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공개된 북한 인권보고서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청소년들이 아편을 사용하고 한국 영상물을 봤다는 이유로 처형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임신 6개월인 한 여성은 손가락으로 김일성의 초상화를 가리키는 동영상 속 장면이 문제가 돼 공개 처형됐다고 한다.

정치범수용소에선 처형과 강제노동이 이뤄지고 있고 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은 감시와 차별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구금시설에서의 인권유린은 물론 당사자 동의 없는 생체실험까지 자행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통일부가 지난주 북한이탈주민 508명이 증언한 인권침해 사례를 근거로 발행한 ‘2023 북한 인권보고서’에서 나온 것들이다.

북한 인권보고서는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다음 해인 2017년부터 매년 발간돼왔다. 다만 일반에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 인권보고서는 “북한에선 공권력에 의한 자의적 생명 박탈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적시했다.

북한 국경 지역에서 사법절차 없이 ‘즉결 처형’한 사례, 한국 영상물 시청·유포, 종교·미신행위 등 자유권 규약상 사형이 부과될 수 없는 행위에 대해 사형이 집행된 사례에 대한 증언이 수집됐다. 450쪽 분량의 보고서에는 북한의 심각한 인권 상황과 함께 북한 주민의 열악한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평가다.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북한 여성은 각종 폭력에 노출돼 있었다. 또 식량 배급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대부분 주민이 심각한 식량난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무상치료제가 무색하게 많은 주민이 의료진에게 현금과 현물 등 사례를 해야 한다는 증언도 나왔다. 북한 인권보고서가 비공개돼 온 것은 탈북민의 개인정보 노출 우려와 북한의 반발 등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첫 인권보고서가 공개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와중에 2017년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남북평화를 조성한다는 명분으로 북한 눈치 보기에 급급해 북한 인권 문제를 등한시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2020년부터 지난해 5월 정권 교체 때까지 2년 반가량 북한 인권단체의 하나원 출입을 막아 탈북민을 상대로 한 사례 조사가 불가능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통일부가 자체 조사를 했다지만,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지만, 통일부 관료들의 소극적 태도로 이달 초부터야 뒤늦게 사례 조사가 재개됐다.

이번 인권보고서 공개는 북한의 인권 유린·침해 실태를 정부 차원에서 공식화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번 공개를 계기로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을 촉진할 외교적 노력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2014년부터 안보리 공식 의제로 등록된 북한 인권 문제는 지난 5년간 삭제될 위기였지만 이를 되살리기 위해 한·미가 외교 공조에 나서며 탈북자들이 유엔 안보리 비공식 회의에 출석해 증언하는 성과도 거뒀다.

정부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의 인권 참상을 국내외에 널리 알려 북한 동포들의 열악한 인권이 개선되도록 연대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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