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 30m 강풍 타고 산불 ‘확산’
주민들, 산불에 놀라 황급히 대피
화마에 집·축사·저장고 모두 잃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냐” 토로

[천지일보 강릉=송해인 기자] 강릉시 저동 골길 주택지가 불에 타 전소된 모습. ⓒ천지일보 2023.04.11.
[천지일보 강릉=송해인 기자] 강릉시 저동 골길 주택지가 불에 타 전소된 모습. ⓒ천지일보 2023.04.11.

[천지일보 강릉=김빛이나, 송해인, 이현복 기자] “너무 참담해서 울음도 안 나옵니다. 여기 보세요. 집이 이렇게 다 타버려서 이제 잠을 잘 곳도 없습니다. 농기구도, 축사도 다 타서 올해 준비했던 농사는 다 허사가 됐어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불에 타 무너진 집과 축사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세기(68, 남, 강릉 저동)씨가 한숨을 내쉬며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앗아간 산불로 인해 참담한 심경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순간 최대풍속 초속 30m의 강한 바람을 타고 무서운 속도로 번져간 산불에 강원 강릉시 난곡동 일대 피해지역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천지일보 강릉=김빛이나 기자] ‘강릉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11일 강릉시 난곡동 소재 산불 피해지역에 전소된 차량 내부. ⓒ천지일보 2023.04.11.
[천지일보 강릉=김빛이나 기자] ‘강릉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11일 강릉시 난곡동 소재 산불 피해지역에 전소된 차량 내부. ⓒ천지일보 2023.04.11.

화마는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동쪽으로 확산하며 안현동, 저동 일대 민가와 펜션단지 등을 불태웠다.

경포동 일대 불길이 지나간 현장에선 메케한 탄내가 진동했다. 피해 민가에 들어서니 검게 그을린 벽돌과 무너진 집, 불에 타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차량이 보였다.

또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다 타서 집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피해가 극심한 곳도 있었다.

[천지일보 강릉=김빛이나 기자] 이세기(68, 남, 강릉 저동)씨가 11일 불에 타 무너진 집과 축사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하소연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1.
[천지일보 강릉=김빛이나 기자] 이세기(68, 남, 강릉 저동)씨가 11일 불에 타 무너진 집과 축사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하소연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1.

잔불이 있던 곳은 불꽃과 연기가 피어올라 소방관들이 연신 물을 뿌렸다. 민가 마당에 심겼던 잔디도 모두 타 까맣게 변해 있었다. 이씨의 집 마당에도 소방차가 들어와 소방관들이 집 주변에서 진화 작업을 계속 이어나갔다.

“산불이 났는데 바람이 막 불어서 (산불이 집까지) 날아왔다니까요. 너무 (마음이) 급해서 소들 끈을 풀어주고 막 뛰쳐나왔다니까요. (다시 와보니) 집에서 건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옷도 이거 보세요. 입고 있는 게 다예요. 빨리 좀 해결해줬으면 좋겠어요. 이거 참….”

산불을 목격했을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설명하던 이씨는 답답한 심경을 털어놓다 멈추고는 눈시울을 붉히며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천지일보 강릉=김빛이나 기자] 이세기(68, 남, 강릉 저동)씨가 11일 산불로 타버린 자신의 농기구를 바라보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1.
[천지일보 강릉=김빛이나 기자] 이세기(68, 남, 강릉 저동)씨가 11일 산불로 타버린 자신의 농기구를 바라보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1.

◆터전 잃고 임시 대피소 온 이재민들 ‘망연자실’

산불 지역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임시 대피소로 지정된 강릉시 포남동 강릉아이스아레나 실내체육관에서는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모여 서로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가족들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는 사람,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의자에 기대어 앉은 사람, 이웃주민과 산불 목격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사람 등 산불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 중에는 소방차가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며 답답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천지일보 강릉=김빛이나 기자] 11일 강릉시 포남동 강릉아이스아레나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 임시 대피소로 한 주민이 들어가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1.
[천지일보 강릉=김빛이나 기자] 11일 강릉시 포남동 강릉아이스아레나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 임시 대피소로 한 주민이 들어가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1.

“아니 어떻게 1시간 동안이나 (소방차가) 안 올 수가 있냐고요. 남편하고 제가 호스를 가지고 물을 뿌리고, 어떻게든 집을 지켜보려고 애를 쓰고 하는데, 집 근처에 소화전도 있는데, (소방관이) 와서 그거 틀기만 했어도 집을 지킬 수 있었다고요.”

