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2연승 후 3연패를 당했다. 여자배구 챔피언결정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다 잡은 챔피언 자리를 한국도로공사에 넘겨준 뒤 흥국생명 선수들은 깊은 허탈감에 빠져 닭똥 같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하지만 한국여자배구 ‘여제’ 김연경은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화려한 선수 생활에 불명예 기록을 남긴 당사자로 남게 된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김연경은 2022-2023시즌 시상식에서 역대 두 번째 만장일치로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트로피를 거머쥔 뒤 “통합우승이 가능한 팀에 입단하고 싶다”며 “국내에서 은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챔피언 결정전의 뼈아픈 패배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 것이다.

김연경은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하면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열정과 정신력으로 버텨왔다. 한국을 거쳐 일본, 튀르키예, 중국 등에서 선수생활을 해 오면서 지난한 과정을 겪었다. 2020 도쿄올림픽에선 여자배구 대표팀이 기적 같은 4강에 오르기까지 후배들을 이끌고 넘기 힘든 벽을 돌파했다. 당시 세계 14위였던 한국팀은 세계 4위 튀르키예, 5위 일본, 6위 도미니카를 차례로 격파했다.

원래는 올림픽이 끝난 뒤 중국리그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은퇴하려고 했다. 전 소속팀인 흥국생명에서 지난 겨울 뛰면서 우승으로 마지막 기여를 한 뒤 피날레를 장식하고 싶었다. 챔피언 결정전까지 그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전년도 6위였던 흥국생명은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으며 챔피언결정전에서 도로공사에 2연승을 거두고 통합 우승을 앞뒀다. 미국에서의 지도자 수업 후 기회가 주어지면 도전하고 싶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선수 생활을 좀 더 하라는 뜻이었을까. 손안에 잡은 우승의 대어를 그만 놓치면서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어떤 식으로든 마지막 도전에 성공하고 선수생활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물러나기로 한 것이다.

김연경은 승부욕이 유달리 강하다. 지는 경기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오래전 무릎 연골 파열 판정을 받고 긴 재활훈련을 3년간 반복한 끝에 다시 일어서기도 했다. 이기고 싶은 욕망이 누구보다도 강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경기 중에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 ‘식빵 언니’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했다.

김연경은 타고난 선수가 아닌 노력형 선수이다. 중학교 시절 원래 마르고 왜소하며 키가 또래에 비해 작은 선수였다. 그래서 남보다 배구를 잘 하기 위해 수비를 기본으로 해 착실히 실력을 키웠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 다행히도 키가 자라 최적의 신체 조건과 공격력을 갖추게 됐지만 그녀의 경쟁력은 무엇보다도 튼튼한 기본기가 갖춰졌다는 것이다. 2006년 고교를 마치고 프로에 데뷔한 신인 시절, 신인왕 최우수선수, 챔피언 결정전 최우수선수를 휩쓸었다. 10대가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개인상을 독차지 한 것은 국내 배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김연경은 2017년 발간한 자서전 ‘아직 끝이 아니다’에서 “‘계속 해봐야 진 경기인데 그만 할게요’라는 선수는 없다. 미래는 불안하지만 역전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인생이란 경기도 그렇다”고 밝혔다. 그의 뜻대로 마지막 도전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를 배구팬들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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