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농구 대통령, 한국의 마이클 조던, 한국 농구계 불후의 매직맨. 경기인으로 허재(58)는 어떠한 찬사를 갖다 붙여도 어울렸다. 워낙 농구에 관해서는 만능의 실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선수 생활 시작부터 39살의 노장으로 은퇴할 때까지 정상급 기량을 유지했다. 현역 은퇴 후 지도자로서도 성공해 한국프로농구 출범 후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맛본 최초의 인물이다. 경기인으로 농구계에서 그만큼 성공적인 삶을 보낸 이는 없다.

하지만 경영인으로서 허재의 평가는 경기인과는 대조적이다. 허재 데이원 구단 대표이자 구단주는 선수단 임금 체불 등 재정 문제로 여러 차례 잡음을 냈다가 결국 프로농구 리그에서 제명됐다.

한국농구연맹은 최근 이사회와 총회를 잇달아 열고 데이원을 리그 회원사에서 제명했는데 이 자리에서 허 대표에 대한 ‘향후 구성원 등록 불허’ 결정도 함께 내렸다. 허 대표가 앞으로 KBL 구단 대표나 임원, 감독, 코치 등으로 등록 신청을 하더라도 받아주지 않는다는 ‘퇴출 카드’도 꺼냈다.

이 같은 결정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KBL에 재정적으로 큰 손해를 끼친 것에 대해 강력한 제재조치라고 할 수 있다. KBL은 “선수단 임금 체불, 리그 가입비 납부 지연 등의 문제로 프로농구 신뢰를 훼손한 데 대한 책임을 묻는 성격의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경영인으로 허재는 준비된 사람이 아니었다. 안 맞는 옷을 무리하게 입었다가 낭패를 본 셈이었다. 데이원 구단은 오리온 구단을 인수해 작년 8월 허재 대표를 선임해 창단했다. 하지만 리그 가입비 성격의 특별회비(총 15억원) 1차 납부액 5억원을 제날짜에 납부하지 못하며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모기업 대우조선해양건설의 경영난으로 올해 2월부터는 선수 월급도 주지 못해 결국 리그에서 제명됐다. 1997년 국내 프로농구 출범 이후 리그 참가 구단이 제명된 것은 데이원이 처음이다.

허재 대표는 퇴출된 구단 운영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시작부터 누가 봐도 구단 운영이 쉽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는 덜컥 대표를 맡았던 것이다. 농구가 좋아서 구단을 맡았다는 허재 대표는 자신의 이름값과 선수들을 앞세워 네이밍 스폰서로 운영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듯 했다. 그러면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방송 활동도 멈추지 않았다.

KBL이 데이원 구단을 회원사로 승인한 것은 허재를 대표로 내세웠던 측면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허재 대표가 이사들을 설득한 것도 승인에 큰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허재 대표는 부실한 구단 운영이 드러나면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제명 후에는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고 언론 등에 말한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허재 대표는 경영에 대한 경험을 제대로 갖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인으로서 자신의 이름값을 믿고 생전 처음 해보는 프로농구단 대표라는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가 참담한 실패를 맛보게 됐다. 경기를 업으로 하는 것과 프로구단을 관리하며 경영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 것인가를 간과했던 것이 그의 큰 패착이었던 것이다.

미국 프로농구 불세출의 영웅 마이클 조던은 선수 은퇴 후 지분 인수 등을 통해 워싱턴 위저즈 구단주로 활약했을 뿐 직접 경영에는 뛰어들지 않았다. 자신에게 생소한 분야인 구단 경영은 전문가에게 맡겨 운영토록 했다. 경영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또 다른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허재 대표는 농구인으로서는 화려한 명성과 성과를 남겼다. 하지만 구단 대표로서는 뼈아픈 좌절을 경험했다. 그의 씁쓸한 퇴장을 보면서 농구팬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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