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철 정치학 박사ㆍ고려대 강사

선거제도를 고치는 것은 헌법을 고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다. 헌법은 3분의 2 찬성이 의결 기준이지만 선거법은 과반 찬성이 기준이다. 그런데도 더 어렵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선거제도에 대해서는 여야와 각 정당들이 더욱더 사생결단이 되기 때문이다. 유불리 셈법이 난무하는 밥그릇 싸움이라는 것이다.

지난 선거법 개정 과정은 그 극명한 현장을 그대로 보여줬다. 국회는 ‘동물국회’라는 오명을 쓴 적이 있다. 한미FTA 비준 과정에서 이를 반대하는 야당의 격렬한 반발로 국회에 해머와 빠루, 전기톱이 등장하는 볼썽사나운 현실이 연출됐다. 그런 불미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나온 것이 국회선진화법이었다. 사실상 의결 정족수를 과반에서 5분의 3으로 바꾼 것이었다. 그 후에는 ‘식물국회’라는 말이 나왔다. 여당이 국회 과반 의석을 가져도 야당이 무조건 반대로만 일관하니 어떤 법안도 통과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그 와중에 지난 국회에서 5분의 3의 연대를 구축한 여당과 제3, 4당이 제1야당과의 격렬한 대치 속에서 선거법 개정을 강행하면서 다시 해머, 빠루가 등장하는 ‘동물국회’가 재현됐다.

선거법 개정이 그렇게 난리통 속에서 이뤄졌지만 그 실제적 결과는 더욱 참담했다. 제1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고, 선거법 개정을 강행한 여당마저도 위성정당을 만들어 제3, 4정당을 배신함으로써 선거법 개정 취지가 완전히 공중분해됐기 때문이다.

이제 총선이 1년도 안 남은 상황에서 국회는 선거법 논쟁을 한창 벌이고 있다. 국회가 19년 만에 전원위원회를 개최해 선거법 개정의 대토론을 전개하는 것이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낸 복수의 선거제도를 바탕으로 전원위원회에서 신속하고 집중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4월 안에 선거제도 개편을 완결한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동안 밀실 협상으로 이뤄졌던 폐해를 극복하고자 전원위원회를 완전 공개해 국민이 지켜볼 수 있게 하고, 공개회의와 공론조사 등을 통해 국민의 의견도 충실히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와 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와 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등 세 가지 결합 방식 안을 전원위에 제시했다.

전원위원회가 나흘 일정으로 개최 됐지만 실상 ‘아무말 대잔치’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여야 정당들이 중구난방식 자기 생각만 펼쳐놓고 있고, 극단적인 주장이나 완전히 대립되는 의견들이 밑도 끝도 없이 난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협의점을 찾고 합의를 향해 가는 생산적인 토론이 전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법 개정의 취지는 비례성 강화, 승자독식 방지, 지역구도 완화라는 큰 대의명분이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론을 찾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와 정치 현실의 한계 속에서 더 바람직한 방법을 찾고 더 나은 정치 문화, 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방향에서 선거제도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지난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창당해 제1당과 제2당이 꼼수와 편법 선거를 치른 것은 크나큰 오점이다. 게임의 룰을 여야 정당의 게임 당사자들이 충분한 협의로 합의 처리하지 못한 후과의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돌아오는 선거에서 또 같은 행태를 반복하려 한다면 참으로 참담하기 짝이 없는 일이 될 것이며,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별로 개정할 생각이 없으면 일찌감치 그만 두는 게 좋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 진정 발전적 개정안을 도출하고자 한다면 더욱 책임있는 여야 정당들의 논의 자세와 태도가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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