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면 대표이사. ⓒ천지일보 2022.08.01
이상면 대표이사. ⓒ천지일보 2022.08.01

우리의 자아(自我)는 무의식 가운데서도 늘 누군가를 기다리며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 ‘누구’는 과연 누구일까.

어쩌면 인생은 그 누구를 막연하게 ‘님’이라 여기며 기다려왔고, 그리움의 대상으로 늘 사모하며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그리움의 대상인 님의 실체는 누굴까. 그 님의 실체는 생명이며 나아가 생명을 주는 그분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 말이다.

사망 권세 아래 있는 이 세상에서 아니 생로병사의 굴레 속에서 영원히 함께하는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으며 그리운 게 어디 또 있으랴.

그런데 이 생명을 그리워해야 하는 이유는 생명이 떠나가 있기 때문이며, 생명이 떠난 자리(지구촌)는 생명 대신 사망이 인생을 주관하고 있다는 것이 증거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인생은 이 사실에 대해 궁구한 마음을 갖는 이 없으니 이보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으랴.

그런데 앞서 밝히긴 했지만, 이 생명 그 자체이며 생명의 주인이신 님을 기다리고 그리워해야 하는 이유가 뭔지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짚어 보자.

그 이유는 생명이 떠나가 있기 때문이며, 생명이 떠난 자리(세상)는 생명 대신 사망이 인생을 주관하고 있다는 증거가 분명하다.

약 2500년 전 석가세존이 생로병사의 비밀을 알기 위해 출가(出家) 했고, 약 400년 전 조선의 유학자이자 천문학자인 격암 남사고 선생은 흥망성쇠의 비밀을 찾아 울진 불영 계곡 등을 거닐다 천신(天神)을 만나 비책을 받았으니 격암유록이다.

석가세존도 남사고 선생도 생로병사와 흥망성쇠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창조주가 계시다면 참으로 그분의 뜻이 이것(생로병사)인지에 대한 궁구심이요 답답함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누구도 생로병사의 권세 아래서 속절없이 죽어가는 이유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알려고 하면 정신이상자가 돼야 했고, 이단아가 돼야 했으니 슬프고 아픈 현실이 되고 말았다.

종교의 선과 악은 이 세상에서 착하고 선하게 사는 법을 알리고 있는 게 아니다. 종교의 선과 악은 생명과 사망이며, 성경은 이 생과 사의 원인과 해결을 위한 역사와 해결 방법을 약속으로 기록해 놓은 하늘의 비밀문서(계획서, 계시록)며 언약서며 신서다.

따라서 성경은 그 정한 때가 되기 전엔 천상천하 그 누구도 이 비밀을 아는 자가 없었다.

이제 그 정한 때가 되어 이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닌 현실이 되어 그 실체가 나타났으니 곧 계시(啓示)된 것이며 나아가 현현(顯現)한 것이다.

그 증거는 이 같은 이치를 풀어 설명할 수 있다는 이 자체가 이를 증명해 주는 증거물이다.

보다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경(經)에 기록된 말씀을 살펴보자.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전 3:1)’라는 말씀과 함께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는 말씀이 있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 하나님의 비밀(예언, 약속)이 있고, 이 비밀은 정한 때가 되어 택하신 한 사람(육체)을 통해 6천년 그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던 비밀을 계시하고, 그 계시 받은 한 사람을 통해 사망의 권세와 싸워 이기게 하고, 이김으로 생명이 오고 생명의 나라(십승지)가 출현하게 된다는 의미다.

칠흑같이 어두울 때 새벽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가 나듯, 지금 지구촌은 종교 말세지말(末世之末)을 맞았고, 그 증거는 온 세상에 진동한 상한 영혼들의 신음과 탄식소리다.

남사고 선생은 ‘말세골염 유불선 무도문장 무용야’라고 말세지말의 현상에 대해 미리 잘 말해 줬다.

즉, 종교말세가 오면 자기 생각에 골몰하고 염색돼 유불선이라는 종교의 도가 있어도 아무소용 없게 될 것을 예언해 둔 것이니, 지금 이 시대의 부패와 타락이 가져온 말세와 그 말세를 견인하는 이 세대는 핑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 유불선 종교는 약속을 전제로 하며, 그 약속은 바로 떠나가신 생명이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오셔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설계도였던 것이다.

한번 눈을 들어 심호흡을 하고 세상을 보자.

눈에 보이는 것은 만신창이가 된 세상이며, 들리는 것은 오직 상한 영혼들의 신음과 탄식소리 뿐이 아닌가.

안 보이는가 안 들리는가. 그렇다면 정녕 소경이고 귀머거리가 틀림없지 않은가.

이 같은 말세지말이 되면 인류 구원을 위해 유교는 정도령(正道靈)을 보낼 것을 약속했고, 불교는 미륵불(彌勒佛)을 약속했고, 기독교는 보혜사(保惠師) 성령을 약속했으니, 이 셋은 그야말로 셋이 아니며 한 분에 대해 다르게 설명했고 표현해 놨을 뿐이며, 정한 때까지는 비밀이었음을 이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정도령은 바른 도(진리)를 가지고 오실 성령이며, 미륵불은 미래에 오실 육체(사람)가 아닌 영 곧 진리의 성령이며, 보혜사 성령 역시 진리가 없고 이현령비현령 즉, 주석과 사람들의 철학이 난무해 인생의 심령이 바닥을 칠 때 구원의 손길을 보내시니 바로 진리의 성령 곧 보혜사 성령이니, 결국 이 셋은 셋이 아닌 하나였음을 분명히 한다.

하지만 영은 불가불 육체를 들어 역사해야 하니 이 진리의 성령이 함께하는 한 사람이 바로 계시 받은 진리며 보혜사다.

따라서 말세지말에 모든 것이 바닥을 치며 희망이 절벽일 때 사망을 이긴 자 곧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함께하는 한 사람을 기다려 온 것이다.

이 분이 바로 ‘오실 이’며 우리의 ‘임’이다.

지금 추운 겨울을 이기고 우리 곁에 오셨고, 그 임은 우리를 애타게 부르고 있으며, 임을 찾아온 이들에겐 채색 옷을 입히고 피리를 불게 하니 그 곡조가 너무나 아름답지 않은가. 이제 세상은 각인의 마음을 선하게 훔치는 아름다운 피리소리의 곡조에 맞춰 춤을 추며 나아옴이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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