조인숙(62, 여, 강릉 저동)씨는 불에 타 기둥만 남은 자택 사진을 보여주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조씨는 멀리 연기를 목격하고 남편과 함께 집 주변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하지만 강한 바람에 불길이 집으로 향하는 것을 막지 못했고 결국 집에 머물던 노모와 함께 급히 대피했다고 말했다.

이봉길(75, 남, 강릉 저동)씨는 이번 산불로 50년 일궈온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는 “집이 아주 풀썩 주저앉았다”며 “(집에서) 하나도 못 건지고 몸만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천지일보 강릉=김빛이나 기자] 11일 강릉시 포남동 강릉아이스아레나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 임시 대피소. ⓒ천지일보 2023.04.11.
[천지일보 강릉=김빛이나 기자] 11일 강릉시 포남동 강릉아이스아레나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 임시 대피소. ⓒ천지일보 2023.04.11.

이씨는 “50년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왔는데 이제 딱 하나 남은 건 저온저장고 그거 하나 남았다”며 “농기구고 오토바이고 뭐고 싹 다 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상황이) 심각하다. 정부에서 뭘 어떻게 도와주면 몰라도 정말 먹고 살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밭에 있다가 대피한 이주산(66, 남, 강릉 저동)씨는 당시 집으로 가는 길이 차단돼 집 주변의 상황도 살피지 못했다고 했다. 이씨는 “밭에서 일을 하는데 어느 순간에 보니 (주변에) 연기가 꽉 찼다”며 “그래서 대피를 했는데 (나중에 가보니) 농기계고 뭐고 다 타고 없었다. 아무것도 없으니 잠도 여기(대피소) 텐드에서 자야 한다”고 말했다.

◆산불 키운 ‘순간 최대풍속 초속 30m 강풍’

산불 현장에서 만난 주민이나 대피소에서 만난 이재민이나 이번 산불에 대해 설명하면서 공통적으로 언급했던 것은 ‘강한 바람 때문에’라는 말이었다. 이주산씨는 “바람이 너무 강해서 사람이 흔들릴 정도였다”면서 “강한 바람을 타고 산불이 바닷가 쪽으로 가면서 주변에 있는 집들을 싹쓸이했다”고 말했다.

축사와 집을 잃은 이세기씨와 50년 삶의 터전을 잃은 이봉길씨도 모두 ‘강한 바람’을 산불 피해를 키운 주요인으로 꼽았다. 이세기씨는 강한 바람이 불어 불길이 주변을 휩쓸었다고 설명했다. 이봉길씨 역시 바람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주민들의 증언은 순간 최대풍속 초속 30m의 바람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천지일보 강릉=김빛이나 기자] 11일 ‘강릉 산불’의 원인으로 지목된 강릉시 난곡동에 위치한 소나무(빨간원)를 과학수사대가 조사하고 있다. 산불은 이 소나무가 넘어지면서 전선을 건드려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천지일보 2023.04.11.
[천지일보 강릉=김빛이나 기자] 11일 ‘강릉 산불’의 원인으로 지목된 강릉시 난곡동에 위치한 소나무(빨간원)를 과학수사대가 조사하고 있다. 산불은 이 소나무가 넘어지면서 전선을 건드려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천지일보 2023.04.11.

◆최초 목격자 “정전돼 밖 보니 연기 보였다”

산불의 최초 발화지로 추정되는 난곡동에서는 산불 최초 목격자와 첫 신고자가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최초 산불 목격자인 최준호(60, 남)씨는 “집에 있었는데 갑자기 정전이 돼 깜짝 놀라 밖을 내다보니 저기(전신주와 발화 원인 추정 소나무 위치)에서 연기가 났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어 “나는 삽을 들고 아래쪽 양반은 ‘깍지’를 들고 둘이서 가서 (불을) 막 끄려고 했는데 (불이) 고사리 밭에 (옮겨)붙어서 확 올라왔다”며 “뜨거워서 큰일나겠다 싶어서 얼른 피하고 (윗집 이웃에게) 빨리 신고하라고 하고 나는 얼른 집 벽에다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고 긴박했던 순간을 설명했다.

최초 신고자인 심엄섭(65, 남)씨는 “아침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올라오는데 건너편에서 ‘빨리 119에 신고해라. 불났다’고 해서 신고를 했다”며 “불은 보지 못하고 연기만 봤다”고 말했다.

