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업계 올 하반기 진출
인증 중고차 사업 계획 밝혀
‘을’ 소비자, 검증된 차 반겨
허위매물 등 사기 감소 전망
소상공인 피해·독과점 우려도

 

 

-핵심요약-

◆국내 완성차 인증 중고차 시대

빗장으로 닫혀 있던 국내 중고차 시장이 올해 하반기부터 국내 완성차 업체에도 열리게 되면서 현대자동차와 기아, KG모빌리티(구 쌍용자동차)가 잇따라 인증 중고차 사업 계획을 밝히고 중고차 시장 진출을 예고했다. 이에 그간 ‘레몬마켓(정보 비대칭)’으로 불리던 중고차 시장에 새 바람이 불 전망이다. 

 

◆소비자는 ‘웃고’ 업계는 ‘반발’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확정되자 그간 중고차 시장의 허위매물, 주행거리 조작 등 사기행위에 지친 소비자는 반기는 분위기다. 2018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불만은 3만건이 넘는다. 반면 기존 업계는 대기업이 골목상권까지 침해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천지일보=정다준 기자] 고요하던 중고차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바로 완성차 업체들이 하나둘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에 이어 KG모빌리티(구 쌍용자동차)도 중고차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중고차 구매에 있어 레몬마켓(정보 비대칭)으로 늘 ‘을’의 입장에 있던 소비자들은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자정작용을 할 것으로 보고 반기는 입장이다. 다만 중고차 업계는 완성차 업체가 기존 중고차 매매단지에 입주하는 것을 두고 “골목상권 침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새 먹거리 찾는 완성차 업체

현대차는 이달 23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제55기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하고, 중고차 판매업 진출을 위해 사업목적에 금융상품판매대리·중개업을 추가했다. 인증 중고차 사업 진출을 위한 정관 손질을 마친 것이다.

정재훈 현대차 사장(대표이사)은 이날 주총에서 “인증 중고차 사업을 통해 신뢰도 높은 중고차를 제공하겠다”며 “생산·판매 최적화와 물류 리드타임 단축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원하는 시기에 제공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반기에 인증 중고차 사업 준비를 마치고 올해 하반기 본격적으로 중고차 사업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기아도 지난 17일 주총에서 금융상품 판매대리·중개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하며 중고차 시장에 진출할 준비를 마쳤다.

현대차그룹은 1년 전인 지난해 3월 신차 수준의 상품화를 목표로 한 중고차 사업 방향을 발표하며 중고차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의 1년 유예 권고에 따라 올 하반기부터 중고차 사업을 본격화한다.

KG모빌리티는 지난 17일 열린 주총에서 사명 변경과 함께 인증 중고차 사업 진출 계획을 밝혔다. 올해 상반기까지 판매와 정비 조직 및 체제 등 사업준비를 완료한 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현대차·기아와 KG모빌리티까지 중고차 시장에 뛰어드는 데에는 ‘높은 수익성’이 주된 이유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중고차 판매량은 약 380만대로 집계됐다. 작년 신차 시장이 약 170만대인 것을 볼 때 중고차 시장의 거래량이 두배 이상 많다는 것이다.

지난해 삼성증권이 발행한 ‘모빌리티’ 보고서에 따르면 중고차 평균단가는 대당 1100만원으로 추산된다. 이를 전체 중고차 시장에 적용하면 약 42조원 규모로 평가된다. 전체 등록 대수에서 개인 간 거래를 뺀 업자매매(247만대)만 보더라도 30조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완성차 입장에선 조금이라도 점유율을 확보하면 안정적인 수입으로 이어지기에 하나둘 중고차 시장에 뛰어드는 모양새다.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데에는 국내 중고차 시장이 ‘레몬마켓’으로 불리는 이유도 한몫했다. 중고차 업계가 완성차 업계의 진출을 반대했지만, 완성차 업체가 레몬마켓 개선을 이유로 진출을 주장한 것이다.

[천지일보=정다준 기자] 27일 서울 성동구 용답동에 위치한 장안평중고차시장의 전경. ⓒ천지일보DB
[천지일보=정다준 기자] 27일 서울 성동구 용답동에 위치한 장안평중고차시장의 전경. ⓒ천지일보DB

◆5월부터 빗장 풀리는 중고차 시장

앞서 중기부는 지난해 4월 열린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회에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 시기를 올해 5월로 연기하기로 했다. 아울러 중고차 판매를 허용하되 2년간 판매 대수는 제한된다. 또 현대차·기아는 신차를 구매하려는 고객의 중고차 매입 요청 시에만 살 수 있게 규정했다.

현대차·기아에 대한 이번 사업조정 권고는 3년간 적용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중고차 시장 진출 초기 판매 물량 제한으로 인해 현대차는 올해 5월 1일부터 2024년 4월 30일까지 중고차 판매 대수의 2.9%만, 2024년 5월 1일부터 2025년 4월 30일까지 4.1%만 판매할 수 있다. 같은 기간 기아의 판매 대수는 각각 2.1%, 2.9%로 제한된다.

