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주요와 조선 백토분장 자기
뗄 수 없는 관계 있을 것으로 보여
문양, 옛 장인들이 창조한 영화(靈花)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구석기 이래 300만년 동안 이뤄진 조형예술품의 문양을 독자 개발한 ‘채색분석법’으로 해독한 세계 최초의 학자다. 고구려 옛 무덤 벽화를 해독하기 시작해 지금은 세계의 문화를 새롭게 밝혀나가고 있다. 남다른 관찰력과 통찰력을 통해 풀어내는 독창적인 조형언어의 세계를 천지일보가 단독 연재한다.

도 1-1. 백지 흑화 보주 영기문 매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24.
도 1-1. 백지 흑화 보주 영기문 매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24.

예술작품은 사진일지라도 자세히 살펴보시고, 채색분석한 것도 잘 세심히 보시고, 글도 꼼꼼히 읽어야 한다. 무엇이든지 휙휙 지나가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연재 1회 쓰는 데 꼬박 열흘쯤 걸린다. 옛 장인들이 도자기의 문양을 돋보이게끔 피나는 노력을 했듯이, 필자도 문양이 여러분에게 분명히 보이게끔 최선을 다하여 채색분석하고 있다.

우리나라 도자기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조선시대 ‘백토분장청회자’와 중국 북송 시대 민간 ‘자주요’ 사이의 관계에 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관계가 적거나 아예 관계가 없다고 보는 경향이다.

필자는 도자기 전공자는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제는 선학의 연구 성과를 배우면서 평생 도자기와 인연을 맺어왔다. 20대 후반에 강진 도요지 발굴을 비롯하여 근래 20여 년 동안 국내외에서 도자기를 매우 열정적으로 조사하며 촬영해 왔다. 아마도 세계 어느 도자기 전공자들보다 필자가 훨씬 많은 도자기 사진 파일을 확보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도자기에 관한 세부적인 연구 성과는 그들에게서 배우고 있다. 다만 그들 모두가 지나치거나 잘못 알고 있는 도자기 표면의 갖가지 문양의 형이상학적 상징이나 사상을 통해 필자가 세계 최초로 도자기의 원류와 상징을 풀어나갈 수 있기에 천지일보에 광고 없이 한 면 전면에 2년간 연재를 감행하고 있다.

가마 문제라든가 편년이나 성분분석 등은 필자가 논할 능력도 자격도 없으니 그런 문제는 기존 연구자의 의견을 따라 주기 바란다. 그런 까닭에 이 연재에서 혹 작은 실수가 있을지도 모르니 양해를 구한다. 다만 문양이 도자기의 주체인 만큼 문양으로 도자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 큰 관심을 기울여주기 바란다.

2007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펴낸 ‘중국도자(中國陶磁)’에서 지주요 작품들을 이 글에서 이용했고 설명도 참고했다. 우선 중국 자주요(磁州窯)에 관해 간단히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자주요는 송(宋)대와 원(元)대의 대표적 민요(民窯)로 민간이 쓰던 자기를 말한다. 하북성 한단시(邯鄲市) 자현(磁縣) 일대에 걸쳐 위치하여 있다. 이 지역은 송-원대에 자주(磁州)지방에 속해 있어서 ‘자주요’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자주요는 전국 여러 지역의 가마에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이러한 전국 각지의 가마를 총괄하여 ‘자주요계’라고 부른다. 일반 서민이 사용한 생활용품으로 풍부한 장식기법과 향토색 짙은 다채로운 문양이 돋보인다. 여러 가지 기법으로 만들지만 기본은 ‘백유자기’라 할 수 있다. 백유자기는 그릇 표면에 ‘백색화장토’를 입혀서 장식한 것이어서 조선 백토분장자기와 통한다.

자주요의 태토는 거칠고 조잡하며 짙은 색을 띤다. 그래서 백색 화장토를 입혀 그런 태토를 감추는 ‘백화장(白化粧)’기법을 개발하였다. 아마도 고유섭이 명명한 ‘분장회청사기’란 용어는 자주요에서 얻은 것임이 틀림없다. 그 용어를 줄여서 ‘분청사기’라 부르고 있으나 고심 끝에 필자가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쓰고 있다.