심씨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연기가 많이 나서 (집을 버리고) 도망을 갔다”며 “나중에 와서 보니까 지붕에 불이 붙어서 호스로 껐다”고 말했다. 그는 “불이 다 넘어간 상황이긴 하지만 잔불이 남았고, 또 밤에 어떻게 다시 살아날지도 몰라 불안하다”고 말했다.

[천지일보 강릉=김빛이나 기자] ‘강릉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11일 강릉시 난곡동 소재 산불 피해지역의 무너진 한 주택에서 불씨가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1.
[천지일보 강릉=김빛이나 기자] ‘강릉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11일 강릉시 난곡동 소재 산불 피해지역의 무너진 한 주택에서 불씨가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1.

◆1명 사망 등 사상자 17명… 축구장 면적 530배 소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번 산불은 이날 오전 8시 22분께 강릉 난곡동에서 소나무가 넘어지면서 전선을 건드려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산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번지면서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이번 산불로 축구장 크기 면적(0.714ha) 530배에 달하는 379ha가 소실됐다. 인명피해로는 1명이 숨지고 3명이 화상을 입었다. 또 1명이 손가락 골절상을 입었고, 12명이 연기를 마시는 등 총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1일 오전 8시 30분경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 일대에 산불이 발생했다. 사진은 산불 현장 인근 경포펜션이 불에 타고 있는 모습. (독자 제공) ⓒ천지일보 2023.04.11
​11일 오전 8시 30분경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 일대에 산불이 발생했다. 사진은 산불 현장 인근 경포펜션이 불에 타고 있는 모습. (독자 제공) ⓒ천지일보 2023.04.11

시설물 피해로는 주택 59채, 펜션 34채, 호텔 3곳, 상가 2곳, 문화재 1곳 등 약 101개소가 전소되거나 일부가 탄 것으로 파악됐다. 정확한 피해 규모는 산불 완진 후 조사를 통해 파악될 예정이지만 현재 파악된 피해 상황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소방당국은 이날 오전 9시 18분부로 소방 대응 2단계를 발령했다가 9시 43분 대응 3단계로 격상했다. 산불로 소방 대응 3단계가 발령된 것은 올해 들어서는 처음이다. 3단계는 5개 이상 시·군·구 자원이 총동원되는 단계다.

또 소방청은 전국 소방동원령 2호도 발령했다. 동원 장비 기준으로 보면 1호는 소방차 100대 미만, 2호는 100대 이상, 200대 미만이며 3호는 200대 이상이다.

산불 진화에는 헬기 4대와 장비 396대, 진화대원 등 2764명이 투입됐다. 산림당국은 화재 초기 8000L(리터)급 초대형 헬기를 비롯해 헬기 6대를 투입했으나 순간풍속이 초속 60m에 달하는 태풍급 강풍에 회항해야 했다. 오후 들어 바람이 잦아들면서 오후 2시 40분께 헬기 4대를 투입해 진화에 나섰다.

[천지일보 강릉=이현복 기자] 강원도 전역에 건조주의보 및 강풍 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11일 오전 강릉시 난곡동에 화재가 발생, 인근 야산까지 산불이 번지고 있다. (독자 제공) ⓒ천지일보 2023.04.11.
[천지일보 강릉=이현복 기자] 강원도 전역에 건조주의보 및 강풍 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11일 오전 강릉시 난곡동에 화재가 발생, 인근 야산까지 산불이 번지고 있다. (독자 제공) ⓒ천지일보 2023.04.11.

오후 3시 30분께 강릉 일대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거센 소나기가 내렸다. ‘단비’ 덕에 진화율이 올랐고, 당국은 일몰 전 주불 진화에 성공했다.

강릉시는 강한 산불이 발생한 당시 경포동 10통·11통·13통 등 7개통 주민들에게 경포동 주민센터와 아이스 아레나로 대피하라는 재난안전문자를 발송했다. 이어 강릉시는 산대월리 주민들에게도 사천중학교 체육관으로 대피하라는 문자를 발송했다.

산불 지역 인근 리조트 등 숙박시설 투숙객 일부도 만일에 상황에 대비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산불이 지나가는 길 인근의 경포대초등학교 학생들도 화재 발생지와 거리가 먼 초당초등학교로 에듀버스를 이용해 긴급 대피하기도 했다. 대피한 주민들은 557명으로 집계됐다.

한편 강원도는 피해지역에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건의할 방침이다. 권성동 국회의원은 “재난지역 선포와 관련해 아침에 행안부 관계자와 통화했고, 피해 규모로 봐선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될 수 있는 요건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며 “지사·시장과 협조해 반드시 선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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