된 제8차 당대회에서는 사업총화 보고를 통해 “조성된 형세와 변천된 시대적 요구에 맞게 대남문제를 고찰하고 북남관계에 대한 우리 당의 원칙적 립장을 천명하셨다”고 북한 매체들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천명한 입장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기존 대남전략이 크게 바뀌었을 것으로 분석됐다. 바꾸는 것을 좋아하는 김정은이 유명무실한 대남정책을 보고만 있을 리는 만무하다. 사실 반추해 보면 이미 김일성과 김정일도 이른바 공산 혁명 논리에 따른 한반도의 공산화가 일장춘몽이란 걸 오래전에 깨달았다는 증거는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 들어 정상국가를 지향하는 ‘국가제일주의’를 내세우면서 국가주의를 대내외 정책의 핵심논리로 활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는 남북관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이 8차 당대회에서 개정된 조선노동당규약이다. 과거에 ‘조선노동당의 당면목적’으로 명시됐던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과업 수행”이라는 문구가 삭제됐다.

북한 내에서 최상위 규범으로 헌법보다 우위에 있는 당 규약의 이런 명시는 지상과제였던 북한 주도의 통일론을 포기하고 ‘국가 대 국가’로서 남북한 공존에 무게를 두는 정권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으로 성급하지만 평가할 수 있다. 또 다른 증거도 있다. 우선 8차 당대회에서 비서국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왔던 대남비서 직책이 사라졌다. 김영철 전 대남비서는 당 통일전선부장 자리마저 리선권에게 물려주고 이번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겨우 통일전선부 고문으로 복귀했다. 북한 정권이 자신들의 위상을 발견하고 한반도 공산화의 꿈을 유보했다면 다행이지만 작금의 ‘두 개 조선’ 정책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자칫 우리의 통일의 꿈이 사라지고 영구분단의 시대가 열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북한은 자신들과 코드가 맞는 트럼프 시대를 갈망하며 그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또 당선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러면 다시 북미정상이 만나 국교수립을 진행하고 북한을 중국 대신 ‘아시아의 공장’으로 상납하고 체제보장을 받는다는 것이다. 최근 평양과 일본이 싱가포르 등에서 몇 차례 접촉이 있었던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왜 이들이 만났으며 무슨 대화가 오갔을까. 미국의 허락 없이 일본이 짤가닥 나설 수는 없다. 모두 평양의 ‘두 개 국가론’ 그 음모의 거미줄에 걸려드는 건 아닌지 걱정이 크다. 여기에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통일부를 ‘북한 지원부’라며 강한 통일부 개조론을 천명했다. 대통령의 이와 같은 결단은 단지 과거 청산의 의미가 아니다. 북한의 달라진 한반도 ‘두 개 국가론’에 대응하는 새로운 국가비전을 우리는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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