◆인증 중고차는 무엇?

현대차·기아와 KG 모빌리티는 인증 중고차를 판매한다.

중고차는 신차와 달리 품질이 제각각인 데다 자동차 전문가가 아닌 이상 성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중고차 시장이 대표적인 레몬마켓으로 꼽히는 이유다.

이에 인증 중고차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인증 중고차는 ‘검증된 중고차’로 중고차 유통 고질병으로 꼽히는 허위매물, 주행거리 조작 등 사기행위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인증 중고차는 업체별로 조금 차이는 있겠지만 큰 틀에서는 주로 출고된 지 5년 이내, 주행거리 10만㎞ 이내인 중고차를 대상으로 정밀한 성능검사와 수리를 통해 가치를 높인 뒤 품질까지 인증해 판매한다.

BMW, 벤츠, 아우디, 포르쉐, 재규어, 랜드로버, 폭스바겐, 볼보, 렉서스 등 수입차 브랜드는 이미 인증 중고차로 중고차 시장에 진입한 상태다.

기아 인증중고차 디지털 플랫폼 콘셉트 이미지. (제공: 기아) ⓒ천지일보 2022.4.18
기아 인증중고차 디지털 플랫폼 콘셉트 이미지. (제공: 기아) ⓒ천지일보 2022.4.18

◆완성차 반기는 소비자들

그간 중고차 사기 피해는 계속 잇따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하는 1372 소비자상담센터 통계에 따르면 2018년 1월 1일부터 이달 28일까지 중고차 중개와 매매 관련 불만 상담 건수는 총 3만 971건이다. 전체 품목 중에선 중고차가 6위를 기록했다. 소비자의 불만이 크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소비자들은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반기는 분위기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중고차거래앱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대해 응답자 대부분이 찬성했다.

소비자들은 완성차 업계(현대차·기아, 르노코리아, KG모빌리티, 한국GM 등)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대해 응답자 대부분이 찬성하는 것(4점)으로 나타났고, 찬성 이유로는 ‘안전한 매물이 많아질 것(4.06점)’ ‘소비자의 선택 폭이 넓어질 것(4.04점)’ 등의 의견이 높게 나타났다.

이 조사는 보배드림, 엔카닷컴, 첫차, KB차차차, 케이카 등 중고차 거래앱 상위 5개 업체 이용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 134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 점수는 5점 만점 중 4점으로 나왔다. 소비자원은 매우 부정은 1점, 매우 긍정은 5점으로 책정했다.

이 외에도 찬성 이유로는 ‘소비자피해가 줄어들 것(3.94점)’ ‘중고차 산업의 발전이 가속화될 것(3.90점)’ 등의 이유로 완성차 업체 진출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완성차 업계의 진출을 우려하는 입장으로는 ‘시장을 과도하게 독점할 위험(3.41점)’ ‘소상공인에게 과도한 피해가 갈 것(3.13점)’ 등으로 나왔다. 

오토허브 입주 회원사들이 현대자동차 입점을 강력히 반대하며 ‘정부가 소상공인 모인 곳에서 장사하라고 대기업 진출 하락했나? 단독 매장으로 가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제공: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천지일보 2023.03.29.
오토허브 입주 회원사들이 현대자동차 입점을 강력히 반대하며 ‘정부가 소상공인 모인 곳에서 장사하라고 대기업 진출 하락했나? 단독 매장으로 가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제공: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천지일보 2023.03.29.

◆“현대차, 골목상권 진출 철회하라”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이달 14일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과 관련해 긴급 성명을 내고 “골목상권 진출 계획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는 현대차가 이미 운영 중인 기존 중고차 매매단지에 입주하는 것에 대한 규탄이다. 연합회는 이에 대해 ‘골목상권’ 진입으로 자동차매매업에 종사하는 30만 영세 소상공인 가족의 생존권을 빼앗는 행태라고 주장했다.

연합회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달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오토허브 중고차 매매단지에 입주 계약을 마쳤다. 규모는 매매상사 10개 이상의 공간이다.

연합회 관계자는 “이는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기존 골목상권을 손쉽게 잠식하려는 것”이라며 “전형적인 불공정 영업 행위로 규정하고 관계당국이 이를 해결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현대차의 중고차 소매시장 진출은 예상됐지만, 이미 시장이 형성된 기존 중고차 매매단지와 계약을 맺고 입주하려는 비양심적이고 상도덕에 어긋나는 행위에 모멸감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회원들이 25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위치한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연수원 인근에서 ‘현대기아차,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천지일보DB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회원들이 25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위치한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연수원 인근에서 ‘현대기아차,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천지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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