특징적인 기법은 ‘백유흑척화’와 ‘백유흑채’다. 흑백의 조화라기보다는 대조적인 색으로 문양을 강조하고 있다. 백유흑채법은 붓으로 문양이 아닌 풍경을 그려 보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북송 후기부터 원대까지 자주요 및 자주요계 자기를 소장하고 있다. 대부분 개성 부근과 고려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다고 전하고 있으며 대체로 12세기 것이다. 일부 장식기법과 문양 도안은 동 시기의 고려청자에 영향을 주었다고 확신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중국 자주요의 몇 가지 작품들을 채색분석해 본 결과 중요한 점들을 알게 되었는데 우선 다음과 같은 자주요들을 다루어 보기로 한다.

도 1-2. 백지 흑화 보주 영기문 매병의 부분.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24.
도 1-2. 백지 흑화 보주 영기문 매병의 부분.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24.
도 1-3. 채색분석한 것.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24.
도 1-3. 채색분석한 것.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24.

<도 1. 백지 흑화 영기문 매병>: 북송 자주요. 높이 32.7센티. 백색 분장 면 위에 흑색 분장토를 한 번 더 바른 다음 무늬를 새기고 모란 당초문양 밖의 부분을 긁어냈다. 밑부분의 연판문대는 당시의 고려청자 매병에서도 보인다. 도록 설명은 그러하지만 모란과 당초문은 그릇된 용어들이다. 

도 2-1. 백지 흑화 영기문 완.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24.
도 2-1. 백지 흑화 영기문 완.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24.
도 2-1. 옆에선 본 것.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24.
도 2-1. 옆에선 본 것.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24.
도 2-3. 채색분석한 것.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24.
도 2-3. 채색분석한 것.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24.

<도 2. 백지 흑갈색 영기문 완>: 북송~금. 자주요계. 그릇 안팎을 백토로 분장한 다음 내면은 흑갈색 분장토를 겹쳐 바르고 문양을 음각하였다. 높이 3.7센티, 입지름 13센티.

도 3. 백지 흑화 영기문 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24.
도 3. 백지 흑화 영기문 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24.

<도 3. 백지 흑화 영기문 병>: 북송 자주요. 고려 고분 출토. 높이 20.8센티. 역시 분청사기의 박지 분청자 기법과 같다.

도 4. 백지 흑화 영기문 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24.
도 4. 백지 흑화 영기문 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24.

<도 4. 백자 흑화 영기문 병>: 중국 금(金). 자주요. 개성 출토. 높이 20.3센티

도 5. 조선 분청철화 영기문 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24.
도 5. 조선 분청철화 영기문 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24.

<도 5. 조선 분청 청회색 병>: 백토분장에 철화로 영기문을 표현. 비교 작품으로 실어 언뜻 보기에는 비슷해 보여도 차원이 다르다.

이상 중국 자주요 자기 몇 점을 채색분석한 결과, 조선 백토분장 자기와 비교하며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두 나라의 백토분장 자기가 직접 연관이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첫째, 탁한 태토 색을 가리기 위해 백토로 분장한 점은 양자가 같으며 이것이 다양한 기법으로 문양을 도드라지게 표현할 수 있게끔 하는 기본적 요소다. 둘째, 박지 기법을 애용한 점도 같다. 결과적으로 흑백의 대비로 문양을 두드러지게 하려는 의도 역시 같다. 셋째, 각각 민간용으로 제작된 경우가 많다. 넷째, 문양은 각각 영기문의 전개 원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동안 도자기 연구자는 영기문의 상징과 전개 원리를 모르니 도자기의 원류와 상징을 전혀 풀어낼 수 없을 것이다. 도자기 전공 교수라 할지라도 필자에게서 몇 년은 배워야 영기문과 영기화생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시대가 매우 다르고 작품 수준도 다르지만, 어떤 경로인지는 모르지만 조선 백토분장 자기와 북송 자주요 자기와는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을 것이라 확신하게 되었다. 문양도 각 나라 전공자들은 모란 당초문이란 용어를 쓰고 있지만, 모란은 모란이 아니고 옛 장인들이 창조한 영화(靈花)이며, 당초문도 모두 만물생성의 근원인 제1, 제2, 제3영기싹으로 이루어진 영기문이지 당초문이나 덩굴무늬가 아니다. 그리고 보주의 개념도 필자가 세계 최초로 밝혀서 도자기의 새로운 진리의 면을 밝혀내는, 말 그대로 초유의 대장전(大長征)을 감행하고 있다. 부족하나마 두 나라의 자기를 비교해 봄으로써 조선의 백토분장 자기가 얼마나 높은 예술성을 띠고 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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